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11-19 15:17 (화)
천 년 학교 로마에서 배우는 삶
천 년 학교 로마에서 배우는 삶
  • 허정윤
  • 승인 2019.10.14 17: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로마법 수업』 |저자 한동일 |문학동네 |2019.09.25. |페이지 268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로마의 역사를 그야말로 ‘1도 몰라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로마의 힘이 ‘길’로 표현되었다면, 로마의 역사를 떠받든 것은 ‘법’이었다. 19세기 독일의 로마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은 『로마법 정신』에서 “로마는 첫째 무력으로, 둘째 그리스도교로, 셋째 법으로 세계를 세 번 지배했다”고 기록했다. 이 중에서 법은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다루고 갈등을 돌아보게 해주는 장치로 쓰였다. 저자 한동철은 책 서문에 로마법을 살펴보는 행위가 “개개인의 자아와 인간적 소망을 복원하는 긴 여정”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동일 교수의 이름 앞에는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 ‘작가이자 법조인이자 신부’, ‘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의 작가’ 등, 많은 말이 그를 설명한다. 하지만 한 교수는 수식어로 자신을 부각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 모두가 ‘인간’이고 저 자신도 ‘인간’임을 말할 뿐이다. 『로마법 수업』의 흐름은 로마에서 시행된 법들을 훑어보며 진행되지만 그 안의 내용은 당시 로마인들의 삶에 더 집중돼 있다.
"Servus es an liber?"(당신은 노예인가 자유인인가?) 1장은 노예를 인간으로 분류하지 않는 로마 시민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질문은 “당신은 자유인이었습니까?”라는 질문과 동의어다. 저자는 노예 아니면 자유인이라는 로마의 이분법을 보는 독자들에게 ‘차별에 화가 나시나?’라고 묻는다. 오늘날의 자유와 로마의 억압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냐는 의견을 예측한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로마시대와 오늘날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노골적인 신분제는 없지만 사람을 끊임없이 규정하고 나누는 현대는 로마 시대만큼이나 신분제가 공고하다. 저자는 로마의 법이 잔혹해 보이나 지금 현실과 그리 동떨어지지 않았음을 재차 이야기한다.
저자는 특히 ‘여성’이라는 주제를 다양한 로마법에 비춰 서술한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는 버닝썬 사태, 낙태죄 헌법불합치, 간통죄 폐지 등의 사건들은 화두가 되는 사안들을 이끌고 있어 더 눈길이 가는 대목이 많다. 저자는 로마가 ‘현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기반이 되었지만 여성에 대한 존중은 취약했다고 한다. 로마법의 약한 고리를 통해서 작금의 현실을 보려는 시도다.
저자의 글에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솔직함 아닐까. 한 교수는 ‘낙태’를 이야기한 장에서 “지금부터 제가 할 이야기는 가톨릭 교인의 관점이 아닌 인간 한동일의 의견입니다”라고 운을 뗀다. 로마법이 낙태를 설명하는 맥락으로 신생아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장의 결정에 따라 집안에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서명한다. 지중해 지역 사람들이 태어난 자신을 모두 키우는 게 오히려 기이한 현상이며, 로마에서는 유산과 피임은 흔한 일이었다. 출생 전 태아는 모태의 일부일 뿐이라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세력이 커진 교회가 ‘(태아가) 잉태된 순간부터 인간의 영혼이 주입된다’라는 신념을 주장하자,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부터 낙태 형벌은 법제화되었다. 
법이 생겼다고 해서 실정이 단박에 나아지는 사회는 없다. 그건 로마도 마찬가지였다. 천년이 넘은 지금 한국 사회도 두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로마법을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가 단지 현재 법의 원천을 찾는 공부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법 수업』은 로마라는 길을 통해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탐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정표다. 사람들은 평소 ‘우리는 인간이다’라는 명제를 쉽게 생각하거나 잊고 산다. 그 빈 자리를 소비자·대중·노예 등 다양한 언어가 꿰차게 만든다. 한 교수는 더욱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투쟁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티렌티우스의 희극의 한 대사를 빌려 적었다. “나는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사 중 어느 것도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답게 사는 것이 갈수록 어렵지만, 얼마나 중요한지 『로마법 수업』을 통해 다시금 새겨봐야 할 가을이다.
허정윤 기자 verit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