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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학문: 네트워크 과학
새로운 학문: 네트워크 과학
  • 장덕진
  • 승인 2003.09.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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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에서 '관계'로 근본적인 시각전환 강조

최근 학계에는 네트워크과학의 '열풍'이 불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우리 학계에서는 아주드물게도, 이 열풍은 특정 분과학문에 한정되지 않고 학문의 경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이 열풍의 한가운데에는 '네트워크'라는 키워드가 자리잡고 있다.

필자는 사회학자로서 네트워크 연구에 처음 접했으니 소위 사회연결망분석의 영역을 통해 네트워크 연구에 입문한 셈이다. 사회과학적인 네트워크 연구의 핵심 아이디어는 미첼의 유명한 정의처럼 '행위자들 사이의 관계 전체의 특성으로 그 관계에 포함된 행위자들의 사회적 행위를 설명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사회과학의 대표적인 양적 연구방법으로 사용되어온 통계분석은 소위 속성자료의 분석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 사회연결망분석은 위의 정의처럼 행위자들간의 관계를 직접 측정한 관계성자료를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회과학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세계체계론을 예로 들어보자. 월러스타인에 따르면 자본주의 세계체계는 중심-반주변-주변으로 이뤄진 위계적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 무역의 경우를 보면 중심부 국가가 주변부 국가와 맺는 무역관계는 중심부 국가 전체 무역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그 작은 일부조차도 종종 다른 주변부 국가와의 무역을 통해 대체 가능하기 때문에 중심부 국가에게 있어 주변부 국가와의 무역관계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반면 주변부 국가가 중심부와 맺고 있는 무역관계는 주변부 국가에게는 절대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주변부 국가는 그 국가 자체의 현재 속성(예를 들면 경제규모, 교육수준, 인구 등)뿐만 아니라 '세계적 차원의 무역관계의 구조 속에서 차지하는 불리한 위치'라는 관계성으로 인해 종속이나 저발전의 길을 가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속성에서 관계성으로'라는 표현이 말해주듯이, 네트워크를 연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분석기법 하나를 더 익힌다는 차원을 떠나서 근본적인 '시각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런 시각의 전환을 이루고나면 네트워크 분석을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은 무궁무진하게 많아진다. 네트워크 분석에서는 일반적으로 관계의 결절점이 되는 행위자를 '노드(node)'라고 부르고, 노드들을 연결하는 관계를 '링크(link)'라고 부른다.

속성에서 관계성으로

그렇다면 노드와 링크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사회현상은 네트워크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국내 학계에서 이뤄진 몇 가지 연구만 예로 들어보자. 국내의 모든 산업을 노드로 보고 산업간 재화와 용역의 흐름을 링크로 보면 한국 경제 전체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볼 수 있다. 네트워크로 본 한국의 산업구조는 어떻게 변해왔으며, 중화학공업 정책과 같은 주요 정책들의 효과는 어떻게 반영돼 나타났을까. 인터넷 사용의 폭발적 증가는 정보사회의 핵심 화두이다. 사이트를 노드로 보고 사이트 사이를 오가는 사용자들을 링크로 보았을 때 사이트들간의 경쟁과 제휴의 구조는 무엇인가. 재벌 계열사들간에 복잡하게 얽힌 출자구조는 소위 황제경영의 원인이 된다고 해서 사회적 비판과 정책적 규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업을 노드로 보고 출자관계를 링크로 보았을 때 한국적 기업집단 소유구조의 특징은 무엇이고, 그것은 외국의 기업집단과 어떻게 다르며, 나아가 기업의 주가나 지배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런 예들은 현재 국내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사회연결망 연구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조금 눈을 돌려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를 살펴보자. 물리학에서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scale-free network)'라는 하나의 이론을 통해 중앙통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인터넷이 왜 안정적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그 취약점은 무엇인지 등의 질문으로부터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 조직을 거쳐 에이즈 전파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리적 사회적 경제적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설명력의 배후에는 수퍼노드라고 할 수 있는 소수의 허브와 수없이 많은 일반 개체들의 공존관계를 규정하는 멱함수가 존재한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인간과 쥐의 유전자는 80%가 동일하고, 99%가 서로 대응되는 비슷한 유전자라고 한다. 別有天地非人間의 경지가 산중이 아닌 유전자 속에 있는 듯한 생각에 빠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생명의 다양성이 유전자의 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화학 분자간 네트워크에 의해 결정된다는 설명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셈이다.

학문적 성장 잠재력에 학계 주목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에 비해 네트워크 과학은 혁명적인 성취를 이루어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더구나 그것은 분과학문의 벽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해가고 있다. 이러한 성과와 잠재력에 주목하여 금년 8월 한국이론사회학회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공동주최한 네트워크 워크숍은 이틀 내내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참여자들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였다. 최근에는 우리말로 된 최초의 네트워크 교과서가 출판되어 네트워크 연구뿐 아니라 교육의 새 장을 열었고, 국내 벤처기업이 개발한 네트워크분석 소프트웨어는 기존 국제 학계의 표준 소프트웨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기도 하다. 네트워크 과학이 이룩한 지금까지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의 더 큰 성취를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필자는 시카고대에서 '사적으로 소유된 사회구조'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관심분야는 경제·조식사회학과 네트워크 분석이다. '가족경의 제도적 논리: 한국재벌의 규범적 동형화', '기업집단 지배구조' 등 재벌 구조 분석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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