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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무덤기행] 법정은 후박나무 아래 묻혔다. 거기 계신다. 아니 거기 안 계신다
[최재목의 무덤기행] 법정은 후박나무 아래 묻혔다. 거기 계신다. 아니 거기 안 계신다
  • 교수신문
  • 승인 2019.07.1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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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無의 덤’을 생각하다”

“죽음도 미리 배워 두어야”

흙은 시간을 견디는 모든 공간적인 것들의 기본형식이다. 아니 시간의 경과를 느리고 거칠게 보여주는, 이른바 시간의 발자국이거나 상처 혹은 고통이다. 마치 바람이 자신의 움직임을 알아줄 ‘종’[=풍경(風磬)]이 없이는 자신의 존재 위치나 상태를 알리지 못하듯이. 아니, 바꿔 말하면, 종 또한 ‘바람’ 없이는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나 자태를 드러내지 못하듯이. 

무명풍도 이 육신 없이는 일어날 곳이 없다. 아니 이 육신도 무명풍 없이는 휘날릴 수 없다. 대지 위의 산천초목이라는 형체를 가진 ‘공간적’인 표현 없이는 위대한 무시무종의 시간도 그것을 기려주고 챙겨줄 형식이 없다. 

산에는 꽃이 피었다 진다, 봄가을 없이. 시간은 그렇게 꽃이 ‘피고 짐’으로 자신의 영원한 모습을 주름잡아 분절(分節)하여서 보여준다. 나무의 시간도 붉고 푸른 이파리로 보여준다. 그것이 나무의 민낯=맨얼굴=본래면목이다. 

이 풍진 세상의 풍광은 그저 증감(增減)도 없이, 공허 속을 출렁이는, 풍류(風流)일 뿐. 즐거움도 기쁨도 없이, 아름다움도 추함도 없이, 그저 출렁출렁 흔들릴 뿐이다. 이 풍진 세상 그 끝자락을 부여잡은 무덤 곁으로, 내가 가고 싶은 이유는 ‘아름다운 마무리’ 때문이다. 법정스님의 말대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초심’을 회복하는 일이다. 

나는 누구이며, 순간순간 어디로 가는가를 짚어보며, ‘홀로 서는 것’. 그러나가 끝내, ‘다 내려놓아야’ 한다. 법정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죽음도 미리 배워 두어야 한다”고 하며, 죽음의 의의를 밝힌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삶의 신비이다. 만약 삶에 죽음이 없다면 삶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죽음이 삶을 받쳐주기 때문에 그 삶이 빛날 수 있다.

얼마 전 한 친지로부터 들은 말이다.  

살아있는 한 손발을 움직여야 한다. 허공 속에서 손발은 움직인다. 그 헛 ‘짓’이 역사이다. 모든 ‘짓’에는 의미가 있고, 역사가 있다. 삶이 아름다운 것은 이 ‘헛짓’, ‘무명의 바람’ 무명풍(無明風)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손짓, 발짓, 몸짓이 살아난다. 마치 새의 날개 짓처럼 말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1945)에서 “새의 날개는 추진기관이지 조절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다리와 같은 것으로 여겨야 한다. 사람만이 가진 독특한 특징은 손인데, 그것이 바로 모든 장난 짓을 다하는 도구이다.”라고 하듯이, 손은 삶의 날개이다. 그리고 마음의 나래 짓, 온갖 손짓이 입에서 수시로 튀어나오는 말 아닌가. 그러나 입만 벙긋하면, 그저 어그러지는 것들[開口卽錯]. 어쩌랴, 실은 그 어그러진 것들도, 다 그렇고 그런 의미가 있는데. 그대로 좋다. 찰라생, 찰라멸이 다 우주의 헛 손짓 헛 발짓 아닌가.

불일암 앞의 생전 법정스님의 고무신
불일암 앞의 생전 법정스님의 고무신

‘불일암’(佛日庵) ‘법정스님 계신 곳’으로

88고속도로를 달려 대구에서 ‘부처의 빛’이라는 이름의 암자 ‘불일암’(佛日庵)으로 향한다.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전남대 상과대를 다니던 중 출가한 법정스님은 효봉(曉峰) 스님을 은사로 절 생활을 시작한다. 효봉은 “니는 부처님 가피로 세상에 태어났으니 불법인연이 참으로 크다. 부디 수행을 잘해서 법의 정수리에 서야 한다.”며, 법명을 법정(法頂)으로 내렸단다. ‘정수리’라.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말하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의 ‘정수박이’(정수리의 강원도 사투리)다. 인간과 사물의 제일 꼭대기 부분을 말한다. 핵심-정곡-본질을 가리킨다. ‘불법의 정수리’라는 법명의 ‘법정’. 그리고 ‘부처의 빛’이라는 암자 이름 ‘불일암’은 서로 통한다. 

88고속도로를 달려, 송광사 대구에서 송광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뿔싸 벌써 오후 4시다. 참배시간이 ‘오전 8시~오후 4시’이니, ‘이미 늦었다’는 불안감이, 살짝 든다. 산길 1.5 km정도, 약간 가파르다 한다. 쉬엄쉬엄 3-40분은 걸어 올라야 할 듯. 신발을 벗어 들고, 맨발로 터벅터벅 불일암으로 가는 ‘무소유길’을 걸어 오른다. 요즘 나는 맨발로 걷기에 열중이다. 맨발은 대지와 하나 되는 연습이다. 발의 촉각으로 대지를 읽을 수 있다. 땅의 성격과 소리, 우둘투둘하거나 거친 땅의 성정(性情)과 교감한다. 

길을 걸을 때는, 입간판이나 현판의 글씨들을 잘 읽어야 한다. 세속의 물건들은 보통 문자로 지시되어 있다. 틈틈 물 마시는 곳, 쉬는 곳, 특히 먹고 마신 뒤 몸의 일부를 내려놓고 푸는 ‘해우소’ 같은 것들을 눈여겨 봐 두어야 한다.  

드디어 터널 같이 컴컴하게 우거진 조리대나무 숲 속을 지난다. 불일암이 나타난다. 그 안에 펼쳐진 사각형의 작은 텃밭, 그것을 둘러 싼 아담한 법당, 자그마한 아래채와 해우소. 그게 전부다. 고요의 풍광 속을 키 큰 후박나무가 지키고 서 있다. 법정스님이 평소 좋아하던 벗이었다. 여행 후 돌아올 때마다 껴안아 주었다 하는데, 지금은 스님이 그 나무 아래 흙이 되어, 그 나무의 일부로 누워, 아니 거기 ‘안겨서’ 있다. ‘법정스님 계신 곳’, 바로 적멸의 터다. 

스님의 예상대로 사람이 가고 난 뒤에도 대지 위에 꿋꿋이 서 있다. “며칠 전 불일암을 다녀왔다. …30여 년 전 이 암자를 지을 때 손수 심어 놓은 나무들의 정정한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한 생각이 차오른다. 후박나무, 태산목, 은행나무, 굴거리와 벽오동 등이 마음껏 허공으로 뻗어 가는 그 기상이 믿음직스럽다. 사람은 늙어 가는데 나무들은 정정하게 자란다. 사람이 가고 난 뒤에도 이 나무들은 대지 위에 꿋꿋하게 서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 한 아름이 된 후박나무를 안아주었다.”

스님은 자연의 도반 후박나무 밑에 묻혔다. 거기 계신다. 아니 그것은 후박나무일 뿐, 아니 땅일 뿐, 사실 스님은 거기 계시지 않는다. 다만 그런 알레고리를 통해서, 스님은 그렇게 거기 계신다. ‘후박(厚朴)’은 인정이나 덕망이 ‘두텁고’ ‘질박하다’(=거짓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후박은 자연의 표상이고 대지의 품성을 뜻한다. 떨어진 나뭇잎을 이불처럼 덮고, 흙과 나무뿌리를 속옷으로 껴입고, 해와 달을 가로등 삼아, 거기 그렇게 살아 있는 것들은 다 후박이리라.

법정 스님은 따로 임종게를 남기지 않았다. “장례식을 하지 마라. 사리를 찾지 마라. 재는 오두막의 꽃밭에 뿌려라.”던, 장례 절차에 대한 유언이 임종게가 되었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것이 있다. 장자(莊子)가 죽으려 하자, 제자들은 그를 성대히 장사지내려 하였다. 그때 장자가 말하였다. “나는 하늘과 땅을 관과 겉 관으로 삼고, 해와 달을 한 쌍의 구슬 장식으로 삼고, 별자리를 진주와 옥 장식으로 삼고, 만물을 부장품으로 삼으려 하니, 나의 장구는 이미 다 갖추어진 것이 아닌가? 여기에 무엇을 더 보태겠느냐?” 그러자 제자들이 말하였다. “저희들은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을 먹어 버릴까 두렵습니다.” 다시 장자가 말하였다. “땅 위에 놓아두면 까마귀와 솔개가 먹을 것이고, 땅 아래에 묻으면 개미들이 먹을 것이다. 이쪽 놈이 먹는다고 그것을 빼앗아 딴 놈들에게 주는 셈이다. 어찌 그렇게 편벽되게 생각하느냐?” 

생사를 넘어서는 것은 시공간을 벗어버리는 일이다. 상대적 세속의 세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절대의 세계는 비어있다. 거기로 들어가려면, 다 놓아두고, 텅 비워야 한다. “놓아두고 가기! 때가 되면, 삶의 종점인 섣달 그믐날이 되면, 누구나 자신이 지녔던 것을 모두 놓아두고 가기 마련이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미리부터 이런 연습을 해두면 떠나는 길이 훨씬 홀가분할 것이다.”

불일암가는 무소유길의 안내판
불일암가는 무소유길의 안내판

시계-시간으로부터의 자유

법정스님은 시간에 예민했다. 특히나 예전 시계에서 흔히 듣던 그 째깍대는 시침 움직이는 소리나 시끄러운 괘종시계 소리를 싫어했다. 어린 시절부터 스님은 시계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다. 불일암에 살 때에도 그랬다. 아무리 디자인이 맘에 드는 시계라 하더라도, ‘째깍 째깍’ 소리가 나면 모두 산 아래로 내려 보내거나 소리가 나지 않게 건전지를 빼두었다고 한다. 시간에 붙들림-묶임을 벗어나 ‘시간 밖에서’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 모든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 홀로 사는 삶, 초연히 단독자가 되는 삶은 곧 홀로 서는 것이다. “‘홀로’라는 말은 어디에도 매이거나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부분이 아니라 전체이고,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음을 뜻한다.” 홀로가 되는 자발적 고독은 자유를 위한 것이다. 마음의 가난 즉 무소유를 향한 것이다. “무소유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흔히 무소유를 물질을 갖고 안 갖고의 관점에서 이해하는데, 무소유란 물질 위주의 생활에서 존재 중심으로 이동하라는 뜻이다” 소유적 삶에서 존재적 삶으로의 이동은, ‘가지려는 마음’에서 ‘모든 있는 것들과 함께 있고-마주하며-바라보고-즐거워하는 마음’ 상태로의 이동을 뜻한다. 

불일암 앞 후박나무(아래에 법정스님 계신 곳이 있다)
불일암 앞 후박나무(아래에 법정스님 계신 곳이 있다)

안계시되 계시는, 저 ‘흰 고무신’의 무게 

불일암의 후박나무 아래 ‘법정스님 계신 곳’과 마주한 암자 벽에는, 스님이 웃는 사진이 걸려 있고, 그 아래 유명한 빠삐용 나무 의자. 그 위에 방명록과 기념용 책갈피가 있다. 

유독 눈에 띄는 뒤꿈치 부분이 살짝 헤진 흰 고무신. 살짝 눈물이 난다. 십리길 신작로를 걸어 통학하던 내 어린 시절의 검은 고무신도, 읍내 시장 길을 걷던 내 할머니의 흰 고무신도, 가난했던 시절 시골길의 모든 신발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신발의 아우라는 모두 복제가 불가능한, 유일한 것이다. 법정스님의 흰 고무신에서 그것을 새삼 떠올린다. 대용품이 있을 수 없는 단 한 켤레의 신발, 미당 서정주의 시 ‘신발’에서 만나는, ‘잃어버리고 말아 다시 돌아올 길 없는’, 그 신발 말이다. 
      
나보고 명절날 신으라고 아버지가 사다 주신 내 신발을 나는 먼 바다로 흘러내리는 개울물에서 장난하고 놀다가 그만 떠내려 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내 이 신발은 벌써 변산 콧등 밑의 개 안을 벗어나서 이 세상의 온갖 바닷가를 내 대신 굽이치며 놀아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어서 그것 대신의 신발을 또 한 켤레 사다가 신겨주시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용품일 뿐, 그 대용품을 신고 명절을 맞이해야만 했었습니다.

그래, 내가 스스로 내 신발을 사 신게 된 뒤에도 예순이 다 된 지금까지 나는 아직 대용품으로 사 신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 그대로 있습니다. 
 
복제가 불가능한 신발은 사실 삶과 죽음이라는 길의 중앙분리선이라고 할까. 신고 있으면 삶을, 벗고 있으면 죽음을 뜻하니 말이다.

그만큼 신발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삶이 갖는 의미, 그리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관계들에 대한 책임감 등 이중 삼중의 무게를 느낀다. 스님의 신발은 수행자인 자신에 대한, 구제해야할 중생들에 대한 무게를 짊어진 신발이리라. 그 헤진 신발에서 발을 뺐다는 말은 이 지상을 떠났다는 말. 그런 시공간을 버렸다는 말이다.
 
이쯤에서 박목월의 시 ‘가정’을 생각한다.

“…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 구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 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존재가, 구문반의 책임감으로, 웃으며 ‘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서 온 것이다. ‘내가 왔다./아버지가 왔다.’는 대목에서 울컥 눈물이 난다. 수행자의 신발도 그런 신발 아닌가. 아버지가 온 것이 아니라 ‘구문 반의 신발’이 ‘온 것’이다. 그런 의미가 성큼성큼,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서’ 왔던 것이다. 

수행자는, 아니 삶의 주인공들은 그런 길을 홀로 걸어서 왔다 간다.     

“간다, 봐라!”

최근에 나온, 법정스님의 사유노트와 미발표원고를 모은 『간다, 봐라』라는 책을 읽었다. 그 앞머리에 실린 내용이다. 

“스님 임종게(臨終偈)를 남기시지요.”라고 하니, 법정스님 왈, 

“분별하지 마라. 내가 살아온 것이 그것이니라. 간다, 봐라”

잠시 이형기의 시 ‘낙화’를 생각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완전한 자포자기, 단순성, 창조적인 아름다움

떠날 수 있는 마음은 ‘완전한 포기’를 말한다. ‘완전한 자포자기’, ‘기꺼이 단념하는 마음’이다. 법정스님은 말한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포기가 아니다”라고. 즉 “포기란 보다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기꺼이 단념하는, 구도자에 의해서 수행되는 가장 현명한 길이다. 그것은 영원한 기쁨을 위해 덧없는 감각적 쾌락을 포기하는 것이다.” 

결국은 ‘완전한 포기’로 가야한다. 다 내려놓는 것, 그 ‘단순성’에서 내면의 아름다움, 창조적인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지니기 위해서는 완전한 포기가 있어야 한다. 무엇에도 잡히지 않고 아무 부담이나 무슨 방어 또는 저항이 없는 감정. 소박함이 깃든 포기에서 나온 단순성이 창조적인 아름다움을 가져온다.”   

천지자연과 하나 되는 마음은, ‘소유적 삶’에서 ‘존재적 삶’으로의 이동이다. 무심에서, 무심결에서, 무관심한 관조에서 세상을 새로 바라보고 만나는 일이다. “완전한 자포자기와 함께 나무나 별, 또는 반짝이는 강물을 보는 마음만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며, 그리고 ‘우리가 정말 보고 있을 때 우리는 사랑의 상태에 있다’”는 스님의 말처럼, 온전한 존재적 삶은, ‘세상을 여읜 마음’이다. ‘존재’=‘있는 그 자체’들과 하나가 되는 것, 존재와 마주하는 것, 존재와의 사랑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은, 바로 죽음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는 것이다. ‘영원의 관점’에 서 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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