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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 『볼츠만의 원자』 (데이비드 린들리 지음 | 이덕환 옮김 | 승산 刊)
주간리뷰 : 『볼츠만의 원자』 (데이비드 린들리 지음 | 이덕환 옮김 | 승산 刊)
  • 강신규 서울대
  • 승인 2003.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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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츠만으로 기술한 현대물리학사

강신규 / 서울대·물리학

데이비드 린들리의 '볼츠만의 원자'는 19세기 고전 물리학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원자가설을 토대로 통계적 방법과 확률을 이용해 열에 대한 현상들의 물리학적 의미를 규명한 논쟁을 다룬 책이다. 볼츠만이 일생을 바쳐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를 도입한 이론을 두고 그 진위여부를 둘러싼 물리학적, 철학적 논쟁을 담고 있다. 볼츠만의 일생을 소개하는 과정 속에 과학이론이 어떻게 정립되는가를 정제해놓은 전기 이상의 교양과학서라 할 수 있다.

린들리는 이 책에서, '만물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작은 알갱이인 원자로 구성돼 있다'는 고대 자연철학의 전통이 베르누이, 헤라패스, 워터스톤, 클라우지우스를 거쳐 맥스웰과 볼츠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과학계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됐음을 소개한다. 하지만 실험을 통해 직접 관찰할 수 있는 명백한 법칙들을 가상적인 입자인 원자들의 움직임으로 설명한다는 것을 두고 당시 물리학자들은 "과학법칙이란 절대적인 확실성과 예외가 없는 규칙을 근거로 해야만 한다"는 반응을 나타내 당대에 얼마나 받아들이기 어려웠는가를 보여준다.

린들리는 과학이 가설이나 이론이 아닌 관찰 가능한 사실만을 근거로 해야한다는 단순한 원칙과 철학에 집착했던 원자론 반대자들의 비판 속에서, 볼츠만이 자신의 이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치열한 논쟁들 속에서 자신의 이론을 정립시켜 가는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당대에 통념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과학의 방법 및 철학에 근거한 자연 현상의 법칙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치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논쟁이 요구되는가를 보여준다. 그 과정을 통해 오늘날 '이론물리학'이라고 부르는 독자적인 지식 구조 즉, 물리학의 이론이 명백한 사실이나 관찰 내용들과 관계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이론적 범주 안에 당당한 위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볼츠만과 마흐의 논쟁은 원자론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물리학의 목적과 물리학자들이 추구해야 하는 이해와 설명의 성격에 대한 것이었다"(서문에서)

존재의 실재에 대한 증거 없이 가설에 입각해 우주만물의 근본을 설명하려는 시도들은 오늘날 소립자 물리학 및 초끈이론의 등장으로 이어지며, 가설로만 여겨졌던 원자론에 입각해 열에 대한 현상의 물리적 의미를 알아내고자 했던 볼츠만의 과학 이론이 그 모체가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오늘날 널리 연구되고 있는 복잡계의 과학도 볼츠만의 통계적 시각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현대 물리학이 이런 볼츠만의 독자적인 과학 연구방법 및 아이디어에 뿌리를 두고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린들리는 "원자 가설을 바탕으로 한 볼츠만의 열역학적 방법이 어떻게 정설로 자리 잡게 됐는가, 그리고 볼츠만의 과학 방법이 현대 과학의 탄생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게 됐는가"에 관한 질문에 충분한 답을 내려주진 못했다.

책의 말미에 아인슈타인의 1905년에 발표된 두 번째 논문과 플랑크의 에너지 양자에 관한 아이디어를 소개하면서 "난해한 음악이나 초현실적인 연극처럼 과학적인 아이디어도 창조자와 준비된 청중이 필요하다"고 내린 결론은 볼츠만의 과학 방법이 정설로 자리 잡게 되고, 현대 과학에서의 위상을 소개한 시작에 불과하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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