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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문화칼럼-영화 '눈먼자들의 도시'(Blindness, 2008) 리뷰] 세상이 멈추어 섰을 때
[김희철의 문화칼럼-영화 '눈먼자들의 도시'(Blindness, 2008) 리뷰] 세상이 멈추어 섰을 때
  • 교수신문
  • 승인 2020.03.1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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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으로
모든 게 하얗게 보이는 세상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을 위로하는 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빗물
코로나19로 멈춘 우리 세상도 웃음꽃 다시 피길
영화 '눈먼자들의 도시' 중 한 장면 제공=싸이더스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 전체가 비상 상황을 맞고 있다. 냉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해 상대 진영의 핵폭탄이 언제 날아올까 걱정하던 때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세계 곳곳에서 자국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고 대공황이 우려될 정도로 경제도 마비되고 있다. 바로 전염병 코로나19 때문이다. 자발적이든 타발적이든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TV나 회원제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보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한다. 수많은 영화들 중 전염병을 다룬 작품들이 종종 있었다. 그런 내용의 영화들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인간이 저질렀던 오류들을 성찰하도록 한다. 

’눈은 돌출된 뇌‘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시각은 인간의 삶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기능이다. 포르투갈의 대문호 ’주제 사라마구‘가 1995년에 발표한 소설 동명을 원작으로 한 <눈먼자들의 도시>(2008)는 제목 그대로 세상 사람들이 시각을 잃는 전염병에 걸린 비극적 상황을 보여준다. 소개하기 전에 이 영화에는 매우 불쾌한 장면들이 있음을 밝힌다. 대소변과 쓰레기들이 곳곳에 널려 있는 불결한 장면도 있어서 식사를 하며 보기에도 적절치 않다. 어떤 상황에서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유쾌하고 행복한 내용으로만 채워질 수는 없지 않은가? 영화를 포함한 모든 예술은 인간의 삶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인간의 삶은 결코 아름다운 것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전염병의 증상은 모든 게 하얗게 보이는 것이다. 이 전염병에 예외는 거의 없다. 주인공(줄리안 무어)의 남편(마크 러팔로)인 의사는 물론이고 경관, 택시 기사, 약국 직원, 호텔 객실 청소부, 금융상담원, 경비원, 엔지니어, 안과병원 접수원 등등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전염되어 수용소에 들어온다. 남편과 운명을 같이하기로 작정하고 수용소에 스스로 갇혀 있는 주인공만이 시각 능력을 유지한다.

영화 '눈먼자들의 도시' 중 한 장면 제공=싸이더스

“주목 주목 주목. 유감이지만 정부가 내린 결정은 시민을 보호하려는 조치입니다.’백색 질병‘이 번지고 있기에 성숙한 협조가 절실할 때입니다. 연쇄 전염을 막기 위해 내린 조치는 격리 수용입니다.” 이것은 정부의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방송을 통해 전하는 말이다. 하지만 상황을 관리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관료들 역시 실명한다. 

보이지 않으니 모든 게 난장판이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용변들 때문에 역겨운 냄새가 진동한다. 수용소에서 부상자가 발생해도 치료를 위한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굶주린 개들은 죽은 인육을 먹는다. 이탈자에게 발포하는 총성이 들리자 수용소 내의 혼란은 극에 달한다. 이 카오스 같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건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독재자가 나타나 권총을 휘두르며 식량을 독점한다. 지금 상황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돈이나 귀금속, 심지어 힘을 가진 남성들의 쾌락을 위해 여성의 몸까지 밥값으로 요구한다. 도덕이나 윤리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은 음악과 물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와 귓속으로 들어오는 음악의 리듬에 맞춰 사람들은 발을 움직인다.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해 갈증에 허덕였던 사람들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건물 밖으로 뛰어나와 기쁨에 취해 빗물을 마신다. 홀딱 옷을 벗고 몸을 씻는 사람들도 있다. 

유일하게 시각이 멀쩡한 주인공은 이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지도자가 된다. 주인공은 자신의 남편과 일본인 부부, 젊은 여성, 노인, 소년 등 수용소에서 함께 지내던 몇 사람들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간다. 그곳은 갈 곳 없는 이들에게 둘도 없는 안식처가 된다. 그렇게 지내던 중 일본인 남성의 눈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자 모두가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자신들도 눈이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멈췄다. 전국의 초·중·고·대학교가 개학을 연기했고 비행기 길이 막히고 상가와 버스, 지하철에는 사람이 뜸하다.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사람들은 매일 목숨을 걸고 전장으로 나가는 기분일 것이다. 매달 임대료가 나가는 소상공인들, 일정이나 행사 등이 취소된 문화예술인들은 지금 아사할 판이다. 공공 기관의 신속한 판단과 모든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한 시기다. 전쟁 같은 상황이 하루속히 종식되고 사람들의 웃음꽃이 다시 피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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