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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가 인간의 얼굴을 지닐수록 제도는 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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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신문
  • 승인 2019.10.1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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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한다 : 사회주의 체제의 정치경제학 | 저자 야노쉬코르나이 | 공역 차문석, 박순성| 나남| 페이지 648(1권), 440(2권)

차문석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차문석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사회주의 체제의 정치경제학』(원제: The Socialist System: The Political Economy of Communism)은 헝가리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 야노쉬 코르나이(Janos Kornai)가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에서 온몸으로 살아가면서, 또한 학자로서 실존적인 상황 속에서 그 체제를 연구한 거대한 삶과 지성의 서사(敍事)이다. 1990년대 초반, 전 세계적 규모에서 체제 전환의 과도기를 깊게 겪던 시기에 출간된 이 책을 통해 세계의 많은 연구자들이 20세기 사회주의 체제를 체계적이고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으며, 코르나이가 이 책에서 사용한 과학적 방법론과 객관적 인식론은 사회주의 체제 연구에서 새로운 질적 도약을 제공하였다. 

코르나이는 국내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외국 학자 중 한 사람으로, 한국의 사회주의 연구자들 대부분은 코르나이의 지적 패러다임을 통해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실시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2년 영어판으로 먼저 출간된 이 책 역시 즉시 국내 학계에 널리 소개되었다. 우리 공동 번역진(차문석/박순성) 또한 대학원 강의, 세미나, 연구모임 등에서 이 책을 주 텍스트로 삼아 반복적으로 연구 분석한 끝에, 2007년 말 한국연구재단 명저번역사업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번역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 책 『사회주의 체제의 정치경제학』은 야노쉬 코르나이의 대표작인 동시에, 한국어로 처음 소개되는 저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3부 24개 장으로 구성된 매우 방대한 저작이다. 1부에서는 이 저작의 주제와 방법들,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의 전례와 원형들에 대해서 설명한다. 2부에서는 권력, 이데올로기, 재산에서 시작하여 조정기제, 계획과 통제, 부족과 인플레이션 등의 주제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를 심층 ‘해부’한다. 3부에서는 체제 변화의 동학(動學), 통제의 완성, 정치적 자유화와 사적 부문의 등장, 시장 사회주의, 개혁 조치들과 거시적 긴장 등 고전적 사회주의 체제의 ‘변화’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코르나이가 이 책에서 목표로 삼은 것은 ‘부분에서 전체가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 정치, 경제, 사회관계, 이데올로기 사이에는 밀접한 상호작용이 존재하며 그것들이 함께 기능하여 다양한 집단과 사회적 역할 영역의 행동의 규칙성을 만들어 낸다. 그는 이러한 접근을 ‘시스템 패러다임’(system paradigm)이라고 명명했으며, 마르크스(K. Marx), 슘페터(J. A. Schumpeter)와 하이에크(F. A. Hayek)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했다. 코르나이는 이전의 저작들과는 달리, 이 책에서 비로소 정치 분야의 가장 현저한 특징, 즉 공산당의 일당 지배로부터 논의를 시작했다. 따라서 이 책에는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았던 코르나이의 학자로서의 판단과 용기가 녹아 있다.    

코르나이는 이 책에서 ‘어떤 사회가 좋은가’라는 규범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마르크스, 레닌 등이 그렸던 사회주의 설계도가 ‘보다 나은 사회’의 실현에 상응하는 것인가라는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증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즉, 이 체제의 정치, 사회, 경제 생활의 현실을 분석하였다. 코르나이는 ‘판정’을 내리는 것도 피했다. 대신 중요시한 것은 바로 ‘경제 실적’, 즉 통상적인 경제 기준이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 레닌이 사회주의를 확립해 나갈 때 설정했던 기준도 응용했다. 결국 이 책에서는 이러한 레닌의 기준에 기초해서 사회주의 체제의 패배가 불가피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코르나이는 이 책에서 26개 국가가 가진 다양한 차이들을 사상(捨象)하고 공통적인 것, 본질적인 특징들을 도출하는 데 주력했다. 이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를 크게 3개 기간으로 나누었다. 제1기는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과도기이다. 이 시기는 소련에서는 농업 집단화와 당내 반대파에 대한 최초의 숙청(1936~1938년)으로 끝났다. 제2기는 ‘고전적 사회주의’ 시기로, 체제의 모든 주요한 특징들이 안정적으로 관철되었고 모든 특성들이 발현된 시기이다. 제3기는 체제가 고전적인 상태에서 개혁으로 변동하는 시기이다. 조직의 재편성과 중앙계획화의 완전화 시도, 자주관리 등이 실험되었다. 이는 정치적 억압의 완화를 가져왔고 종국적으로 체제의 붕괴를 수반하였다.  

코르나이가 보기에 마르크스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적 소유와 시장을 없애고 공유와 관료적 조정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유전자 코드’처럼 이후 프로세스를 실행하고 그 과정을 제어한다. 여기서부터 제도의 자연 도태도 시작되었다. 국가 건설과 경제 관리가 시도되면서 존속 능력이 없는 것은 소멸하고, 체제의 기능에 이로운 것이 체제에 짜 넣어졌다. “고전적 사회주의 제도의 다양한 요소들 사이에는 제도의 자연도태와 자생적인 발전의 결과로서 친화력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고전적 사회주의는 조폭적인 억압을 행사하지만 그것이 전체의 결합력을 만들어 내었고, 개혁 과정은 이러한 결합력을 해체한다. 결국 마르크스 프로그램이 실행됨으로써 사회주의가 붕괴한 것이다. 

1968년 체코의 ‘프라하의 봄’에서 나왔던 슬로건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는 희망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코르나이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얼굴에 근접하면 근접할수록 제도가 기능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글쓴이 소개

차문석(車文碩)
성균관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국가경영전략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 '반노동의 유토피아', '대중독재의 영웅만들기', '뉴딜, 세편의 드라마'  
역서: '악의 축의 발명', '북한의 군사공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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