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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정치적 위기는 독선과 아집의 소산
우리 시대 정치적 위기는 독선과 아집의 소산
  • 김범진
  • 승인 2019.10.0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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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선과 아집의 역사 | 저자 바바라 터크먼 | 역자 조민, 조석현 | 자작나무 | 페이지 488

“아들아, 이 세상을 얼마나 하찮은 자들이 다스리는지 똑똑히 알아두거라.”

17세기의 스웨덴 정치가 옥센셰르나 백작은 정권의 핵심에서 평생을 보낸 뒤에 이같은 정치비평을 남겼다. 민주주의 시대에는 다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저자인 바바라 터크먼의 생각이다. 그는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우리의 눈길을 잡아끄는 현상이 있다고 운을 뗀다. 인류는 모든 영역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유독 통치술만은 다른 영역에 비해 별다른 발전 없이 정체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또한 통치의 영역에서는 지혜와 상식과 유용한 정보 따위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지금도 과거와 다름없이 통치자의 실패가 국가의 실패 그리고 국민의 불행이 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러한 사례들을 되짚어보는 것은 어쩌면 역사가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교훈이 될지도 모른다.

저자는 인류 역사 3천 년 동안 이어진 국정 실패의 사례들을 통치자의 어리석음과 오만함, 즉 ‘독선’의 소산이라고 보았다. 독선은 시간과 장소, 민족과 계급을 불문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군주정치와 과두정치뿐 아니라 민주정치도 독선을 낳는다. 우리 시대의 정치적 위기는 정치 엘리트 수준에서만 그치는 것도 아니다. 책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우리는 국가와는 상관없는 존재’라고 외치며 파업을 전개해 국가를 마비상태로 끌고 가는 것, 그리고 기업이 오염되지 않은 토지, 물, 공기를 고갈시키며 발전에 매달리는 것 또한 이에 속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기기만의 원천을 이루는 우둔함, 사고의 정체는 통치에서 대단히 큰 역할을 하는 요소다. 이것은 편견이 가득 찬 고정관념을 품은 채 상황을 판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개념에 반하는 징후는 무조건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태도를 일컫는다. 지혜를 발휘하면 재검토와 재고와 진로의 변경이 가능하지만, 욕망에 따라서만 행동하고 사실에 근거해서 진로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 태도를 어떤 역사가는 “자신의 정책이 실패로 끝나는 것을 직접 경험했으면서도 그 정책이 본질적으로 탁월하다고 믿는 신념”이라고 요약한 바 있다.

저자는 또한 아주 오랫동안 군주가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행동이 그대로 통치의 기본구조를 형성해왔고, 그것을 보면 예로부터 통치의 독선이 어디에서 비롯됐는가를 알 수 있다고 밝힌다. 과도한 권력은 아집과 독선에 빠지게 하는 커다란 유인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공화국의 철인왕이라는 착상을 한 뒤에 그것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고, 법률이 유일한 안전장치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배의 돛이 너무 큰 경우처럼 무엇인가에 지나치게 큰 권력을 주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지배자가 항상 바람직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장래의 국가수호자들은 확실한 법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감시받고 시험되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에드먼드 버크는 “정치에서의 아량이 진정한 지혜가 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위대한 제국과 좁은 마음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말했다. 오류의 고집이 자국의 이익을 해치기 시작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지혜의 갈림길이 된다. “지도자는 항상 위대한 질문자가 되어야 하고, 자신이 물은 것에 대해서 끈질기게 진실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누군가가 진실을 말하기를 주저하면 화를 내야 한다”고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정부 그리고 조직이 필요로 하는 것은 위대한 질문자들이다. 그렇기에 좀 더 현명한 정부 그리고 조직을 바란다면 먼저 성격과 도덕적 용기를 시험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이어 “정치는 여전히 3, 4천 년 전보다 나아진 것이 거의 없다”고 한 존 애덤스(미국의 제2대 대통령)의 말이 옳다면 많은 개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대안으로 유권자 교육을 슬쩍 언급하며 끝을 맺는다. 이 책의 역자인 조민 전 통일연구원 부원장의 진단도 비슷하다. 그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우리 시대의 정치적 위기는 정치 엘리트층에서나 대중적 차원에서나 독선과 아집의 소산이라며, 정치 영역과 국정 운영에서 공화주의의 규범과 실천의 문제가 새롭게 모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와 더불어 공화주의의 대명제인 ‘시민적 덕성’(civil virtue)의 함양을 언급하는 것 또한 빼먹지 않았다. 김범진 기자 ji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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