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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 :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소의 '한국사회 재인식 시리즈'
논쟁서평 :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소의 '한국사회 재인식 시리즈'
  • 김덕영 카셀대
  • 승인 2003.10.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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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으로 살펴본 한국사회...'일반' 이론화 실현엔 의문

김덕영 / 카셀대·사회학

각각 5백쪽 안팎의 묵직한 세권의 책을 받았다.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소가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진행하고 있는 '한국사회 재인식 시리즈'의 두번째 연구 결과물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이들 책은 부피뿐만이 아니라, 제목 역시 묵직하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 들여다봐도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고는 한다.

이 책들은 엄청난 정보와 지식 그리고 인식을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에―이것은 물론 이들 책의 커다란 장점이자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서 일일이 그 내용을 언급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단지 전체적인 수준에서 책의 의미와 한계를 짚어보기로 한다.

과학과 연구의 제도화 보여주는 시도

한국의 현대사는 짧은 기간에 다양한 부분에서 엄청난 변화를 체험한 역사다. 따라서 사회과학자라면 누구든지 이를 총체적으로 해석하고 이론화시켜야 한다는 필요성과 욕구를 느낄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번에 나온 세 권의 책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저자들은 한국 현대사를 "산업화, 민주화, 시민사회 발전의 복합적 과정"으로 규정하고, 바로 이 과정을 새로운 지평에서 재인식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들은 특히 우리 현대사의 재해석을 지향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일반이론화를 지향하고 있다.

연구방법에 있어서도, 담론이라는 새로운 프리즘으로 현대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를 종합적으로 조망하려는 시도는 매우 인상적이고 고무적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주로 하버마스가 어떻고 푸코가 어떻고 하는 식으로 꽤나 막연하고 추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았다.

이번의 책들이 지니는 또 하나의 의미는 제도적인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30명이 넘는 연구자가 참여하는 커다란 연구 프로젝트를 학술진흥재단이 6년간 지원한다는 사실은 과학과 연구의 제도화를 위해서 분명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여러 분야의 사회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한 학제간 연구가 가능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과 같이 한꺼번에 묵직한 책이 세 권이나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먼저 한국의 현대사를 정치(자본주의), 경제(민주주의), 사회(시민사회)의 세 가지 영역으로 설정하고, 한국사회에 대한 재인식을 시도하는 것은 그렇게 새로운 주제설정은 아닌 듯 싶다. 더구나 사회분야에서는 사회문제와 사회정책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시민사회에 대한 시야를 좁히고 있는 인상을 준다. 연구자들이 민중, 약자, 대안, 변화, 진보, 해방 등의 가치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들 가치는 매우 중요함에 틀림없지만, 다른 한편 연구자들이 추구하는 이론화, 그리고 특히 일반이론화에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근대적 개인의 실종 아쉬워

그리고 문화영역이 사회문제와 사회정책의 하부 분야로 다뤄지고 있는데, 한국의 현대사는, 다른 나라들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정치, 경제, 사회와 더불어서 문화 발전의 복합적 과정으로 설정하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화 역시 하나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삶의 영역으로 설정하고 이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더불어서 구조적인 측면 못지 않게 한국의 '근대적' 자아의 형성과 발전과정 역시 우리사회를 재인식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자아의 주체적인 측면이든 객체적인 측면이든 상관없이, 그리고 교육에 의해서, 아니면 그 밖의 사회 문화적 제도에 의해서 형성되고 발전된 것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연구자들은 "사실적 연구의 심화"와 더불어서 현대사의 "새로운 재해석 및 일반이론화"를 추구하며, 그 중에서도 특히 후자의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의 "해석적 재인식"을 행한다. 이른바 경험과 이론의 관계다. 분명 의미 있고, 언젠가는 해야 하는 한국 사회과학계의 과제다. 하지만 이 또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어떻게 30명이 넘는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연구 프로젝트에서 이론화, 그것도 '일반' 이론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방대한, 그것도 가급적이면 완벽한 사실연구를 통해서 이론과 일반이론에 도달하려는 시도는 자칫 경험주의적 오류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연구방법에 있어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수많은 연구 결과물이 구사한 방법에 뚜렷한 차이를 감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예컨대―연구진이 고백하듯이― 담론의 미시적인 작동양식을 심도 있게 다루지 못했다. 아마도 질적인 참여관찰 방법을 동원했으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이외에도 비교연구와 같은 연구방법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다양하고 입체적인 접근을 가능케 할 것이다. 사실연구와 방법론의 구축 그리고 이론화는 사회과학을 버티는 삼각다리와도 같다.

이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를 종합적으로 재인식하고자 하는 시도는 지속돼야 할 것이다. 현대 한국사회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했든, 아니면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발전했든, 사회과학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을 좀더 총체적으로 그려보라고 끊임없이 이론적으로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바람직하지 못하다면, 그 대안을 찾아보라고 끊임없이 실천적으로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독일 괴팅엔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카셀 대학교에서 독일 대학교수 자격 (Habilitation)을 취득했다. 사회학 이론과 방법론, 지성사, 문화사회학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논쟁의 역사를 통해 본 사회학", "주체, 의미, 문화"와 "Georg Simmel und Max Weber"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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