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08:15 (토)
[학술대회] 기술철학의 문제들(한국과학철학회 2001년 봄모임)
[학술대회] 기술철학의 문제들(한국과학철학회 2001년 봄모임)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3.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03-09 17:36:44
“철학자가 느끼는 당혹감은 현대의 기술현상을 경험하면서도 이 현상 자체가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용현 서강대 교수가 ‘기술현상의 배경과 기술존재론’이라는 발표의 서두에 고백한, 기술 앞에 선 철학자로서의 당혹감은 일면 과장이다. 오히려 철학자들은 기술현상이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라 미노타우로스 같은 괴물”이라 사태를 파악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할 수 없는 현실에 당혹스러워 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것은 하이데거가 현대기술에 대해 준열한 비판을 가하면서도 “기술은 우리의 숙명”이라고 예견했던 상황에 빗댈 수 있다.

기술, 인간의 ‘비관적 숙명’

예의 ‘비관적 숙명’에 대해 철학자들이 논의하는 자리가 바로 지난 2월 24일 광운대에서 열린 한국과학철학회(회장 송상용 한림대 교수) 봄모임이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기술철학의 문제들’을 주제로 하여 공용현 서강대 교수, 이기상 외국어대 교수, 김성동 호서대 교수, 홍성욱 토론토대 교수(과학기술사)의 발표와, 기술사회학 등 다른 분과학문과의 토론이 진행됐다.
기술을 대하는 일반인들의 반응은, 거칠게 본다면 이날 학술대회에 참가한 철학자들의 입장과 일치한다. ‘네오포비아’(neophobia), 즉 새로운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기술 앞에 선 철학자들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이기상 교수의 발표문은 이 두려움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그는 ‘존재歷運으로서의 기술’에서 하이데거의 입을 빌려, “사유함에 인간으로서의 품위가 있는 것인데, 우리는 그 품위는 내동댕이치고 기계-인간, ‘사이보그’로서 만족하려는 것은 아닌가?”라는 물음을 제기했다. 그는 1945년에 하이데거가 이미 기술로 인한 디스토피아를 예견했다는 놀라운 사실에 착안해 우리로 하여금 사유를 채근했다. 이에 대해 김환석 국민대 교수(사회학과)는 결국 철학이 기술에 대해 근본적인 불신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반문하면서, 불신보다는 오히려 위험대비에 진력하는 것이 생산적이라 반론했다.

‘파놉티콘’에서 ‘시놉티콘’으로

공용현 교수는 “정보통신기술이 인간감각지체의 연장이자 사고의 연장”이라고 전제하며, 이 시대의 인간들을 위한 형이상학으로 ‘기술존재론’(techontology)을 제안했다. 정보, 사이버스페이스, 가상현실이 ‘기술존재론’의 세 요소라고 설명하며, 공 교수는 가파르게 논의를 이어나가 결국 ‘정보’를 세계의 구성원리로까지 보고 있다. 그는 “철학이 침묵하는 동안, 과학이 머뭇거리는 동안 기술이 자신의 존재론을 슬슬 말하고 있는” 현상황에서 철학의 무능함을 보완하고자, 과학적 사유를 도입하는 듯 보였다. 공 교수는 정보라는 원자로 세계가 쪼개어질 수 있고, 나아가 이를 ‘정보론적 해체’라고까지 말하며 정보의 지위를 격상시켰다. 공 교수는 정보가 세계를 일원화시키는 실체라 주장하면서도 스스로 “이런 기술적 용어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밝히며 그 한계를 인정했다.
기술현상 속에 존재를 해체하는 탈근대적 접근이 공 교수의 논의였다면, 홍성욱 교수는 ‘저항으로서의 기술’에 대한 지향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다. 홍 교수는 ‘파놉티콘, 벤담에서 전자감시까지’라는 제목의 발표문에서 기술이 감시의 규율권력으로 작동하는 동시에 역감시의 가능성까지 지닌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파놉티콘을 감시의 알레고리이자 내적원리로 도입하는 푸코를 넘어서고 있다. 그는, “다수가 소수의 권력자를 감시하는 언론의 발달”로 상호감시의 ‘시놉티콘’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푸코식의 파놉티콘만으로는 “시선보다 정보수집이 중요해진 과정, 정보수집이 종종 피감시자의 자발적인 행위와 협조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정보 데이터베이스에의 접근이 모두에게 투명해질 경우 보통사람들이 권력자를 감시하는 것과 같은 예상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처할 수 없음을 역설했다.

자율적 선택권을 다시 인간에게

홍 교수의 주장처럼 기술이 인간 위에 군림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최소한 ‘역감시의 노력’이나마 우리의 의무로 삼아야한다. 이는 공 교수가 토로했던 당혹감, 즉 “정보통신기술로 인해 그간 존재의 기반이 되어왔던 자아와 물리적, 심리적 세계가 정보공간 속으로 함몰되어가는 상황을 목놓아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우리들이 시대의 속도에 현기증을 덜 수 있는 최소한 행동이라고 철학자들은 외치고 있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