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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문화칼럼] 마음이 풍족한 사람들의 생존법
[김희철의 문화칼럼] 마음이 풍족한 사람들의 생존법
  • 교수신문
  • 승인 2020.04.0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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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 바르다(Agnes Varda) 감독의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리뷰
코로나19로 펜데믹 상황 길어지고 있지만
절망에 빠져 비관하고 있는 사람 없는지 주변 이웃 살펴야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의 마지막 장면. 빌프랑슈 미술관에서 보존 중인 에드몽 에두왕(Edmond Hedouin, 19세기 자연주의 화가)의 ‘폭풍우 속의 이삭 줍는 사람들’

“썩은 것, 찌꺼기, 폐물들, 거푸집과 쓰레기를 찍는 것이 좋다.”

1928년 벨기에 태생의 프랑스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 이 특별하고 유머 넘치는 예술가는 60년대 프랑스의 영화 운동인 ‘누벨 바그’(Nouvelle Vague, 새로운 물결)에 참여했고 영화 제작뿐만 아니라 각본가, 사진작가, 배우, 비주얼 아티스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 <안녕, 쿠바인들>(1963), <행복>(1964), <방랑자>(1985), 그리고 최근작인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2019) 등을 통해 그녀는 향년 90세로 타계하기 직전까지 평생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영화 만들기를 시도했다.

21세기엔 첨단 디지털 세상이 열린다고 떠들썩하던 2000년, 그녀는 다큐멘터리 영화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를 발표한다. 가난한 농민들을 그렸던 밀레의 명화 <이삭 줍는 여인들>의 이미지로 서두를 연 영화는 여전히 허리를 숙여 무언가를 줍는 현대의 빈민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소형 디지털카메라를 든 감독 ‘야네스 바르다는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철학을 열린 마음으로 배운다. 이 작품 중간중간에는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랩 음악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 가사는 쓰레기를 주워서 살아가는 삶을 노래한다.

바르다 감독은 무언가를 줍는 행위와 카메라로 이미지를 채집하는 행위의 유사성에 주목한다. 사실을 줍고 행위와 정보를 줍는 일. 그것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기초 과정이기도 하다. 건망증이 있다는 그녀는 주운 물건으로 자신이 여행했던 곳을 떠올린다.  
감독은 화면 안에 자신의 얼굴이나 손도 출연시키면서 1인칭 시점의 화자를 분명히 한다.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아가는 젊은이나 실직자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내레이션으로 생각을 밝힌다. 뭔가를 줍는 그들의 행위를 카메라로 따라잡는 그녀 자신도 버려진 농작물이나 가구, 폐품들을 집으로 갖고 와서 만족해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녀가 만난 한 남성은 생물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그는 보조교사 일을 하면서 길거리에서 신문과 잡지를 팔기도 하는데 시장에서 버려진 채소, 제과점 근처 쓰레기통에 버려진 빵들로 배를 채우고 쉼터에서 잠을 잔다. 쉼터에는 문맹자들이 많고 외국에서 온 이주민들도 있는데 6년 전부터 그들에게 읽고 쓰는 법을 무료로 가르치고 있다. 바르다 감독은 이 만남이 자신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말한다. 

시장에서 고객들에게 팔리지 않는, 이른바 ‘상품성 없는’ 감자들은 대량으로 폐기처분된다. 아이들이 버려진 감자를 주우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바르다 감독은 쓰레기통의 음식을 먹는 사람도 인터뷰한다. 15년째 그렇게 먹는다는 그는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음식을 먹는 게 아니다. 월급쟁이로 살아가면서 사회보장증도 갖고 있지만 쓰레기통 음식을 먹는 것은 자신에게 하나의 윤리라고 주장한다. 그는 사람들이 이렇게 낭비하는 삶을 이어간다면 ‘에리카 기름유출’ 같은 재난(1999년 미국 유조선 에리카호가 침몰하여 프랑스 해역 약 400km가 오염된 사건)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국에서도 2007년 충남 태안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터져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는가. 시커먼 기름 뒤범벅이 되어 곧 죽게 될 갈매기의 모습은 국적이 없다.

쓰레기통에서 주워온 육류로 요리를 하고 있는 노인에게 바르다 감독이 “한 달 내내 닭과 토끼 고기만 드시겠네요?”라고 묻자 “그런 걱정 말아요. 우린 늘 이웃과 나눠 먹으니까”라는 대답이 나온다. 가난하지만 마음이 풍족한 사람들은 이렇게 늘 주변과 나누며 생존하는 법을 터득했다.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이 길어지고 있다. 절망에 빠져 비관하고 있는 사람이 없는지 자신의 주변 이웃을 살피면서 각자의 건강을 챙겨야 할 시간이다. 단기간에 끝날 일이 아니겠지만 이 초유의 전염병 세계대전은 분명 종식될 것이다. 인류에게 새로운 질서와 과제를 부여하면서.  

김희철 문화칼럼니스트/서일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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