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문화칼럼] “납득이 가게끔 살아. 누구의 삶도 아닌 너의 인생이니까”
[김희철의 문화칼럼] “납득이 가게끔 살아. 누구의 삶도 아닌 너의 인생이니까”
  • 교수신문
  • 승인 2020.02.03 21: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영희 감독의 '가족의 나라' 리뷰

 1959년부터 84년까지 9만여 명의 재일교포들이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땅, 북한으로 이주했다. 이른바 ‘재일조선인북송사업’으로 불리는 이 결정은 전후 일본에서 생활고와 민족적 차별에 신음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살아가던 조선인들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양영희 감독의 <가족의 나라>(かぞくのくに, 2012)는 그렇게 해서 이산의 아픔을 겪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조선인 ‘성호(이우라 아라타 분)’ 역시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북송선에 올랐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리애(안도 사쿠라 분)’는 일본에 남았다. 영화는 1997년 여름, 25년 만에 성호가 일본으로 돌아오는 상황으로 시작한다. 완전히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성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단기 방문이다. 성호는 5년 전 뇌종양 진단을 받았지만 북한의 의료기술에는 한계가 있었다. 북한에서 성호와 함께 온 감시원(양익준 분)은 껌딱지처럼 따라다니며 가족을 감시한다. 북한 당국이 허락한 치료기간은 단 3개월.

 가족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가족 구성원로서의 모습을 실제 가족인 것처럼 섬세하게 연기했다. 한국의 여느 아버지처럼 무뚝뚝하고 자식들과의 소통에 서투른 아버지는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간부로 일하고 있다. 그가 일하는 사무실 벽엔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초상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아버지는 딸의 배우자에 대해 “일본인은 안 되고, 조선국적은 되지만 남한국적은 안 되고, 미국 사람은 당연히 안 된다는 원칙을 내세운다. (이 대사는 양영희 감독의 데뷔작이자 사적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에서 아버지가 딸 ‘영희’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어머니는 언제나 살갑고 애틋하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머니는 커피숍을 운영한다. 어머니는 장사를 하다 잔돈이 생기면 아들 사진 옆 저금통에 동전을 넣고 그렇게 모은 돈을 아들과 손자가 살고 있는 북한에 보낸다. 아버지의 동생, 그러니까 성호와 리애의 친삼촌은 자신의 형님이자 남매의 아버지가 가진 사회주의 사상에 불만이 많다. 그는 “부패한 자본주의도 나쁘진 않다”면서 조카에게 용돈을 챙겨 준다.

 양영희 감독 자신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는 리애는 자유분방한 성격에 술도 잘 마신다. 북한의 공작원, 즉 “스파이를 할 수 있겠냐”는 오빠의 조심스런 제안을 그녀는 단호히 거절하며 같은 핏줄이지만 “상반된 사상을 가진 적”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조총련계 재일교포의 신분일 수밖에 없다. 서울로 급히 가게 된 리애의 지인이 나중에 같이 서울에 있는 맛집에 가자고 청하지만, 리애는 그럴 수 없다. 조총련계는 북한사람처럼 인식되어 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성호가 북한으로 간 후 25년이라는 세월은 많은 것을 변하게 했다. 여전히 차별이 있긴 해도 동성애자나 재일교포 중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사는 사람들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성호는 어릴 적 친구들과 해후한 술자리에서 별로 말수가 없다. 북으로 돌아가면 어디를 다녔는지 누굴 만나서 무얼 얘기했는지 모두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에 있는 가족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문제다.  

 성호의 종양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면 마비나 기억장애, 심하면 치매 증상까지 생길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 국가가 허락한 체류 기간 고작 3개월은 치료 기간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과연 성호는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북한으로 돌아가기 전 오빠는 동생에게 부탁한다. 북한에 사는 자신은 그저 살아남느라 생각하며 살기 어렵지만 너는 생각하며 살라고. 어떻게 살까 생각해서 납득이 가게끔 살라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말고.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 삶을 살라고. 누구의 삶도 아닌 너의 인생이니까.

 영화 <가족의 나라>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갈등, 국가와 국가 간의 갈등 속에서 상처받는 개인들을 조명한다. 일방적으로 지시 · 통보하는 국가, 개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념, 국가의 지시에 아무 이의 없이 순종적으로 따라야만 하는 체제에 대해 양영희 감독은 비판적 태도를 취하면서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아 온 재일교포들의 혼란과 상처, 상실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처음 본 양영희 감독의 작품은 2006년 작 <디어 평양>이었다. 이 작품이 나오기 몇 년 전 아버지와의 갈등을 소재로 사적 다큐를 만들었던 필자는 <디어 평양>을 보면서 참 많이 울었었다. <가족의 나라>와 다큐멘터리 영화 <디어 평양>을 함께 감상해 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양영희 감독은 <디어 평양>을 만들기 훨씬 이전부터 NHK 방송다큐멘터리 <흔들리는 마음>(1996) 등을 제작하면서 오랜 기간 실력을 쌓아왔다. 자신이 직접 촬영과 각본까지 맡았던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에 이어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극영화 <가족의 나라>로 양영희 감독은 선댄스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등에서 수상했다. 양영희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