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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리뷰: 민주주의는 종료된 프로젝트인가(학단협 엮음, 이후 刊)
주간 리뷰: 민주주의는 종료된 프로젝트인가(학단협 엮음, 이후 刊)
  • 강문구 경남대
  • 승인 2003.09.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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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민주화 시대의 話頭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는 하나의 선명한 경계선을 각인시켰다.  박정희의 독재와 유신과 긴급조치의 시절, ‘광주’와 뗄 수 없는 전두환의 철권통치와 저항과 ‘분신’의 시절, 당시 ‘민주주의’는 언젠가 도래하게 될 횃불의 전조이자 심각하게는 일용할 영혼의 양식이었다.  조금 행복했던 적도 있었다.  6 29 선언 직후, 음미했던 사필귀정의 울림에 대한 경건한 수용의례.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로 충만해지자 말자, 우리는  예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민주주의의 현실’이 또아리 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후 ‘민주주의’는 비록 악마 그 자체는 아닐지라도 수많은 악을 덮어주고 주고 봉합해주는 위선(僞善), 때로는 무능을 눈감아주며 한없는 인내를 강요하는 위악(僞惡) 같?존재가 되었다. 이제 ‘민주주의’는 밝혀주는 빛의 이미지도 경건해지는 양식도 아닌,  반성하지 않고 흉물스럽고 사악하기도 한 한국정치와 한국의 정치가들과 구분하기조차 힘든 그 무엇이 되어버렸다.   

민주화 진행 이후에도 여전하고 오히려 더 악화된 한국정치에 대한 분노와 혐오는 기실 위험한 징조다.  최장집교수는 최근 출간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필자도 민주화 이후의 한국정치에 대한 실망과 비난을 적지 않게 토로해왔다. 

무엇이 문제인가?  고질적인 한국정치, 다시 말하자면 민주화나 민주주의로도 교정할 수 없는 심각한 암적 증세가 한국정치 속에 들어있는가?  아니면 한국정치에 대한 교정 수술요법으로서 그간의 민주화/민주화개혁 등이 적절치 못했던가?  이도 그도 아니면, 그 근원적인 자본주의, 자유주의 혹은 신자유주의라는 리바이던은 본래 그런 본질을 가졌고, 그 위에서 전개되고 드러나는 양상은 빙산의 일각이자 그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부산물 정도인지, 그리하여 우리는 그 본질을 알지 못해 노심초사하기만 할 뿐, 또 허황되게 가능치도 않는 근본적/부분적  치료운운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건지?

"한국의 시민운동가에게는 지배와 국가를 바라보는 인식론적 전환이 요구된다. 실현된 민주주의의 허구성과 모순성을 직시하는 일 말이다."

한동안 활발하던 한국의 민주주의/민주화 논의가 좀 잠잠해졌다고 생각할 즈음에, 제목도 강렬한, 하지만 혼돈스러운 이 책은 그간 치열했던 한국사회의 변동/변혁을 민주주의/민주화/민주개혁의 관점에 조망하고자 하는 성실한 논의로 보인다.  “권위주의 시대가 마감되고, 민주주의로 이행한 지 15여년이 경과했으며, 또 민주화운동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던 양김시대(?: 필자)가 끝나고, 포스트-양김 시대로 이행했다”는 사실이 문제의식의 단초를 이룬다. 

머리말의 초점은 ‘민주개혁’의 실종으로 모아진다.  민주개혁이라는 시대정신의 실종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 책의 핵심논지로 보인다.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을 거치면서 심각하게 대두된 민주화/민주주의에 대한 실망과 각종 개혁정책의 착종 현상, 심지어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통해 더욱 악화된 소득불평등과 여타 사회경제적 모순 현상에 직면한 ‘민주주의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적 검토작업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말했듯이, 제목부터 문제의식과 실린 내용들을 잘 담지 못하는 인상을 준다.  민주주의와 민주화를 민주개혁과 등치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거대프로젝트로서 민주주의와 한국사회에서 그간 혹은 현재 당면하고 있는 개혁프로젝트를 동일선상에서 투시하는 것은 혼돈을 배가시킨다. 

소박하게 말한다면, 왜 한국 민주화과정 하에서 추진된 개혁/개혁정책은 번번이 실패하고야 마는가의 문제 아닌가.  만약 이러한 문제의식에 충실히 부응하려 한다면, 민주화 과정하에서 진행된 개혁의 실종과 한계, 이와 연관된 사회경제적 정당정치 등의 차원, 교육 언론 차원의 모순의 심화 퇴행현상에 대한 문제의식과 분석들이 체계화되고, 이에 대한 진단과 대안의 모색이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2부의 한국의 실질적 민주주의는 노동과 교육과 언론 문제에 대한 분석을 통해 민주화 이행 이후에도 지지부진한, 때로는 퇴행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사회의 민주화문제를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시금석으로 전제하면서,  1987년 이후 노동사회의 변동과정을 민주주의의 확대와 질곡이라는 각도”에서  본 “노동체제 변동과 민주주의”의 문제의식은 적실하다. 

이러한 2부의 한국민주화가 빚어낸 개혁실종의 문제의식에 한국에서의 ‘진보정당’의 현실논의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민주개혁 실종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따라서 그 원인에 대한 진단과 대안의 모색으로 이어지는 것이 타당하다.  그 원인에 대한 진단은 지역주의정치라는 특수한 현실분석으로부터   한국에서의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논의라는 거대담론분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것이다. 

대안모색 역시 한국의 진보주의, 진보정당에 대한 논의로부터, 전자민주주의, 공동체주의등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진단과 대안모색을 종합할 수 있는 한국의 사회운동, 민주화(민주적 공고화)의 과제 등에 대한 전망으로 귀결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민주개혁의 성찰과 포스트-민주화(?:역자) 시기의 화두’를 찾고자 하는 이 책의 기획의도는  마지막 장에 가서야 일관성과 연관성을 가질 뿐, 몇몇 성실하고 빼어난 논문들에도 불구하고 성찰과 화두를 풍부하게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하여간 한국민주화 과정하에서 진행된 ‘민주개혁’의 실종과 소진과 한계에 대한 논의는 끝날 수도 끝나서도 안되는 프로젝트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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