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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위화가 들려주는 ‘만만’의 비행
'청년' 위화가 들려주는 ‘만만’의 비행
  • 허정윤
  • 승인 2019.09.05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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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새책_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저자 위화| 역자 문현선| 푸른숲| 페이지 404

위화는 매해 노벨상 문학상으로 언급되는 아시아 작가다. 위화의 책 <인생>은 1993년 출간된 이래 중국에서만 400만 부가 팔렸으며,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옌보다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독자들은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로 위화를 잘 알고 있다. 위화는 ‘가장 논쟁적인 작가’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 <제7일>과 <형제>로 중국 사회에서 첨예한 화두로 떠오른 문제들에 화두를 던졌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국어로 번역된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은 위화가 독서와 음악에 관한 감상을 쓴 에세이다. 작가가 30대 중후반과 40대 초반에 쓴 글들을 모아 응축했다.

책 머리말에서 위화는 독서 행위를 ‘만만’에 비유한다. 만만은 눈과 날개가 하나씩밖에 없어 날기 위해서는 짝을 찾아야만 하는 상상 속의 새다. 위화는 문학을 만만의 한쪽에, 읽는 행위를 만만의 다른 한쪽에 빗댄다. 서로 만나 하나가 되어야 의미가 있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은 위화가 문학과 음악으로 건네는 ‘만만’에 대한 이야기다. 위화의 말처럼 음악과 문학은 결국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문학은 글자와 어휘로 이뤄진 문장으로, 음악은 음표가 만든 선율로 스토리텔링을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작가로서 위화는 ‘예나 지금이나 나는 음악 서술 속의 화성(和聲)이 참 부럽다’고  적었다. 여러 악기가 높낮이가 제각각인 소리를 내면서 합주에 나설 때 내는 소리의 오묘함에 매료된 것이다. 위화는 일본의 ‘애악’ 잡지 기자와 인터뷰에서 오디오를 구매한지 반년 만에 음악 CD를 3백여 장이나 사들인 이력을 밝히며 자신이 음악에 ‘굶주린 상태’였다고 책 말미에 적기도 했다.

위화는 음악에서는 화성들이 서로 호의적이든 경쟁적이든 그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같은 방향으로 전진하는 특징이 있지만, 문학에는 없다고 말했다. 화성의 특징은 수많은 음이 동시에 울려야만 만들어지는 것이라 마치 음악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화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음악처럼 동일한 시간대에 화성을 구현할 수는 없지만, 언어로 쓰인 작품에서는 개방성이 열독의 방식과 화성을 결정짓는다고 서술한다. 위화는 ‘읽는 행위’가 문학과 조우할 때 이루어지는 동시성에 집중한다. 위화가 정의한 ‘독서의 화성’은 음표와 달리 한 줄 한 줄 조용히 배열된 글자가 자기만의 경험과 느낌으로 글을 읽는 독자와 만날 때 생성된다고 정의했다. 이 둘이 의기투합하기 전까지는 텍스트는 죽어있는 것이나 다름없고 독서는 공허할 뿐이다.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은 위화가 자신이 읽은 책과 들은 음악에 대한 감상을 자신만의 화성으로 써놓은 또 하나의 작품이다.

위화는 윌리엄 포크너, 가와바타 야스나리, 프란츠 카프카,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책을 선율에 비유하며 찬탄을 아끼지 않는다.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을 두고는 ‘삶처럼 소박하고(중략) 향수도 없고 군더더기 화장이나 치장도 없이 맨발로 어슬렁거리는 듯하다’고 표현했다.

위화의 음악적인 감상과 옛 거장들에 대한 견해는 책 후반부에서 만날 수 있다. 위화는 ‘음악은 각각의 시대와 다양한 국가 및 민족의 사람들, 다채로운 경력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유와 다양한 인식에서 출발해 나름의 입장과 각양각색의 형식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똑같은 정성을 기울여 창조해왔다’고 적었다. 멘델스존의 언어(음악)가 애매하고 모호해 오해하기 쉽다고 느낀 이유에 대해서는 서술이 어휘가 아니라 음표로 구성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멘델스존이 추구했던 바는 작가 호메로스와 단테가 펜을 들었을 때 추구했던 바와 같다는 말이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찾고자 했던 것은 음표나 어휘가 아니라 ‘서술’로 귀결된다는 게 위화의 분석이다.

위화를 <제7일> 같은 소설가로 먼저 만난 독자들은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을 통해 작가의 다른 면을 만날 좋은 기회다. 이번 책은 이전 책들보다 개인적이고 분석적이며 에세이마다 등장하는 주제나 작가들이 다르다 보니 글 또한 다채로운 맛이 있다.

허정윤 기자 verit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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