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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 『공학윤리』(김진 외 지음, 철학과현실사 刊)
주간리뷰 : 『공학윤리』(김진 외 지음, 철학과현실사 刊)
  • 김양현 전남대
  • 승인 2003.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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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의 윤리교과서

김양현 / 전남대, 윤리학

한스 요나스는 이미 현대의 고전이 된 '책임의 원칙: 기술 시대의 생태학적 윤리'라는 책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이제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힘을 과학을 통해 부여받고, 경제를 통해 끊임없는 충동을 부여받아 마침내 사슬로부터 풀려난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권력이 인간에게 불행이 되지 않도록 자발적인 통제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제어할 수 있는 하나의 윤리학을 요청한다." 20여 년 전에 요나스가 던진 문제의식은 이제 현대 철학―특히 서구 철학계에서는―의 공유된 '일반 의식'이 됐다. 말하자면 과학기술 문명의 성과와 그 폐해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과 실천적 대안의 모색은 오늘날 철학적 사유의 주도적인 모티브가 된 셈이다.

1990년 중반이후 우리 학계에서도 환경파괴, 생명경시, 사이버 공간상의 인간성과 도덕성의 상실 등 과학기술 문명이 낳은 문제 상황을 좀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분석·진단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대처 방향을 모색하는 데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환경윤리, 생명의료윤리, 정보윤리, 유전자윤리, 과학기술자윤리 등등 철학의 새로운 문제의식과 질문방향들은 아직은 우리에게 완전히 익숙한 이름이 되지는 않았지만, 우리 학계에서도 역시 철학적 반성과 작업의 중요한 일부분이 됐다.

'공학윤리'는 최근 우리 학계의 담론, 특히 응용 혹은 실천 윤리학 논의를 반영하는 한 성과로 평가될 만하다. 과학기술 문제에 대한 기왕의 작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기술의 본질 문제뿐만 아니라 공학기술 분야 전문직 종사자의 직업윤리까지를 포괄하는 단행본의 성과로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공학윤리는 주어진 상황, 공학적 사례를 충분히 분석하여 바람직한 대안을 창조해 내는 도덕적 상상력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본문 131쪽에서)

과학기술 혹은 공학기술이라는 반성 대상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의 논의 스펙트럼은 얼른 봐도 매우 다양함을 알 수 있다. 공학기술윤리의 학문적 성격과 과제,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에서부터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 문제, 엔지니어 윤리강령, 기술개발과 생태계 파괴의 문제, 인간복제와 유전자 조작 문제뿐만 아니라, 최근 우리 사회의 첨예한 가치 충돌의 한 사안인 새만금 간척사업 등 구체적인 사례연구에 이르기까지 이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공학기술윤리에 대한 연구서로서의 성격을 넘어 마땅히 쓸만한 교재가 없는 터에 관련 분야 강의 교재로서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각 장의 말미에 배치한 '생각해 볼 문제들'과 '더 읽어야 할 책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이런 기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필자가 참여하는 대부분의 공동 저술이 안고 있는 문제, 즉 체계적인 접근과 천착, 공유된 시각의 반영 등의 어려움을 이 책 또한 피해가지는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 동안 인간은 과학기술을 통해 행위의 선택범위와 가능성을, 곧 행위의 자유 공간을 무한정 확대해 왔다. 이제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이 산출한 수많은 문제들을 새롭게 음미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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