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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logue] 자연을 강조한 솔거의 미디어 파사드
[Cinelogue] 자연을 강조한 솔거의 미디어 파사드
  • 교수신문
  • 승인 2019.07.2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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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동국대 영화영상학과교수)
정재형(동국대 영화영상학과교수)

세상은 항상 두개의 상반되는 갈등을 갖고 있는데 미래세계가 닥쳐올수록 모순되게도 인간은 멸망할 거라는 두려운 절망감과 동시에 누군가에 의해 구원될 거라는 낙관적 강박관념을 소유하게 된다. 초자연적 수퍼 영웅이 끊임없이 영화속에 등장하는 것도 현대인의 마음속에 바로 그 불길함과 편안함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새로 나온 <스파이더맨: 파프롬홈>에서 스파이더맨은 유럽에서 벌어지는 재난과 악당에 대항해 물리쳐야 하는데 그만한 능력이 없는 것을 절감한다. 이번 영화의 핵심은 스파이더맨이 자신없는 사람에서 자신있는 사람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속임수에 속는 사람 이었다가 속임수에 속지 않는 사람으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가 속을 수밖에 없는 속임수는 완벽한 미디어 파사드기술이다. 현실과 가상을 구별할 수 없는 3차원의 가상현실이다. 스파이더맨이 성공한 것은 결국 눈의 부정이었다. 대신 그는 마음의 눈을 뜬다. 욱안의 눈으로 보지 않았고 마음의 눈으로 봤던 것이다. 스파이더맨은 눈을 부정함으로 혼동스러움을  극복한다.


기원전 5세기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보면 그리스 화가 제욱시스와 파라시우스의 일화가 있다. 제욱시스의 포도그림은 새들을 속였다. 새들은 포도를 쪼아먹으려다 실패한다. 파라시우스는 자신이 그린 커튼을 통해 제욱시스를 또 속임으로써 파라시우스가 제욱시스보다 더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을 입증하는 우화로 차용한다. 이 우화를 갖고 많은 사람들이 현대 가상현실의 세계를 이미 예견한 것으로 생각한다.


모든 것을 서구로부터 특히 그리스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간주하고자 하는 현대의 사고는 이제는 수정되어야 한다. 신라시대 솔거라는 인물이 있었다. [삼국사기] ‘솔거열전’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솔거는 황룡사벽에 노송을 그렸는데 새들이 날아와 앉으려다 떨어졌다. 후일 색이 바래 승려가 단청을 그렸는데 이후 새들이 오지 않았다. 그리스 보다 후대이긴 하지만 두 우화 사이에는 현실과 구별할 수 없는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솔거를 단지 박진감 있는 그림을 그린 사람으로만 이해하자는 것이 이 글의 요지가 아니다. 똑같은 화풍이었어도 솔거가 제욱시스나 파라시우스 보다 한수 위였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스 두 화가들은 사물을 누가 더 잘 그렸나를 고작 경쟁하는 인격만을 보였지만 솔거는 한 차원 위의 인격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솔거는 어떤 사람인가. 황룡사는 절인데 왜 그는 부처님이나 보살상을 그리지 않고 소나무를 그렸을까. 그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그린 그림은 자연이고 그걸 향유하는 대상은 역시 자연에 속해 있는 모든 생명이다. 그는 막힌 벽을 뚫은 것처럼 펼쳐진 자연을 그렸다. 새가 막힌 것도 모르고 그곳으로 돌진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 였다. 솔거는 벽을 허물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 벽을 허물 수는 없으니 가상으로나마 펼쳐진 자연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제욱시스가 포도를 그린 거나 파라시우스가 커튼을 그린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단지 현실을 똑 같이만 그리고자 하는 것이 의도가 아니다. 무엇을 왜 그리느냐가 중요한 멧세지였던 것이다.


제욱시스 우화는 그리스인의 자연에 대한 모방의 자세를 보여준다. 똑같이 그리는 것이 진리라는 것이다. 솔거는 다르다. 누구를 위해, 왜 그렸는가에 대한 현대적 성찰이 있다. 벽은 막힌 것이고 솔거는 연장된 숲의 공간으로 전환시켰다. 현대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가 추구하는 것이 바로 솔거가 원했던 것에 가깝다. 답답한 이 공간을 다른 유토피아 공간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바로 미디어 파사드와 가상현실이 추구하는 것이다. 솔거일화는 우리 민족의 철학 홍익인간사상을 엿보게 한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의식이 깃들어 있다. 솔거는 그림의 대상과 그걸 향유하는 대상의 마음을 읽은 화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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