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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획―학내연구소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1) : 생각을 바꾸면 지원이 보인다
연재기획―학내연구소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1) : 생각을 바꾸면 지원이 보인다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10.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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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실 없애고 도서관 짓고…맨파워로 승부

편집자주: 학내 연구소들이 잘 운영되고 커나갈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사전지식과 추진방안을 확보해야하는가를 두고 연구소 운영방안 기획을 세차례 연재할 계획이다. 첫회는 연구소 성장의 가장 기초적인 조건과 그것의 전형적인 시스템을 제시한 뒤, 잇따라서 성공한 연구소 맨파워의 경쟁력, 과제수행의 절차상에 따르는 구체적인 묘안들을 차례로 짚어볼 예정이다.

 

학내연구소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생긴지 몇 년 안된 연구소가 고참들을 제치고 그 학교의 대표선수로 성장한다든지, 밖에 나가서 정부보조금을 '몇십억' 단위로 들여온다든지, 그러고 나서는 남들은 번번이 거절당하는 연구결과 출판을 한 출판사를 잡아 줄을 대놓고 시리즈로 펴내는 등의 박진감 넘치는 활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과연 어디에서 그런 요령과 재간이 나오는 것일까.

연구소가 크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연구할 수 있는 공간, 우수한 연구인력, 노력에 합당한 보수가 해결돼야 묵직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수행할 수 있다.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소 등 요즘 '뜨는' 연구소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면 연구소라는 것이 대학, 연구 리더, 학외 지원단체가 관계 맺는 삼각구도의 절묘한 릴레이션십 속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단계를 간략히 보면, 먼저 연구소 창립을 주도하는 교수의 대학 설득과정이 있다. 그 학교의 학문적 지향과 중장기적 방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기획안을 바탕으로 열정적인 접촉활동을 벌인다. 가령 '우리 연구소가 학교 전공특성화의 기초작업을 하겠다, 나아가서는 교육 커리큘럼을 짜서 학생들을 유치, 강의하겠다'는 식으로 매혹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다.

장소와 인력 등 기초적인 토대가 마련되면 외부지원을 활용해야 한다. 여기서 성패가 갈리는 지점은 학진이나 과학재단 같은 큰 지원단체의 정책에 대한 해박한 이해, 국가 각 부처별 지원동향에 대한 꼼꼼한 스크린이 돼 있는가다. 여기에서 통과가 되면 남은 것은 연구환경의 혁신이다. 서열 폐지, 의사전달 구조의 혁신, 참고자료실의 구축, 해외정보통과의 쌍방향 채널 구성 등이 최첨단으로 준비돼야 한다.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소장 주성수 행정대학원 교수)는 'NGO'라는 시대의 기류를 절묘하게 읽어낸 사례다. 회장인 주성수 교수가 총장을 찾아가서 "이제 NGO의 시대가 왔다. 시민사회의 연륜과 학자들의 가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데 연구소 하나 없다. 우리 학교가 이걸 선점하자"고 제안을 했고 흔쾌한 동의를 얻어냈다. 워낙 청사진이 뚜렷해서 초반 지원이 복권당첨금 수준이었다.

제3섹터연구소에는 소장실이 없다.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연구교수들이 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기 때문이다. 이런 면학분위기 조성 덕분에 1998년 개소한 이 연구소는 지난해부터 학술진흥재단의 중점지원연구소로 지정되는 개가를 올렸다.

이를 바탕으로 양질의 연구환경 조성에서도 제3섹터연구소는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연간 1천4백만원에 이르는 예산을 연구와 관련한 도서를 구입하는 데 쓰고 이를 도서관으로 만들고 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장서수는 1천2백권 가량이며, 6년간의 프로젝트가 끝날 시점에는 약 9천만원 상당의 예산이 투여된 NGO학 전문도서관이 탄생할 예정이다.

또한 연구교수들을 위해 교내에 강의를 신설했다. '지구환경의 이해', '신사회 운동과 NGO', '한국과 세계의 NGO'(교양), '정책과정과 NGO'(행정), '정치와 NGO'(정치학) 등이 신설된 과목. 자신의 연구성과를 학생들과 점검하는 기회를 갖는 동시에, 교내를 벗어나지 않고 연구 과정 전반을 진행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목적 때문이었다.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소는 학교당국과 연구자들의 요구가 적절한 시점에 접점을 형성해서 성공한 케이스다. 대외활동이 활발한 성공회대 사회과학자들이 점점 개별적 외부활동에 한계를 느끼고, 내부에서 중심을 잡아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학교 또한 밖으로만 도는 식구를 학교발전을 위해 끌어들일 필요를 느낀 것이다. 그래서 지난 1996년 조그마한 사랑방처럼 만들었던 '한국사회연구소'를 1999년에 '문화' 영역과 합쳐서 '사회문화연구소'로 재출범시킨 것. 그동안 쌓아온 연구공력을 프로젝트화해서 추진하니 금방금방 열매가 맺혔다. 최근에는 규모가 엄청나게 커져서 이름을 사회문화연구원으로 바꿔 원급으로 승격하고, 그 안의 분과들을 개별 연구소로 독립시키는 걸 내부추진중이다. 더 나아가 연구교수들이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연구소 스스로가 연구기관이면서 동시에 교육기관이 되게끔 기반을 확충하고 있다.

특정 분야의 맨파워를 형성하는 곳도 있다. 중앙대 산업경영연구소 인삼산업센터(소장 장경천 경영학과 교수)는 연구소를 통해 산학연을 일궈낸 케이스다. 인삼연초공사가 민영화되면서 인삼연구센터가 없어지자, 중앙대에서는 국내 최초로 인삼과 산양산삼에 대한 모든 분야에 걸쳐 연구를 진행하는 센터를 개설했다. 그것이 지난 1998년의 일이다. 이 연구소는 2년전부터 특수대학원에 인삼가공업자, 인삼무역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인삼전문가 과정을 설치했다. 이론을 배우러 왔던 현업종사자들과 연구소가 상승관계를 만들어 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고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 9월 26일에는 강원도 인제군에 5만여 평 부지의 연구소 부설 중앙산삼농장을 만들었다. 묘종산삼의 대량 육성은 물론, 재배자와 학생들에게는 교육의 장으로 기업과의 산학협력을 통해 인삼 관련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향후 몇 년 이후에는 외부지원 없이도 연구소 자체 예산을 확보해 자생성 있는 연구소가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내부 전망이다.

학내연구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내부와 외부의 자원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시대를 빈곳을 찌르는 실질적인 주제의 전망성을 획득해야 하고, 선진적인 연구환경이 뒤따라야 한다. 이 삼박자를 머릿속에 그리고 열정적으로 추진할 때 조그마한 나의 집은 어느새 궁궐로 변모해있을 것이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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