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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 8년만에 복간된 영화학술비평지 『영화언어』
흐름 : 8년만에 복간된 영화학술비평지 『영화언어』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3.08.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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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비평적 자의식, 삶의 언어를 맴돌다

"대중문화의 변기가 되어버린 어떤 한국영화들은 구멍이 막힐 정도로 이것저것 마구 집어삼킨 뒤 '엘리게이터'의 돌연변이 악어 같은 괴물을 길러내고 있다. 경박함을 유머로 착각하는 이 괴물들은 불쌍하지만 하수구에서 죽어야 한다. 어떤 한국영화들이여, 지금 죽어라."

복간된 계간 영화비평지 '영화언어'(소도출판사 刊)는 '8년만에 되돌아온' 목소리가 자못 비장하다. '한국영화는 지금'이라는 특집이 특히 그렇다. 이지훈은 '죽어라 한국영화'라고 환멸섞인 외침을 던진다.

이 외침은 최근 나온 한국 대중영화들이 유머의 법칙이나 관객의 상식적인 기대치에도 훨씬 못 미치는 몰상식한 대중적 코드를 찍어낸다는 의심으로 이어진다. 영화평론가의 정체성 위기를 다룬 문일평의 '영화평론의 죽음', 그리고 발견의 모험이 사라진 영화애호가들의 관람문화를 타박한 김봉석의 '시네필의 변명'도 처절하다.

이 처절한 인식은 비평가로서의 자의식에 대한 자기물음이 동어반복적으로 개입된 것처럼 보인다. 문일평은 이렇게 말한다. "이 시대의 평론가에게는 '전문성'이라는 갑옷이 없다. 지금 이 땅의 평론가가 대학교 정문을 나서는 순간, 두텁고 단단한 갑옷은 갑자기 녹이 슬고 부식돼버린다. 시대가 그것을 앗아가 버렸다."

대중이라는 동질의 집단이 암시적으로 주문하고 자본은 공산품을 찍어내듯이 고객중심주의 정책에 의해 친절한 상품을 내놓는 것이다. 자본과 대중의 직거래가 성사됐기 때문에 거간꾼이 쓸모 없어진 것이란 진단이다.

이건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대중 필자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평론가들이 '상아탑의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문 씨는 말한다. 사실 전략이기보다는 '먹물'들의 방어기제의 작동이 더 맞을 것이다. 대중과 섞여있으려니 불안하고, 전문가 목소리를 높이니 소외되는 구조적 딜레마가 요즘 평론가들이 처한 현실인 셈인데 뇌사상태에 빠진 평론가들이 자신들의 사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지적하는 순간 돌아온 이들 탕자의 자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비평가적 자의식은, 다양한 영화의 수입이 저지되는 현실 앞에서 또한번 고뇌한다. 이른바 상업영화가 주류를 위치를 차지하면서 이른바 예술영화, 리얼리즘 영화를 영화판에 발도 못 붙이게 하는 것이다. 한국영화와 헐리우드 영화를 제외한 다른 국가의 영화는 수입이 안되며, 심지어 수입되더라도 상영이 안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김봉석의 글이 이를 말해준다.

하지만 "대중들과 소통가능한 언어를 골라내는 일이 관건"이라는 문일평의 글이 영화언어의 메시지라면 이건 좀 허탈하다. 평론가들의 역할은 좋은 영화의 경계를 넓혀서 현재 한국영화계를 뒤덮고 있는 말도 안되는 3류 저급 코미디의 나쁜 숭고의 영향력을 줄여나가는 데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평론지로서 '영화언어'의 전략은 말이 안통하는 상업영화를 전문적인 언어로 비판하는 일이 아니라, 평론의 난해성을 훨씬 뛰어넘는 복잡한 삶의 영화들을 쉽고도 편안한 언어로 다뤄 평론 자체를 읽을만하게 하는 일이 아닐까. 편집장은 김영진, 편집위원에는 문재철, 김미현, 김성욱이 참여했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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