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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 :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기시모토 미오 외 지음, 역사비평사 刊, 423쪽)
논쟁서평 :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기시모토 미오 외 지음, 역사비평사 刊, 423쪽)
  • 정지호 경희대
  • 승인 2003.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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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사를 넘어서는 동아시아사 읽기의 전범

중국의 명청시대와 조선시대에 대해서 일본의 저명한 역사학자 기시모토 미오와 미야지마 히로시가 공동으로 집필한 '明淸과 李朝時代'가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로 번역됐다.

이 책은 명청시대와 조선시대에 대한 개설서라고 할 수 있지만, 금욕적인 견지에서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두 저자가 각각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개성이 풍부한 의욕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또한 구성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공저와는 달리 각기 서로 다른 영역의 전문가가 각자의 전문영역을 별도로 집필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용에 따라서는 같은 장의 주제를 가지고 서로의 영역을 비교 논함으로써 중국과 한국이라는 일국사적인 범위를 뛰어넘어 '동아시아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명청시대에 형성되고 창출된 동아시아 삼국의 전통

본래 '동아시아 세계'라고 하는 용어는 한 나라의 역사를 '일국사'라고 하는 틀에서 고립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폭넓은 문화권 속에서 상호교류하는 가운데 역동적으로 전개해 왔다고 하는 시점에 입각해 있는 것이다. 이는 1980년이래 일본사학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지역사회론'의 논리와 상호교감하는 것으로서 다시 말하면 각 국 역사의 생성 및 전개를 동아시아 제 지역의 상호관계 속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 책의 저술의도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 책은 전부 10장으로 구성돼 있다. 지면 관계상 일일이 거론할 여유는 없지만, 특히 마지막 장에 해당하는 '사람과 사회'는 두 저자가 각각 일본사회의 특징과 비교해서 중국과 한국 전통사회의 특징을 논함으로써 중국과 한국을 비롯해 일본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家'의 경우 한국에서는 '집', 중국에서는 '지아', 일본에서는 '이에'로 불리는데, 이는 발음상의 차이만이 아니라 그 내용 역시 서로 상이하다. 즉 일본에서는 가업이 중시돼 이에의 구성원에게는 가업을 유지 발전시켜 가야할 의무가 요구된다.

따라서 이에는 혈연관계 그 자체보다는 가업을 위해 노력하는 공동의 목표에 의해 지탱됐다. 이와 반면에 한국과 중국에서는 가업의식은 비교적 희박하지만, 가의 결속력을 위해 한국에서는 혈연관계 그 자체를 중시하는 반면, 중국에서는 혈연관계보다는 '氣'를 같이한다는 同氣의식을 중시하고 있다. '기'란 혈연관계를 뛰어 넘어선 혈연적인 감각으로 표현되고 있다. 서로 다른 종족간에도 宗譜를 통합해 하나의 지아를 구성하기도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식 속에서 나온 것이다.

이와같이 혈연, 기, 가업을 중시하는 한중일 삼국의 전통은 언제부터 형성된 것일까.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조선왕조와 명청시대에 걸쳐서 전통이 형성됐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이 시대는 오늘날 한국과 중국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시대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이 지닌 최대의 묘미는 각 국의 전통이 어떻게 형성돼가는가 라는 사실을 마이크로적인 견지에서 밝히고 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구적 관점에서 벗어난 시기구분도 주목돼

이 책은 역자 문순실이 논하고 있듯이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도 조선사를 한반도에 한정해서 바라보는 틀을 넘어서고 있다는 주장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서로의 역사를 일국사에 가두어 두고 '자국' 역사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타국 역사를 비판하는 현 시점에서 역자 김현영의 고민인 '역사인식의 공유는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한편 역서에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명청시대와 조선시대를 근세로 시대구분을 하고 있다. 일본학계에서 근세라는 용어는 나이토 코난(內藤湖南) 및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에 의해 군주독재정치, 서민의 대두, 신문화의 발흥이라는 점에서 宋代 이후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제시됐지만, 이후 연구자에 따라 근세라고 하는 시대규정이 내포하는 것은 실로 다양하다. 게다가 저자인 기시모토는 이전 서구모델에서 추출된 '중세', '근세'의 틀에 중국사를 끼워 맞추기보다는 유연한 시야를 가지고 중국 독자의 시대흐름을 추적하고자 하는 시도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한 바가 있으며, 굳이 말하자면 근세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대단히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역서의 제목으로 근세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은 저자의 의도를 벗어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럼에도 두 전문가들에 의한 정밀한 번역은 이 책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고 있으며, 또한 마지막에 실은 한중일 연구자들의 대담(이 내용은 원서에는 없다)은 동아시아사 나아가서는 세계사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주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도쿄대에서 '전통중국에 있어 합과경영의 사적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근세 중국의 사회경제사와 관련한 논문들을 많이 발표하고 있다. 역서로 '홍콩-아시아 네트워크의 도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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