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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가족’과 바람맞는 가족
‘바람난 가족’과 바람맞는 가족
  • 이남석
  • 승인 2003.09.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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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바람난 가족'을 보고

이남석 / 성공회대 정치학

누구나 한번쯤 규범을 벗어난 일탈을 꿈꾸고 시도하고 싶은 바람! 바람은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였고, 금기의 대상이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바람은 떠도는 소문을 지나 사실로 확인되면 가족에게 태풍과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가족을 파멸로 몰고 간다. 

그러나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바람은 남성과 여성에 따라 달라진다. 남성에게 바람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허무한 심연의 욕구분출이다. 반면 여성에게 바람은 자신을 찾아가고 채워 가는 과정이다. 영화에서 남편은 상대를 바꾸어 가면서 정부, 술집 여자, 비서와 바람을 피운다. 부인은 옆집 고딩과 바람을 피운다. 남편 영작은 바람을 피움으로써 정신적 허무를 채우려고 하지만 다시 공허감만이 그 빈자리를 채울 뿐이다. 반면 부인 호정은 진정한 오르가즘과 희열에 흐느끼고, 출산하게 될 생산의 기쁨을 만끽한다. 호정은 바람을 피움으로서 자신의 빈곳을 충만함으로 채워간다. 

<바람난 가족>에서 일탈인 바람이 분명 남성과 여성에게 다르게 나타난다. 왜 그런가? 영화에서 남편은 역사의 진실 찾기라는 거대 담론을 위해 싸우지만, 가족 내에서는 아무하고도 소통을 하지 못하는 고립된 존재이다. 영작은 양민학살이라는 역사의 진실 찾기, 묻혀지고 감추어진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려고 하는 변호사이다. 그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해당 지역 주민을 설득하고, 법원 판사를 찾아다닌다. 그는 이성의 언어로 거대 담론과 숨겨진 진실 찾기를 수행하는 투사이다. 그러나 영작은 정작 분단 현실의 희생양인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의 아버지는 술과 담배로 몸이 상하고, ‘김일성 장군가’를 부른 모습에서 나타나듯이 이념의 희생자로서 마음이 상한 자이다. 영작은 아버지가 피를 토하고 있어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부인만을 신경질적으로 부를 뿐이다. 영작은 늦바람으로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 성공한 어머니의 말도 이해하지 못할 헛소리로 들을 뿐이다. 그는 바빴다는 핑계로 입양한 자식마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데서 드러나듯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할 줄 모르고 따듯한 마음을 가지지 못한 자이다. 

반면 부인 호정은 가족의 소통의 매개자이다. 호정은 거대 담론을 말할 줄도 모르고, 묻혀진 진실을 밝혀낸 힘도 없다. 호정은 평범한 여성일 뿐이다. 호정은 복잡하고 계산이 개입된 이성의 언어 대신 진정한 사랑을 담고 있는 감성의 언어로 이야기할 뿐이다. 그러나 호정은 거대 담론의 희생자인 시아버지를 따뜻하게 받아들일 줄 안다. 호정은 시아버지의 살아 생전 마지막 외출을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위로해 줄 여유가 있다. 호정은 피를 토하고 괴로워하는 시아버지를 보듬어 줄  따뜻함이 있다. 호정은 시어머니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이해하고 축하하며, 입양한 자식, 확대해서 해석하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할 줄도 안다. 다만 호정이 가족 내에서 대화할 수 없는 상대가 있다. 그는 거대 담론의 투사이자 호정과 가족을 연결시켜준 남편이다.  

그런 영작과 호정 간에는 성행위다운 성행위가 있을 수 없다. 서로 만족하지 못한다. 서로 임신할 능력이 있지만 임신하지 못한다. 둘은 서로 맞바람을 피운다. 영작은 바람을 통해 아버지, 어머니, 자식, 부인을 잃어, 마침내 가족을 잃게 된다. 호정은 바람으로 얻은 아이를 통해 새로운 가족(흔히 말하는 대안 가족)을 꾸릴 준비를 한다.

영화 <바람난 가족>은 분명 과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현실의 남편과 여성이 다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을 상당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는 매력이 있다. 가정을 경제적으로 책임진다고 생각하는 남편들은 가족 밖에서와 달리 가족 내 소통에서 배제된 자들이다. 남성은 가족 내 대화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노력할 자세도 없다. 일요일 하루 종일 집안에 있으면서, TV 화면을 5분 간격으로 돌리고 애꿎은 리모콘만 혹사시키고 있는 것이 남성들의 현실이다. 여성들만이 가족 내 의사소통을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족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핵가족에서 ‘나 홀로 족’으로 개인화 되어 가기 마련이다. 이것은 붕괴의 원인이 다를 뿐 사회의 상층이건, 중산층이건, 하층이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자신의 가족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를 저지할 방법이 있다. 그것은 가족의 대화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가족 내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남성이라면 무엇보다 대화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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