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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잘 놀아야 한다
교수는 잘 놀아야 한다
  • 김정운 명지대 문화심
  • 승인 2003.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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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교수에게 휴테크가 필요한 까닭은?

김정운 / 명지대 문화심리학

이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사람만 있단다. '교수'와 '교수 아닌 사람'. 10년 넘도록 강사생활을 하는 내 친구의 말이다. 교수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 땅의 현실을 아주 잘 나타내 준다. 물론 교수라고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강사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내 친구의 넋두리는 이내 교수들의 인격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가면서 분노로 변한다. 강남의 철없는 벼락부자와 교수의 인격수준에는 어떠한 차이도 없다고 거품을 문다.

일반 직장에서는 평사원에서 이사직에 오르기까지 여러 계단이 존재한다. 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사람들은 그 지위에 맞는 행동방식을 익히며 의무와 책임,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리더십을 익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교수는 다르다. 교수와 강사 사이에는 어떠한 중간 단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정규 일용잡급직'에 불과했던 사람들이 교수가 되는 순간부터 최소한의 사회적 존경과 위엄을 부여 받는다. 이러한 급작스런 신분상승은 교수의 사회성 발달에 그리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자신의 초라했던 시절을 보상 받으려는 무의식적 욕구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새로운 권력을 확인하려는 철없는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심리학적 측면에서 봐도 업무의 피드백이 느릴 수밖에 없는 교수직은 정신건강에 그리 좋은 편은 못 된다. 연구의 옳고 그름, 성공과 실패의 피드백이 빠른 이공계통의 교수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객관적 판단보다는 주관적 신념에 의지해야 하는 인문사회계열의 교수들의 심리상태는 자칫하면 오만과 아집으로 왜곡되는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의사소통의 부재와 유아독존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교수라는 직업은 자신의 심리상태에 대한 지속적인 반성이 없다면 아주 '몹쓸' 직업이 된다.

휴테크의 핵심은 소통이다.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대화하는 자기반성은 휴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교수라는 외피 속에 가려진 벼락부자수준의 의식에 대한 반성이 꾸준하게 계속되지 않는다면 남는 것이라곤 동네 조폭 수준의 인격뿐이다. 자기반성으로서의 휴테크는 자신이 맺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의 방법을 뜻하기도 한다. 한 대학이나 학과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수사회의 다양한 갈등의 양상을 돌이켜 본다면 교수들만큼 휴테크가 필요한 사람들은 없다. 가장 오래된 주5일 근무제의 혜택을 입고 있는 교수사회가 가장 여유 없고 긴장된 인간관계에 멍들어 있다는 사실은 참 심각한 아이러니다.

교수는 잘 놀아야 한다. 아주 잘 삐치는 속 좁은 사람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몸을 움직이는 여가활동을 자주 해야 한다. 머리만 주로 써야 하는 교수라는 직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몸의 근육은 퇴화하고, 쓸데없는 데만 관심을 갖는 잔머리만 발달한다. 특히 연구 성과에 대한 피드백이 늦게 이뤄지는 학문분야의 교수일수록 틈틈이 잘 놀아야 한다. 연구결과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자신과 주위사람을 다양한 방식으로 괴롭히기 일쑤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자신이 스스로 텃밭을 가꾸거나 간단한 가구 등을 만들어 보는 DIY(Do It Yourself)와 같은 작업이 효과적이다. 결과가 분명하고 피드백이 빠르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일상을 떠나 방해 받지 않는 곳에서 평소에 다루던 연구주제와 전혀 다른 문제에 천착해 보는 것 또한 좋은 휴테크다.

위대한 학자로 알려진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만의 독특한 휴테크를 가지고 있다. 평소 각종 정신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상대해야 했던 프로이드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오늘날로 말하면 산악 트래킹이라 할 수 있는 긴 산책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의 대표저서인 '꿈의 해석'의 핵심 아이디어는 바로 이 산책길에서 얻어졌다고 한다. 넓고 환한 들판에서 해가 높은 전나무에 가려진 어두운 숲 속으로 들어가며 인간 무의식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창의성 연구자들에 의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대부분은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날 때 얻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주말이고 방학이고 연구실에만 버티는 교수는 성실한 사람일수는 있으나 창의적인 사람이 되긴 어렵다. 행복한 사람이 되긴 더더욱 어렵다. 불행한 교수는 불행한 제자를 양산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회악이 된다. 나만의 휴테크를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샘솟는 행복한 교수가 많아져야 한다. 교수의 연륜이 쌓일수록 제자와 후배들 괴롭히는 일을 여가생활로 삼는 내 모습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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