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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혼란 우려 속 정치개혁 기대
국정혼란 우려 속 정치개혁 기대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10.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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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쟁점 : 재신임 논의를 보는 사회과학자 30인의 시각

학계는 이번 재신임 논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투표를 하고 말고, 재신임을 받고 말고의 문제 이전에 이것의 타당성, 발언의 의도, 현실적 의미, 야기시킬 문제, 한국 민주주의와의 장기적 관련성 등을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교수신문은 이에 대해 중견 사회학자, 정치학자 30인의 의견을 들어봄으로써 객관적 판단의 잣대를 구하고 멀리 내다보는 시야를 확보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유사 이래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발언한 이후 정국이 긴장하고 있다. 신당창당 때문에 더욱 복잡하게 분열된 정치권은 어제 한 말을 오늘 뒤집을 정도로 당익에 매몰된 무책임한 정략주의로 치닫고, 언론도 온갖 추측성 보도를 통해 이 문제를 고도의 정치적 게임으로만 부각시켜 찬반투쟁과 시기논란 같은 본말이 전도된 엉뚱한 논쟁 속에 국민들을 가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재신임 국민투표가 행정부의 일방적 쾌속추진으로 12월 15일 이전이라는 구체적 시기까지 거론되는 등 가시화의 물살을 타고 있어 민심을 다급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국민투표를 위한 법리적 검토, 정책과의 연계여부 등에서 정치권 합의를 거치지 않은 단계라 혼란의 파고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학계의 답변을 전체적으로 요약해볼 때 재신임 투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약간 우세했다. 절대불가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하지만 적극적 지지입장도 적은 수는 아닌지라 학계도 의견도 토론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해석된다.

먼저 가장 쟁점이 되는 ‘위헌여부’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의 교수들이 위헌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 박형준 동아대 교수, 김영명, 유팔무 한림대 교수 등은 “타당성이 없다”라는 의견부터 “말도 안되는 초법적 발상”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편 강수택 경상대 교수, 신광영 중앙대 교수, 박효종 서울대 교수 등은 “헌법에 어긋나지만, 정치적 합의를 거칠 경우 할 수도 있다”라고 가능성을 열어 뒀다. 박길성 고려대 교수는 “법적, 사회규범적, 현실정치적 차원에서 꼼꼼히 따져봐야겠지만, 현재로선 충격요법으로 비치는 만큼 타당성보다 우려스러움이 앞선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통령 발언의 ‘의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열에 아홉이 “정국타개용”이라고 답변했고, 도덕성·국무수행 운운한 발언의 순수성에 대해서는 반응이 반반으로 갈렸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는 “순수하다, 의도있다는 식의 평가는 그다지 의미가 없”으며, “현 정부가 사회각층의 개혁의지를 업고 등장한 정부인만큼 정치개혁에 대한 본질적 의지에 추동된 결정인지를 밝혀내는 게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현 정국에서 재신임 국민투표가 갖게 될 의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도출됐다. 그 중 다수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고, “정치개혁의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견해가 뒤따랐다. “한국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극명히 드러낸 사례”(강원택 숭실대), “국민투표 등 직접민주주의의 경험적 선례”(김용민, 한국외대), “헌정질서 파괴의 선례”(류길재, 경남대), “민주화 이후 지도자의 리더십에 대한 고민의 장 제공”(박명림, 연세대) 등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강수택 교수는 “정파간, 언론-정계간, 언론내부간의 갈등으로 일반 국민들의 의견을 알 수 없었던 상황에서, 민심의 향방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재신임 국민투표가 야기시킬 문제점에 대해서는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이 “방법, 시기 등을 놓고 정쟁이 가열, 국정혼란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총선과 맞물려 지역구도의 강화”, “경제적, 사회적 불확실성의 가중”, “민생소홀”, “국민투표남발의 우려”, “정치의 게임장화” 등의 의견이 나왔다.

한편, 장기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의 발전에 플러스 요인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다수의 학자가 고개를 저었다. 우선 대의민주주의라는 원칙이 흔들리게 된다는 점이 가장 많이 꼽혔고, 그러면서도 국민소환제와 책임민주주의의 실현, 국민의 권리 확대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중복답변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법에 어긋나는 사안을 민주주의와 결부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원칙론적 입장, “민주주의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는 조금 비정상적 방법을 보완할 수 있는 체계도 필요하다”(정해구, 성공회대)는 현실론적 입장도 소수지만 대조를 이뤘다.

만약 정치개혁안과 연계를 이뤄 재신임을 해야한다면 “선거법, 정치자금법의 투명화”와 연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 다수를 이뤘다. 재신임 논의의 계기가 불법선거자금에 있기 때문에 명분도 서고, “국회의원들이 부패의 가장 큰 고리를 이루는 정치현실에서, 개혁적 선거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힘든 현실을 염두에 둘 때 그렇다”는 노진철 경북대 교수의 말은 그 근거가 된다.

정치학자와 사회학자 간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만한 입장차이는 보이지 않았다. 정치학 쪽이 법에 좀더 민감했고, 원칙주의가 많았으며, 사회학에서는 종합적인 판단을 보이려는 경향이 약간 우세했다는 것 정도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나는 이렇게 본다

새로운 정치문화의 계기로 작용하길
"현재 우리 정치사회는 정부와 거대 야당이 주도하는 국가권력의 비생산적이고 불안정한 균형상태라 할 수 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새로운 정치가 뿌리내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국민투표를 위해선 이런저런 비용을 치러야 하겠지만, 현재와 같은 불안정한 균형을 지속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주의와의 관계는 국민투표제적 민주주의라는 점에 문제가 있지만 책임정치의 새로운 실험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정치개혁과 연관시킬 경우,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위해 정당법, 국회법, 부패방지법 등 포괄적인 개혁이 돼야 한다."
(김호기 / 연세대·사회학)

동정표로 얻은 재신임, 효과 없다
"대통령 하기 어렵다는 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문제는 해결방식이 꼭 재신임이어야 하는가다. 그 동안 국민이 지지를 안 보내서 어려웠던 것은 아닌데, 공황상태로 몰아간 것은 잘못이다. 만약 재신임 투표에서 대통령 하야에 따른 불안을 감안한 동정심리가 작용한다면 재신임 받았을 때도 달라질 건 없다. 또한 재신임을 두고 논쟁이 붙는 양상을 보면 우리 사회가 전혀 생산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박길성 / 고려대·사회학)

헌정구조 개편의 기회로 삼자
"정치적 타당성과 헌법적 부당성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너무 성급한 발언이었고, 도덕성 위기를 끝까지 몰고 가지 못해 정치적 동기가 금방 표면에 드러났다. 재신임 논의는 노무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민주화 이후의 리더십을 과연 제대로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대통령 권력이 강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약하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되는 '헌정구조'가 개편돼야 한다. 국민투표에 부쳐 분권형 대통령제를 하든 내각제로 나아가든 의회, 사법부, 대통령, 시민사회의 관계가 재조정돼야 한다."(박명림 / 연세대·정치학)

책임지는 절차 생략한 정략주의적 발상
"측근 비리에 대한 반성과 극복방법을 먼저 제시하고 개선을 약속한 후 그것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재신임을 묻든, 사퇴를 하든 했어야 했다. 지금의 발언은 비논리적이고 무책임하며 전략에 불과하다. 그 동안 리더십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 국정운영 방식을 이번 재신임 발언 과정에서도 반복하고 있다. 아마 재신임을 묻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 판단된다."(김만흠 / 가톨릭대·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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