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과 승자독식으로 가다보니 사회 전체가 고통스러워
소득의 분배 지나치게 불공평
대학서열 타파, 해법 못돼
사회 경쟁이 교육에 나타나는 것
학교 경쟁없으면 사회도 경쟁없나
최근 ‘조국 딸 사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입시 공정성 강화”를 언급하자 교수 등 전문가들은 대학서열 타파를 주장했다. 입시 제도 수정이 실질적으로 교육격차로 인한 기회불평등이라는 문제점을 해소할 수 없을뿐더러, 정시를 강화하는 것은 창의성이 강조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인재를 기르는 데도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교수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실력주의’(meritocracy) 시스템을 지적하고, 교육개혁에서 답을 찾는 것만으로는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광주교대 전임 총장이자 책 <실력의 배신>을 쓴 저자인 박남기 교수는 19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대학학회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이 대학서열 타파를 해법으로 제안한 것에 대해 “대안이 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대학 서열을 타파하면 기업들은 또 다른 무엇인가를 평가 기준으로 삼게 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그렇게 되면 그 기준은 더욱 더 불공정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예전에 객관식 시험이 타당성이 없다 해서 시험을 없애고 면접을 강화했더니 나타난 게 KT 부정 채용 문제였다. 전부 다 빽으로 들어갔던 것”이라고 밝힌 뒤 “뭐가 됐건 간에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실력주의 사회에서는 서로 그걸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지금 우리가 제일 착각하는 게 하도 경쟁이 심하니까 교육이 경쟁을 조장한다고 하는데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가 어디 있나. 사회의 경쟁이 교육에 나타나는 거지, 학교가 경쟁을 안 하면 사회가 경쟁을 안하는가”라고 주장했다.
실력주의 사회는 개인의 실력에 따라 사회적 재화를 배분하는 사회다. 박 교수의 저서 <실력의 배신>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실력주의 사회 신화를 신봉하는 바탕에는 ‘실력 형성 요인’에 대한 오해가 놓여 있다. 실력이란 부모나 다른 요인과 무관하게 개인의 노력으로 얻어진 결과이고, 또한 그럴 수 있다는 착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착각 때문에 실력을 기준으로 사회적 지위와 재화를 배분하는 것은 공평하다는 신화가 사회 내에서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실력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그 대표적 인사다. 그는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의 차이가 점차 우연과 예상하지 못한 선택에 좌우되고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그런 우연을 필연인 것처럼 가장하는 게 시대의 유행이 되고 있다”면서 실력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실력주의라는 용어를 만든 마이클 영은 1958년 “실력주의 사회의 끝은 사회 붕괴”라고 예언하면서 “정부는 실력주의를 완벽히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력주의 사회의 그림자를 옅게 하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남기 교수는 우리 사회가 실력주의를 선택하게 된 데는 세계 강대국과의 치열한 경쟁 등으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실력주의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문제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으로 가다보니 사회 전체가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지금은 실력에 따른 소득의 분배가 너무 불공평하다”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특히 우리 사회의 임금 격차를 ‘미쳤다’고 표현했다. 공기업과 대기업 임금은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높은 일본과 비교해도 훨씬 높은 반면 중소기업 임금은 너무 낮으며, 이러한 문제의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관계가 불공정한 데 있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이에 덧붙여 “학벌을 타파하면 실력주의 사회가 된다는 사람들의 믿음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실력주의가 학벌사회를 만든 원인”이라고 밝히면서 “교육이 할 수 없는 걸 교육이 할 수 있다고 착각하면서 온 사회와 국가와 학교가 다 교육한테 덤터기를 씌워서 교육을 지지고 볶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범진 기자 jin@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