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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6 - 예수는 권력 인정한 적 없다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6 - 예수는 권력 인정한 적 없다
  • 교수신문
  • 승인 2019.11.1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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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열전6] 예수

역사적 예수와 아나키스트 예수
앞에서 보았듯이 크로산 등이 말하는 ‘역사적 예수’는 집이 없고 가족과 함께 살지 않으며 소유를 부정한 점에서 키니코스학파와 공통된다. 당시의 유대사회는 물론 로마제국의 핵심 가치도 무시한 그들은 가난을 추구했고 평등주의적인 삶을 살았으며 정착하지 않고 항상 떠돌아다니며 현실 국가를 부정하고 이상국가나 신의 나라에 대해 설교했다.

프레포지에가 <아나키즘의 역사>에서 예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듯이 종래 예수를 아나키스트로 본 아나키즘 책은 없었다. 톨스토이와 같은 기독교 아나키스트들도 예수를 아나키스트라고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들이 믿는 기독교의 교주인 예수를 아나키스트로 보았음에 틀림없다. 크로산은 톨스토이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를 비롯한 ‘역사적 예수’의 논자들은 톨스토이를 그들의 선구자로 모셔야 할 것이다.

예수를 아나키스트로 볼 여지는 성경 곳곳에 있다. 가령 <누가복음> 4장에는 예수가 40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예수에게 마귀가 말한다. “네가 신의 아들이라면 이 돌을 빵이 되게 하라.” 이에 예수는 성경에 “사람이 빵으로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다고 답한다. 그러자 마귀는 세상의 모든 나라를 보여주며  “내가 이 모든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 네가 나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이 네 것이 될 것이다.”라고 한다. 예수는 성경에 신만을 섬기라고 쓰여 있다고 하며 마귀의 시험을 거부한다.

첫 시험에서 예수는 물질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고 삶의 기본인 빵을 중시하지만 그보다는 정신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둘째 시험의 경우 그 의미는 더욱 분명하지만 거기에는 예수가 권세와 영광을 거부했다는 점 외에 중요한 점이 있다. 먼저 권력이 마귀의 것이라는 점을 예수가 부정하지 않았고, 반대로 자신은 권력을 갖지 않으며 앞으로도 갖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는 점이다. 즉 권력은 악마의 것으로 악마가 나라에 주는 것이며 악마는 자신에게 절하는 자에게 권력을 주어 나라를 만들게 한다는 것이다. 악마에게는 또 다른 것이 있는지 몰라도 여기서 분명한 것은 권력은 악마의 것이고 국가도 권력자도 악마의 것이며 그 악마를 권력자나 국민이 마치 신처럼 숭배한다는 점이다. 예수가 그 점을 적극적으로 인정한지 아닌지는 불분명하지만, 악마에 대항해서 권력이나 국가가 악마의 것이 아니라 신의 것이라고 하지 않은 점은 분명하다. 즉 국가나 권력이 신의 것이 아니라고 함은 분명하다. 

이는 예수가 예루살렘에 가는 길에 “너희가 아는 대로 세상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권력으로 지배하고 고관들은 세도를 부린다.”(마태복음 20:25)고 한 말과 관련된다. 이는 폭정 아닌 국가 권력은 있을 수 없고, 국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고 생각하는 예수의 권력관을 보여준다. 따라서 “칼을 쓰는 사람은 다 칼로 망한다.”고 한다.(마태복음 26:52) 이는 산상수훈에서도 볼 수 있는 폭력의 부정, 즉 비폭력주의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권력과 국가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았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여기서 위 <마태복음> 구절 뒤에 이어지는 다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럴 수 없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게 되고 싶은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 싶은 남의 종이 되어야 한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내 생명마저 주려고 왔다.” 즉 예수는 부패 권력에 저항하기를 권하지 않고, 어떤 권력도, 권위도, 계급도 없는 새로운 사회를 세우라고 권했다. 이는 기존의 현실 권력 자체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예수 사후 교회가 권력과 관련을 맺고, 자신의 권위를 창조함으로써 즉시 부패한 것을 미리 경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위에서 든 첫째 이야기는 예수가 초기에 악마와 나눈 이야기라는 점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예수의 국가관이나 권력관과 관련되어 흔히 인용되는 <마가복음> 12장 13절의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신의 것은 신께 바쳐라”라는 말씀보다 더욱 중요한 의미를 준다. 마가복음의 이 말은 신의 나라와 지상의 국가를 엄격하게 구별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 말은 그 전후의 문맥을 통해 그 진의가 파악되어야 한다.

이 말은 예수의 적들이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시험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예수에게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묻는다. 예수는 그들의 의도를 알아채고 로마 동전을 가져오게 해서 그 동전에 새겨진 초상과 글이 누구 것이냐고 묻는다. 로마 동전에는 그 당시 황제의 얼굴이 새겨졌었고, 그 동전은 황제의 소유물로 여겨졌다. 이는 현재 동전에도 어떤 사람의 얼굴이 새겨질 수 있지만, 그 소유자는 어디까지나 동전의 소유자인 것과 달랐다. 즉 로마의 동전은 단순한 표지나 장식이 아니라 소유권자 자체를 표시한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가 그 동전을 황제에게 바치라고 한 것은 소유권자인 황제에게 돌려주라고 한 뻔한 소리에 불과하다.

이는 예수가 돈으로 상징되는 황제의 권력과 신을 대립시키고 있음을 뜻한다. 예수에게 돈은 인간의 죄와 죽음을 낳는 욕망 자체이고 순종을 요구하는 권력 자체이다. 그러나 또한 이는 예수가 돈이 아닌 다른 것까지 황제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음을 뜻한다. 즉 황제는 동전 외에 다른 것에 대해서는 어떤 권리도 없다는 것이다. 가령 인간의 생명, 즉 삶과 죽음에 대해 황제에게는 어떤 권한도 있을 수 없다. 이는 신이 인간에게 주신 것이니 신의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을 전쟁에 몰아넣을 어떤 권한도 있을 수 없다. 도시를 황폐하게 하고 파괴시킬 어떤 권한도 있을 수 없다. 황제의 것은 돈밖에 없다. 예수는 그 돈을 타락한 것으로 보고 신에 대립시킨다. 즉 돈은 예수의 것이 아니다. 권력과 마찬가지로 돈도 예수의 것이 아니라 악마의 것이다. 따라서 돈을 숭배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황제를 숭배해서는 안 된다. 동전은 동시에 기술의 상징이다. 따라서 기술도 숭배해서는 안 된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예수가 성전세를 낼 의무가 없다고 하면서도 성전세 받는 이들의 오해를 살 필요는 없다는 이유로 물고기 입에서 동전을 찾는, 가벼운 기적을 일으켜 그 동전으로 성전세를 내도록 하는 것이 있다.(마태복음 17:24) 여기서 기적이란 권력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를 보여주는 일종의 조롱으로서 예수가 왕이나 성전의 권력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고기 입에서 동전을 만들어 정치적·종교적 권력을 무가치하게 만든 것이다. 권력이란 조롱하는 것 외에는 감수하거나 순종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상 몇 가지 이야기는 예수의 재판과 비교할 때 그야말로 사소한 이야기에 불과한 것일지 모른다.  예수는 빌라도의 재판을 기꺼이 받고자 했고 빌라도에게 경의를 표했으며 재판에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는 재판을 합법적인 것으로, 즉 국가 권력을 인정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 재판 절차에 결코 복종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침묵했을 뿐이고 그 침묵이야말로 모든 권력을 부정하고 조롱한 것이었다. 가령 <마태복음>에 의하면 사람들이 예수를 사형에 처하기 위한 증거를 찾으려 했으나 실질적인 증거를 찾지 못하다가, 마지막으로 단지 두 사람이 예수가 성전을 파괴하려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예수가 침묵하자 제사장이 대답을 종용했으나, 예수는 여전히 침묵했다.(마태복음 26:59-63) 예수는 헤롯왕(누가복음 23:9)이나 빌라도 왕 앞에서도 침묵했다(마태복음 27:12 이하). 이러한 침묵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이 국가 권력을 인정한 사람의 태도라고 할 수 있는가? 도리어 종교적 및 정치적 권위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태도가 아닌가? 그런 권위를 결코 정당하다고 여기지 않았고,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쓸모없는 짓이라고 생각한 탓이 아닐까? 게다가 예수는 빌라도에게 말했듯이 권위를 빈정거리지 않았는가?

또한 예수는 권위에 도전한다. 그는 자기를 잡으러 온 사제장들에게 “내가 마치 강도라도 되는 것처럼 너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는 너희가 나를 잡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이며 어두움의 권세가 기세를 부릴 때이다.”라고 말한다(누가복음 22:52; 요한복음 18:20). 이는 사제장을 권력을 가진 마귀로 본 것이다.

그런데 예수가 다시 빌라도에게 불려갔을 때 빌라도는 예수에게 말한다. “나에게 말하지 않을 셈이냐? 내게는 너를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이에 대해 예수는 “위에서 주지 않았다면 나를 해할 권한이 너에게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너에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라고 답한다(요한복음 19:10-11). 여기서 ‘위에서’라는 말을 신학자들은 ‘신으로부터 비롯된 정치권력’ 또는 ‘로마 황제로부터 비롯된 정치권력’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는 경우, 뒷부분의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보는 경우 ‘예수를 넘겨준 자’가 죄가 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복음> 전체로 볼 때 그 ‘위에서’란 ‘어두움의 권세’, 즉 ‘마귀의 권력’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따라서 이 ‘위에서’라는 부분을 ‘신’이라고 번역한 새로운 성경의 번역에는 의문이 있다.

이상 성경의 몇 가지 이야기를 들어 “예수는 아나키스트다.”라고 하면 놀랄 분이 많으실지 모르겠다. 아나키즘=테러리즘이라는 식의 상식 아닌 상식을 가지신 분은 더욱더 화를 내실지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를 한 저명한 신학자들은 자크 엘륄(Jacques Ellul, 1912~1994)을 비롯하여 많이 있다.   

 

기독교의 아나키즘적 요소
기독교의 아나키즘적 요소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가령 우리말로도 번역된 자크 엘륄의 <기독교와 아나키> 같은 책들이 있다. 그 책이 훌륭한 책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그 분야의 고전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말을 빌린 톨스토이의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1894)이리라. 그밖에 그의 종교론이나 <부활> 같은 소설을 통해 그의 기독교 아나키즘은 널리 알려져 있다.

톨스토이는 성경 중에서도 신약, 그 중에서도 산상수훈을 통해 아나키즘을 설명했지만 구약에도 아나키즘적인 요소는 많다. 구약에 나오는 히브리(유태) 민족은 모세에 의해 이집트로부터 해방되어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다가 씨족과 부족에 따라 정착한다. 그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경우 민중 집회를 열었고, 3세기 동안 어떤 왕도 인정하지 않았고 “사람마다 자기 생각에 좋을 대로 하였다.”(사사기 17장) 그 후 지도자가 등장하나, 그 누구도 특출한 혈통 출신은 아니었다. 가령 기드온 부자와 사무엘은 왕이 되기를 거부했으며 구약에 나오는 많은 예언자들은 지배를 부인했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 중에서 매우 예외적인 인물로 그 자신의 것을 목적으로 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기독교 아나키스트들이 성경을 아나키즘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인용하는 신약 구절은 앞에서  본 것들을 비롯해 대단히 많다. 이에 근거하여 기독교를 아나키즘과 연관시키는 기독교 아나키스트들은 성경에서 모든 국가 권력의 사용에 반대했고 심지어 복지와 같은 좋은 목적을 위한 경우에도 권력 사용을 반대했다고 본다.

반면 예수의 경우와 달리 바울은 친권력적이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 근거로 제시되는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 13장 1-5절은 “누구든지 정부 당국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력이 다 신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권력을 거역하면 신이 세우신 권력을 거역하는 것이 되고 그런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통치자가 두려울 것이 없으나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두려워합니다. 그러면 그에게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신의 일꾼입니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다. 가령 그 앞의 12장 2절에서는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 세상’을 대표하는 것이 ‘정부 당국’이라면 12장과 13장의 내용은 분명히 모순된다. 그러나 12장 3절 이하에서는 원수까지 포함하여 형제처럼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원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 뒤에 정부 당국에 대한 복종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곧 정부 권력은 악일 수도 있지만 그것도 신에게서 나온 것이니 복종해야 한다는 것처럼 읽을 수도 있다. 이는 바울의 시대란 그리스도의 처형 직후 기독교도가 로마 제국 정부의 박해를 받은 어두운 시기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고려할 경우 더욱  잘 이해될 수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의 공동생활이 초기 불교도의 공동생활과 마찬가지로 아나키즘적이었음을 일찍이 크로폿킨이 <상호부조론> 결론에서 지적했다. 그러나 그런 아나키즘적 요소는 각 종교의 제도화 이후 차츰 사라졌다. 기독교의 경우 4세기의 공인 이후부터 그러했고, 이는 중세 사회가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한 10세기 무렵까지 더욱 강화되었다.   

 

무부무군과 기독교 전래
앞 연재 글에서 동아시아의 아나키즘은 유가로부터 무부무군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고 했다. 그런 비난은 고대에 도가나 불교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근대에 기독교에 대해서도 내려졌다. 키니코스학파는 동아시아에 수용된 적이 없어서 그런 비난을 받지 않았지만, 만일 불교나 기독교처럼 동아시아에 수용되었다면 당연히 무부무군이라는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불교의 경우, 고려 말기에 그런 비난을 받았다. 가령 정몽주는 불교의 현실 초월적 경향과 무부무군의 반윤리성, 그리고 마음에 대한 관점을 비판하였는데 이는 이후 조선 사대부에 의한 불교 비판의 지침이 되었다. 정도전도 고려와 달리 조선을 불교 배척의 유교 나라로 만들기 위해 불교는 무군무부의 교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불교측은 불교가 무군무부가 아니라고 부정하며 그러한 비난을 피하고자 했으나 조선에서는 그런 주장이 통하지 않았다. 

무부무군이라는 말은 한국의 초기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하거나 그들을 처단할 때의 죄목인 ‘무부무군의 부도죄’(不道罪)라는 단죄용어로도 사용되었다. 가령 천주교도인 윤지충(尹持忠)이 모친상 때 조상의 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든지, 천주교도인 그의 외사촌 권상연(權尙然)이 고모상 때 신주를 태워 땅에 묻고 제사를 폐지하였다든지 하는 사실에 대해 그렇게 단죄되었다. 이는 무군이라기 보다도 무부의 단죄라고 할 수 있었다. 천주교에서는 뒤에 신주나 제사를 용인하여 그러한 단죄를 피하려고 노력했으나, 천주교가 합법화된 것은 개항 이후였고, 천주교에서 조상제사를 1940년 이후였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지금도 제사에 반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처럼 불교나 기독교가 동아시아에서 아나키즘적인 무군무부의 종교로 비난받은 것은 그 종교의 본지로부터 당연한 것이었으나, 그것이 포교에 방해가 되자 각 종교 측에서는 여러 가지 변명을 하게 되었다. 가령 대승불교에서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라는 경전을 만들었고 이는 유교가 성행한 조선 시대에 널리 읽혀졌으며, 삽화를 곁들인 언해본 출판도 성행했다. 또 승려들은 의병으로 출전하여 국가에 대한 충성을 증명했다.

반면 서양에서 기독교가 박해를 받은 이유는 기독교도가 무신론자로서 로마의 다신교에 대한 숭배를 거부하고, 로마를 정복하여 새로운 왕국을 수립하고자 하며, 지하무덤에서 시체를 먹거나 혼음을 한다는 등이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런 주장을 부당한 음해라고 주장했으나, 4세기에 기독교가 공인되기까지 그런 이유에 의한 박해는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대부분 하층계급의 사람들로 국가를 비기독교적이라고 생각하여 호의를 갖지 않았고 황제숭배를 단호히 거절했으며 만인의 평등을 주장한 것은 사실이다. 이는 무부무군이라는 이유에서 박해를 받은 것은 아니었으므로 동아시아에서의 박해 이유와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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