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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범주와 성폭력
학문의 범주와 성폭력
  • 교수신문
  • 승인 2001.03.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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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07 22:07:25

‘당연과 물론의 세계’에 대한 거부와 저항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존재하지만 이름이 없던 것에 이름을 부여해 가는 과정은 일상의 삶과 개인의 실존과 연결되기 때문에 간단하지 않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된 행위에 가해자라는 용어가 붙고 폭력이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하자 상당한 논란이 야기되었고, 약 10년 정도의 시간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의 성폭력은 현재 이 시점에서는 논쟁의 중심에 있게 되었다.

성폭력특별법과 두 차례의 개정, 그리고 성희롱방지법 등 법적인 성과를 얻게 되었지만, 일상에서는 시차가 있게 마련이어서 최근에 와서야 곳곳에서 성폭력, 성희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군대, 학교, 정부기관, 시민 노동운동단체 등 사회의 모든 장에서 성폭력 사건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성폭력이 폭력과 권력(권위)의 문제라는 점에 상당수가 동의하고, 피해자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도 점차 인식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인지도는 여전히 낮은 편이다.

그 일례로 며칠전 ‘희롱남녀’라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성희롱의 개념을 남녀가 서로에게 갖는 관심과 혼동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성희롱에 대한 개념조차 정리되어 있지 않은 그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성 인지도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낮은 인지도는 학계의 논의 방식과도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인터넷 상에서는 성폭력을 가시화하는 저항의 몸짓들에 대해 상당한 반동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지만, 소수의 여성주의 연구자들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학계와 지식인들은 성폭력문제를 지식과 학문의 내용으로 제대로 부각시키지 않고 있다. 성희롱이나 성폭력같은 문제는 진지한 학술적인 내용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은 아닐까?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이 문제는 사이버 성폭력의 범주까지 확대되어 논의되고 있지만 지식사회 혹은 교수사회는 이 문제를 여전히 소수의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의 몫으로 간주하고 깊이 있는 학문적 성찰의 내용으로 부각시키지 않고 있다. 이는 학문의 범주화가 아직도 남성중심적임을 반증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최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사는 ‘나눔의 집’ 대표로 일해 온 배영철(혜진스님)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성폭력에 대한 인식과 접근에 문제가 있음을 보게 된다. 배영철의 양심고백기자회견을 둘러싼 문제의 진행과정과 그 이전의 ‘1백인위원회’에 대한 일부 네티즌들의 비난을 보면서 이 문제를 놓고 여러 가지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함을 느낀다. 절차와 방식에 대한 논의와 조사위원회의 구성문제 등 다양한 논의들을 통해 성폭력에 대한 논의를 진일보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성폭력을 둘러싼 문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성폭력에 관심을 기울여온 여성주의자들의 목소리를 새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일상적 권력과 권위에 대한 정의와 폭력에 대한 정의 그리고 자칫 모호해 질 수 있는 성관계와 성폭력의 경계선에 대한 인식과 피해자의 자기결정권, 현재의 성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성문화, 남성다움에 대한 인식, 여성과 남성의 성적 욕망의 사회적 형성과정에 대한 분석 등 다양한 지점들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라 여겨진다.

현실비판과 현실만들기가 지식사회의 몫이라면 성폭력에 대해 정색을 하고 정면으로 토론하는 장이 교수사회에서도 필요하며 중요한 학문의 영역으로 인식할 필요를 필자는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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