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 / 숭실대·국문학
최성실은 이러한 자기동일성의 신화를 공고히 하는 환원의 논리를 문학의 전복적인 상상력이 갖는 탈주와 분열증을 통해 해체하려 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녀는 문학이라는 이름 속에 녹아 있는 고착적인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있으며, 더불어 하위문화적 상상력·성적 상상력·잡종적 주체·비정상성·권태·순간적인 시간 등을 통해 그런 환원의 논리를 어그러뜨릴 가능성을 모색한다.
특히, 전자와 관련해 저항적인 문학 속에 가부장적 국가 이데올로기가 깊숙이 내면화된 점을 읽어낸 시각은 흥미롭게 읽혔다. 한용운의 시에 나타난 여성화자가 중심에 위치한 강력한 님의 시혜를 바라는 입장으로 주변화되거나, 신경림의 '농무'에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 아예 여편네에게 맡겨 두고” 같은 구절처럼, 진보적인 문학으로 알려진 것들 가운데에는 가부장주의적 여성폄하가 드러나는 작품이 제법 많다.
"배수아 소설엔 소녀와 창녀이미지가 공존한다. 그것은 가면을 만들어 상황에 어울리는 정체성을 창조하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이다."-본문 85쪽에서
최성실은 이를 최인훈과 황석영, 방현석, 김영하의 소설에서 본격적으로 살핀다. 그녀가 처음부터 폐기 처분돼 있거나 原억압된 것, 또는 거짓 평등과 수평성에 분노하며 그것을 헤집어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후자와 관련해 전근대 또는 반근대적인 것으로 여성성을 신비화하는 시각을 철폐하자며, 근대에 예속된 그 육체를 통해 표현되는 모호성, 비균질성, 성적 욕망 등에서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각도 흥미로웠다.
'∼지만(면서), ∼이다'(75쪽, 86쪽)는 식으로 그 육체의 위치를 기술했듯이, 그녀가 주목하는 육체는 근대적인 것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트는 한편, 여전히 그 메커니즘 안에 예속된 상태로 던져져 있다. 그래서 90년대 주목받았던 여성작가들의 작중인물도 당대 지배가치와 윤리 등의 이데올로기에 발목잡혔다는 비판은 육체를 매개로 극 체험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그녀에게도 앞으로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서서히 현시되고 있는 이 육체는 찢어진 망을 수선해가며 회복능력을 극대화하는 근대체계의 환원논리를 어떻게 거스르고 부유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자리를 항상 뒤돌아봐야 하는 그런 홈리스의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피로를 즐겁게 향유해나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