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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역자 다이제스트_'지방의 계몽주의'(다니엘 로슈, 주명철, 동문선)
저역자 다이제스트_'지방의 계몽주의'(다니엘 로슈, 주명철, 동문선)
  • 주명철 한국교원대
  • 승인 2003.09.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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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 체제순응적 아카데미의 역설

계몽주의를 볼테르나 루소의 저작, '백과사전' 같은 곳에서만 찾아야 하는가? 20세기 초 다니엘 모르네는 '프랑스 혁명의 지적 기원'에서 계몽주의를 사회사의 맥락으로 처음 다루면서, 아카데미, 출판물, 학교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계몽주의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그 뒤 18세기 전문가들은 그가 시작한 연구를 여러 측면에서 발전시켰다.

특히 로슈는 모르네가 주목한 지방 아카데미 운동의 중요성을 철저히 규명하였다. 그는 '지방의 계몽주의'에서 프랑스 지방 32개 도시의 아카데미 회원 6천 명에 관한 문서와 저작목록 2만 종 이상을 발굴하여, 지방의 아카데미 설립 운동이 18세기 초부터 시작되었으며, 사상이 파리에서 지방으로 일방적으로 흘러간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다. 모르네는 파리 중심의 가설을 증명하였지만, 로슈는 지방문화가 파리의 문화를 모범으로 삼았다 할지라도 어느 정도 자율성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지금 콜레즈 드 프랑스에서 강의하고 있는 저자는 자신을 사회사가와 문화사가로 생각하며, 학계에서도 그렇게 인정할 만큼 사회와 문화에 관한 비중 있는 연구서를 매년 내놓고 있다. 수많은 그의 저서 가운데 이 책은 1978년에 나왔지만 첫머리에 놓을 만하다. 그리고 그가 쓴 여느 저서처럼 제목보다 훨씬 많은 내용을 말하고 있는 모범적인 저작이다.

프랑스 지방문화의 자율성 조명

거창한 제목에 비해 내용이 초라한 책이 많은 현실에서 로슈의 저작은 한 마디로 충실하다. 그는 지방 아카데미 설립 시기와 과정, 아카데미 정신과 활동, 회원들의 사회적 지위, 그들이 주위와 맺은 관계를 빼놓지 않고 검토한다. 그 결과,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못 하는 사람이 절대다수인 세계에서 한 줌에 지나지 않는 그들의 무게가 계몽주의 운동의 무게임을 증명하였다. 어둠의 바다 속에 등대. 이렇게 볼 때, 계몽주의를 혁명의 사상적 기원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저자가 치밀하고 구체적으로 복원한 아카데미는 반체제 지식인의 모임이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의 빛으로 과거를 보려는 역사가는 계몽사상을 반체제주의로 예단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로슈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체제순응주의를 증명했다. 거기에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상인이 회원으로 뽑히는 경우는 드물었고, 그 대신 성직자와 귀족의 특권층이 절반을 넘었음을 볼 때, 아카데미는 대체로 여가를 즐기는 신분이나 제3신분의 자유직업인을 위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경향은 파리의 주요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바뀌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증명하는 실마리가 된다. 1789년 8월 4일-11일 특권층이 봉건적 권리를 포기한 것은 갑자기 그런 생각에 물들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물론 저자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제목과 관련된 내용만 충실하게 써 내려갔고, 그 책을 이용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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