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일은 단순히 동양 사상과 서양 사상이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서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그들의 유사성과 차이성을 동시에 제시하려고 노력하며, 그것도 관념적인 글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그의 첫째 특성이다.
김상일의 또 다른 특성은 그가 철학을 전개하면서 언제나 논리학, 특히 '거짓말쟁이의 역설'로 표출된 논리학을 주된 매개체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특히 불교의 경우에는 철학이 곧 논리학이며 논리학이 곧 철학이라고 말하며, 논리학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이 역설에 얽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모든 종교의 중심에는 바로 이런 역설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의 둘째 특성이다.
"서양철학에서 논리학은 부착물 정도다. 반면 불교에서 논리학은 철학의 중심이요 핵심이다. 불교는 깨달음의 과정에서 논리학을 배운다"-본문 37쪽에서.
그러나 김상일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그가 '국적 있는 학문'을 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이다. 조동일의 四學八方論으로 표현하면, 그는 '수입학'과 '시비학'과 '자립학'의 경지를 넘어서 '창조학'을 선사하려고 노력한다. 그의 이런 태도는 실로 서양 이론을 그대로 적용시키려는 대부분의 우리나라 학자들, 혹은 단지 그들의 학문 대상(소재)이 서양이 아니라 동양이거나 한국이라는 이유 한 가지 사실만 가지고 국적 있는 학문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소수의 학자들에게 큰 경종이 돼야 할 것이다. 이것이 그의 셋째 특성이다.
1969년 일본의 한 엿장수의 손에서 발견된 이래 최근에 언론을 통해 약간 그 가치가 재조명됐으나 아직도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원효의 '判比量論'은 한국 최초의 유일한 논리철학서, 불교를 인명 논리학의 三支作法으로 명쾌하게 설명한 해설서다. 김상일은 이미 1974년에 한태동 교수의 '의상과 원효에 대한 소고: 민족 연구의 일단면으로'를 접할 때부터 이를 무려 30년 동안 연구해 왔다. 이제 그 결과물이 바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로 풀어본 원효의 판비량론'이다.
김상일은 앞의 세 가지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다만 오지랖이 넓은 그가 가끔 너무 단순화시키거나 아예 삭제한 부분을 어떻게 만회하고 있으며, 국적 있는 학문을 하려는 사람이 받아야 할 국수주의자라는 비판을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되받아치는 지는 독자가 판단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