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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 My Book] 세상에 만연한 구조적 불평등을 설명하다.
[My Life My Book] 세상에 만연한 구조적 불평등을 설명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19.09.2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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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0 법칙 | 리처드 코치 저/공병호 역 | 21세기북스 | 페이지 407

지난 몇 달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들썩였다. 흥미로운 점은 논쟁의 초점이 후보자 적격 여부보다 계급간 대물림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맞춰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진보, 보수의 이견도 있었지만 진보 내부의 의견 충돌도 심각했다. 내 생각에 조국 사태의 본질은 우리 사회가 계급 사회였다는 받아들이고 싶지않은 진실을 자각하게 한 사건이었다. 인정하고싶든 아니든 우리 사회는 이미 불평등 사회였음에도. 그만큼 불평등은 조금만 바람을 불면 금세 큰 불로 번질 불씨를 내재하고 있을 만큼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사회적 불평등 정도를 낮춰야한다는 당위적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그런 노력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국가간, 사회 계층간 불평등도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만연한 이와 같은 불평등이 어쩌면 자연 법칙처럼 거스르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개미 군집의 행동을 관찰해 답을 얻은 이가 바로 이탈리아 사회경제학자 파레토였다. 소위 ‘8 대 2의 법칙’, ‘불균형의 법칙’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파레토 법칙을 풍부한 사례와 함께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한 책이 바로 리처드 코치의 ‘80/20 법칙’이란 저술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이 책을 읽고 난 큰 충격에 빠졌다. 물리 자연현상과 달리 예측이나 설명이 어려운 인간의 불특정한 생각과 행동이 개미와 같은 미물의 군집 행동과 같이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사실, 그것을 토대로 일정한 통계적 예측이 가능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내가 과학의 문외한이긴 하지만 자연현상과 달리 최소한 인간의 행동은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자아와 자유의지를 갖고있는 인간 사회가 어떤 예외도 없이 8 대 2로 설명되고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파레토 법칙이 단순히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제 적용 사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고객을 상대하는 은행, 백화점 등은 고객관계관리(CRM) 기법이란 방법으로, 삼성전자같은 제조기업들은 식스 시그마(6σ)같은 품질관리기법에 파레토 법칙을 원용, 경영을 효율화함으로써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자연 현상이 아닌 인간 행동과 결부된 사회 현상에도 과학적 법칙이 지배한다는 사실이 내겐 인식의 전환점이 될 정도로 큰 인지적 충격을 주었다.

리처드 코치는 파레토 법칙을 통해 투입과 산출, 노력과 보상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냉정한 진실을 토대로 50의 투입으로 50의 산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20의 노력으로 80의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인생의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리처드 코치의 발상은 <재미의 본질>이라는 책을 쓴 재미 연구자로서 신기하게도 내 생각과 일치하는 얘기들이라 놀랍기도 하다. 많은 이들의 삶이 불행한 이유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치않는 일로 낭비하기 때문이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 바로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것을 구체화하는 방법이 바로 80/20 법칙이라는 것이다.

내가 읽었던 리처드 코치의 책은 2000년에 발행된 번역본이었는데 확인해 보니 20년 만에 증보된 2018년 개정판이 나왔다. 개정판에서는 요즘같은 플랫폼, 네트워크 시대에 파레토법칙이 갖는 의미를 재해석하고, 이를 90/10, 99/1로 심화될 때에도 활용하는 방법, 잠재의식을 활용하는 방법, 미래사회에서도 파레토 법칙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근거 등 총 다섯 개 장이 기존의 내용에 새로 추가되었다. 20년이란 시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파레토 법칙이 지금도, 미래에도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유효한 과학적, 실용적 논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책의 내용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할 만큼 어느 정도 독자들의 검증을 받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이 책을 단순히 개인의 삶을 개선하고 효율화하기 위한 자기계발서로만 읽는다면 저자의 통찰을 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이 세상의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논리로 해석돼서도 안된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불평등은 구조적인 것이긴 하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인간 사회를 자연 상태 그대로 두면 인간 사회의 불평등도는 8대 2가 아니라 9 대 1, 99 대 1로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선진 경성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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