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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은 청년의 소리를 들어라
정치권은 청년의 소리를 들어라
  • 교수신문
  • 승인 2019.09.2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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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대중영화는 민심과 사회를 반영한다. 최근 영화를 보면 기성정치권이 젊은 세대와 얼마나 단절되어 그들의 소리를 외면하면서 권력화되고 민심을 이반하는 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엑시트>, <유열의 음악에프엠>, <타짜: 원아이드잭>의 공통점은 청년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엑시트>는 유독가스로 도시가 점령되자 모두들 구조되고 두명의 청춘남녀가 고립되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는 얘기다. 이 영화는 지금 한국사회의 핵심 문제점을 지적하는 젊은 세대의 발언이다. 남자 주인공은 단지 밥벌이를 못한다는 이유로 주변의 누구로부터도 격려나 위로를 받지 못하는 청년 백수 세대를 대변한다. 심지어 여자 친구로부터도 거절당해 이를 악물고 취직하려고 노력중이다. 정작 재난이 일어나 구조상황이 되었을 때도 노인, 어린이, 약싹 빠른 ‘가진 자들’의 구조순위에서 밀려 홀로 여자친구와 남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 기성세대에 대해 이미 실망했고 살아남기 위해선 자립갱생할 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유열의 음악에프엠> 역시 상처받는 젊은 날의 초상을 그린다. 젊음은 그 자체 아픔이고 불안정이고 절망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들을 위로해주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이 원망스럽다. 흥겨운 오락영화 <타짜> 역시 슬프기는 마찬가지. 아버지 없이 엄마 혼자 장사를 하는 가난한 흙수저 집안의 아들은 유일한 희망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청년 백수. 돈이 웬수라서 일확천금의 유혹인 도박의 세계에 빠진다. 빽 없으면 사기라도 쳐야 살아남는다는 자본주의의 비정한 세계속에 청년백수들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기성세대들은 별로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현대사의 공통점은 역사발전의 변곡점이 청(소)년의 죽음 혹은 희생을 통해 주어졌다는 점이다. 멀리 일제시대 광주학생의거까지 가지 않더라도 1960년 419혁명의 단초는 최루탄이 머리에 박힌채 마산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학생의 시신에서였다. 1970년 청계천의 청년노동자 전태일은 노동법을 준수하라며 분신자살하였다. 1980년대 이한열, 박종철의 죽음은 629와 민주정권이양이라는 정치권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1994년 멀쩡하던 성수대교가 하루아침에 붕괴됐다. 돈 남기려고 부실공사한 건설업자부터 돈 먹고 엉터리 감리한 업체, 뇌물에 눈감아준 행정관료, 모든 걸 알면서도 묵인한 정치권에 이르기까지 쇠사슬처럼 연결된 정치사회 총체적 비리가 불러낸 대형재난사고였다. 가장 많이 희생된 사람은 아침 등굣길에 버스에 탔던 아무 죄없는 학생들이었다. 2002년 여중생 효순과 미선이 미군장갑차에 깔려 숨졌다. 당시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추모하고자 익명의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서 추모제를 했다. 이후 광화문은 억울한 서민들의 촛불 민주광장이 되었고 촛불혁명이라는 정치적 구호로까지 발전했다. 2014년 세월호가 침몰하여 수학여행가던 단원고 학생들이 정부의 늑장대응으로 더 많이 희생되었다. 정치권의 총제적 무능력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하는 시점이 되었다.  

기득권정치세력은 항상 비겁했다. 그들은 국가의 안위나 민생 보다도 정당의 권력과 가족의 영달에만 치중했다. 그러는 사이 민생경제는 어려워지고 국가는 분열되어 헬조선이 되어갔다. 한국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공적인 정신이 이탈되어 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정치가들의 정신은 멸사봉공(滅私奉公), 청렴결백(淸廉潔白)에 있었다. 벼슬은 영의정이면서도 집은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고 재산마저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퍼주었다는 청백리(淸白吏)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유재산 그럴 듯 하게 운운하며 자신의 재산은 다 챙기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것이 현대정치가의 위선적 모습이란게 실망스럽다. 공익과 사익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일제시대 만주에서 독립운동 하는 통에 가족의 생계를 돌보지 못했던 독립군들의 그 고귀한 정신은 다 어디로 갔나. 역사적으로 정치가들이 스스로 깨닫고 올바로 반성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들을 깨우칠 어린 희생이 곧 다시 닥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밀려온다. 부디 정치권은 청(소)년들의 맑은 소리에 귀 기울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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