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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제와 근대적 노동 시간의 변화
주5일제와 근대적 노동 시간의 변화
  • 황병주 한양대
  • 승인 2003.09.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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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규율에 순응해 온 '시간 투쟁'

황병주/ 한양대, 한국사

전근대 대표적 시간관념은 순환적 시간관이었다. 계절의 반복, 천체의 순환은 자연적 조건에 직접적 지배를 받던 농경이나 목축에서 무시할 수 없는 기준이었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시간리듬을 자연의 시간리듬에 맞추게 된 것이다. '제삿날 돌아오듯 한다'라는 속담은 어떻게 시간을 순환적인 것으로 이해했는지 잘 보여준다. 전통적 시간관념의 또 하나의 특징은 종교적, 질적 인식이다. 예컨대 소의 날이나 개의 날처럼 12간지를 통해 그날의 성격, 곧 질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일진이 사납다'라고 말할 때 日辰은 바로 12간지에 따른 것이었다. 서양 중세의 기독교는 고리대금업자를 신의 시간을 팔아먹는 자들로 비난하여 엄금했다. 즉 시간은 신에게만 속해 있는 것이기에 그걸 이용한다든지 하는 것은 죄악이 되는 것이다. 성스러운 시간의 세속화 역사화는 근대사회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가 된다. 근대적 시간관은 곧 자본주의적 시간관이었다.

근대적 자본주의적 시간관의 특징은 그전까지 순환적이고 질적인 것으로 인식되던 시간이 직선적이고 역사적인 시간, 계산가능한 동질적 시간으로 바뀐 것이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에서는 특정 노동시간에 대응하는 임금이라는 형태로 시간을 화폐량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시간의 절약은 돈의 절약이고, 시간의 낭비는 돈의 낭비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근대적 격언은 시간이 이미 화폐에 포섭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시간은 돈이 되었다. 그것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돈처럼) 쓰이는 것이었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기 사회를 지배한다

이런 근대적 시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생활리듬을 파괴해 하나로 통합시켜야만 한다. 이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시간이 중심이 되는 것이며 시간을 지배하는 것은 곧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된다. 이로써 시간의 문제는 권력의 문제, 삶의 리듬을 둘러싼 투쟁·지배의 문제가 된다.

초기 자본주의 단계 영국에서는 '성 월요일(Saint Monday)'이라는 휴일 아닌 휴일이 있었다. 대규모 공장은 공시성, 즉 동일한 시간에 수많은 노동자가 동일한 작업장에서 동일한 노동을 수행하는 것을 전제로 했기에 공장의 출퇴근 시간은 물론, 휴식시간, 식사시간 등이 철저하게 규칙적으로 짜여졌다. 1주일을 주기로 휴일과 출근이 반복되는 근대적 시간규율은 '한바탕 일하고 한바탕 노는' 유유자적한 노동리듬에 익숙한 장인, 농민 출신 노동자들에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공장의 시간규율에 적응할 수 없었던, 또는 적응하는 것을 거부한 노동자들은 일요일에 폭음과 유흥을 만끽하고 월요일엔 지각과 결근이 다반사였다.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월요일은 휴일처럼 여겨져 정상적 공장가동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근대적, 자본주의적 시간규율은 점차 노동자를 길들이기 시작했고 성 월요일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학교, 교회 등을 통한 이데올로기적, 훈육적 규율화는 근대적 시간규율을 철저하게 내면화한 인간을 길러내고자 한 것이었다. 성 월요일을 대체한 것은 노동시간을 둘러싼 갈등과 투쟁이었다. 16시간 노동조차 드물지 않았던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운동의 중요한 투쟁목표가 되었고 이후 지리하고 끈질긴 투쟁을 거쳐 8시간 노동이 일반화됐다.

이런 변화는 분명 노동운동의 중요한 성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이미 근대적, 자본주의적 시간규율을 승인한 채 그 시간의 양과 크기만을 둘러싼 투쟁으로 전환된 것이기도 했다. 요컨대 노동의 자율성을 둘러싼 대립에서 노동시간의 단축이라는 문제틀로 전환된 것이다. 그 전환에 자본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음도 분명했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노동시간은 투쟁을 통해 지속적으로 축소되어 왔지만 그것은 언제나 자본이 감내할 수 있는 정도로만 진행된 것이기도 했다.

자본주의 시간리듬에 취해 있는 몸

양계장의 시간은 더이상 새벽닭을 의미하지 않는다. 밤낮없이 밝혀놓은 전등과 음악의 리듬에 맞춰 닭들은 최대한의 생산성을 달성해야만 한다. 백화점 매장에서는 시간대에 따라 서로 다른 음악이 흘러나온다. 한가한 오전에는 클래식을, 최고 매출시간대인 오후에는 경쾌한 음악을, 고가매장은 느린 음악을, 저가 할인매장은 빠른 댄스음악을 틀어놓는다. 그렇게 고객의 리듬을 '고려'한다. 헌데 대부분의 고객은 음악을 틀어놓은 사실 자체를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그렇게 고객들은 무의식적으로 백화점의 시간리듬에 따라 흐른다. 근대적 시간은 양계장과 백화점에서 최고의 생산성을 위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백화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양계장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백화점의 닭들'은 새벽울음을 울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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