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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글깊은생각] 젊은 대학교수의 의구심
[짧은글깊은생각] 젊은 대학교수의 의구심
  • 교수신문
  • 승인 2001.03.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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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21 16:35:20
대학 교수 5년차. 처음으로 맞이했던 신입생들이 졸업했다. 언제 갔나 모르게 4년이 지난 것 같아 마음 한 구석 항상 두려움이 있다. 내가 교수라는 직분에 맞도록 행동했는지, 제자들에게 선생님이라는 소리들 들을 자격이 있는 것인지, 내 스스로 내 삶에 대해 충실했었는지. 나보다 훨씬 경험이 많으신 분께는 실례되는 이야기일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처음의 두려움과는 다른 의심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 짧은 교수의 경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 그 수많은 대학이 필요할 것인가라는 의심이 떠나지 않는다. 그 많은 대학이 대학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대학이 고등 교육 기관이 아닌 대중 교육 기관이 되어 버려서, 학력 인플레 현상만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장 머리 회전이 빠르고 신체적으로 건강한 20대 인재들을 사회에서 능력을 발휘하게 하지 않고 이렇게 계속 준비만 시키는 것이 바람직한가? BK21 사업 등을 통해 몇몇 대학원에 연구비가 편중되고 있는데, 그 결과로 뛰어난 연구 업적들이 쌓이고 있는가? 교육은 1백년을 가꾸어야 한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 과연 적당한 길인가?컴퓨터를 전공한 학자로서 전공에 대한 고민도 있다. 산학협동이라는 것도 말 뿐이지 제대로 운영되기가 힘든 풍토이다. 대학에서 컴퓨터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학문적 기반 지식을 가르친 후 대학원에 진학해 새로운 이론을 창시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되는지? 또는 정보기술 관련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프로그래머를 배출해야 하는지? 매달, 매년 쏟아져 나오는 신기술을 계속 따라가며 가르쳐야 하는지? 또는 그 기술을 포용할 수 있는 기반을 닦도록 해줘서 신기술은 학생들 스스로 익힐 수 있도록 해 줘야 하는지? 학생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컴퓨터 분야에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륜이 쌓여서 인정받기보다는 신기술을 얼마나 빨리 많이 습득해서 응용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아직은 젊은 나이이기에 새로운 기술과 이론을 익히는데 문제가 없지만, 내가 50, 60, 65살이 되어서도 계속 지금과 같이 공부하며 가르칠 수 있을까. 회사나 산업 현장에서의 실무자가 교수들보다 더 앞서 나가는 것은 아닌가. 교수로서의 권위는 지킬 수 있을까. 매년 채워야 하는 연구 실적은 과연 계속 쌓을 수 있을까. 실적을 채우기 위한 연구는 과연 의미가 있나 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올해도 새로운 신입생들이 학교를 새롭게 만들고 있다.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만나면 힘이 솟는다. 점심 식사 후 느티나무 아래에서 여러 교수님과 사회 문제에 대해, 고전에 대해, 또는 교육에 대해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했던 생생한 기억도 오늘 나에게 힘을 준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항상 고민하고 몸소 실천하는 동료 교수님들과 함께 할 수 있음이 고맙다. ‘어디를 가든지 누구에게나 자꾸 가르치려고 들고 따지는 걸 보면, 타고난 천성이 어쩔 수 없는 선생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몇 가지 의구심이 나를 흔들어 놓을 때도 있지만,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 고민하면서, 나는 지금도 또한 앞으로도 선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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