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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교육은 야만”…대학서열화와 입시는 철폐해야
“경쟁교육은 야만”…대학서열화와 입시는 철폐해야
  • 교수신문
  • 승인 2019.07.0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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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오늘, 대학을 다시 생각한다

 

암울한 군사 독재정권 치하였지만 8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대학은 있었다. 대학에 경찰과 정보기관원이 상주하며 감시하고 시위 학생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하고 붙잡아갔지만, 우리는 “대학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말에 그리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학이 ‘진리탐구의 실천 도량,’ ‘비판지성의 보루,’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지식과 진리의 생산과 소통의 장,’ ‘함께 진리를 탐구하고 공유하면서 서로 능력과 인간성을 증대하는 학문공동체’로서 구실을 조금이나마 행하였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밤을 하얗게 밝히며 진리를 탐구하고 이를 올곧은 목소리로 토해내었다. 학생들은 세상 전체를 삼킬 듯한 호기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식지 않은 열정을 동살이 희붐하도록 토론을 하는 것으로 다독거렸으며, 때로는 고문과 구속을 각오하고 허위에 맞서 싸웠다. 함께 어울려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서로 능력과 인성이 자라도록 도왔다. 대학본부가 정권과 재단에 휘둘렸지만, 그래도 교육기관으로서 품위는 유지하려 애썼다. 
이제 권력에 대한 비판이 자유로워졌음에도 대학은 없다. 이명박근혜 정권 동안 신자유주의의 유령에 포획되었고 이는 촛불정권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한 마디로 진리는 교환가치로 대체되고, 지성은 효율성 앞에 무너져 내렸다. 시장에 맞서는 진지여야 할 곳이 시장에 편입되었다. 물신을 퇴치하고 그에 오염되지 않는 진리와 가치를 지향해야 할 곳이 돈을 섬기는 신전으로, 자본이 요청하는 노예나 사냥개를 양성하는 기업연수원으로 전락하였다. 시장의 원리와 교육의 가치가 충돌하면 늘 전자가 승리한다. 대학의 목표는 백년지대계로서 교육이나 인재육성이 아니라 취업률, 연구업적, 대학평가, 학교발전기금의 제고다. 결국, 대학 교육 전체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관리 · 운영 시스템에 장악되고, 대학은 이데올로기 국가기구만이 아니라 자본 공리계의 구성 요소가 되었다. 
구성원 또한 변하였다. 교수들은 업적, 프로젝트, 승진에만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고 학문공동체, 연대, 대의, 사회정의에는 거의 눈을 돌리지 못한다. 교수들은 기업과 정부가 요구하는 맞춤식 교육서비스 상품과 논문상품을 양산하는 지식기사와 취업률을 높이는 전문 강사로 전락하였다. 학생들은 낭만, 열정, 지적 호기심을 억누른 채 새내기부터 취업공부에 매진한다. 진리에 충실한 이론 강의는 속속 폐강되어 멸종동물처럼 사라지고, 취업에 도움이 되거나 감각적 즐거움을 주는 강의에 몰린다. 학생회에도 별 관심이 없으며, 학생회는 학교당국이나 정부, 자본에 맞서서 자유, 정의, 진리를 구현하는 일은 거의 하지 못한다. 결국 학문공동체는 철저히 파괴되고 각자도생하느라 모두 바쁘다.   
이처럼 추락하였기에 이번 강사 대량해고처럼 반교육적 · 반민주적 · 비도덕적인 폭력이 버젓이 대학에서 자행될 수 있었다. 강사법만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과 학령인구 감소 등 급변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미래를 대비해야 하지만, 모든 대학이 천편일률적으로 가장 약자인 강사를 희생시키는 것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곳의 상상력과 지식이 구멍가게 수준이다. 약자들에 대한 구성원들의 태도가 그 집단의 도덕지표인데, 한국 대학은 심각한 도덕성의 빈곤 상태에 있다. 세계 100대 대학?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 가게보다 더 사람을 위하지 못하는 곳”이란 지적은 한국 대학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더 늦기 전에 처절하게 성찰하고 대안의 깃발을 올려야 한다. 
우리는 지금 문명의 전환기에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사회로 급격히 이행하고 있으며, 4차 산업혁명은 대격변을 야기할 것이다. 고령화 사회와 학령인구 감소도 작지만 변화 요인이다. 이런 흐름에서 대학의 이념과 기능, 교육의 형식과 내용 중 무엇을 어떻게 계승하고 무엇을 새롭게 정립할 것인가.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는 특이점은 30년이 넘지 않을 듯하다. AI 교수와 조교, 직원이 등장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도 유투브와 인터넷을 통하여 국내외 석학의 강의를  들을 수 있지만, 구글 번역 시스템은 10년 안에 언어장벽마저 없앨 것이다. 현재 120억 개의 사물이 연결되어 있음에도 이는 1%도 되지 않는데, 앞으로 사물인터넷은 지구상의 거의 모든 물류와 사람을 연결할 것이다. 초연결사회가 되면, 강의와 강의실, 논문, 보고서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연결될 것이다. 
대학은 수직적으로는 진리를 후세대로 전달하여 집단학습에 따른 문명의 발전을 도모하고, 수평적으로는 진리를 퍼트려 허위의 장막을 걷어내고 사회와 국가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한다. 모든 교육기관이 사람을 키우는 곳이지만, 대학은 사람을 키우는 사람을 키운다. 그렇기에 유럽 국가의 흥망은 대학의 그것과 정확히 비례한다. 현재든 4차 산업혁명 이후든, 시대를 뛰어넘어 대학이 추구해야 할 제1의 목표는 진리탐구의 실천 도량이다. 이것이 달성되려면 정부와 대학당국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과 시장주의 프레임부터 폐기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이후 순수한 인간, 사이보그, 인공지능 인간인 안드로이드가 공존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이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하고 진정한 자기실현이어야 할 노동이 소외의 양식이 되었다면, 4차 산업혁명 이후에는 인간은 도구의 노예가 되고 소외는 더욱 심화할 것이다. 아름다운 인간성을 구현하고 증대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성의 두 근간은 이성적 인식과 공감 · 연대다. 후자는 연구와 강의보다 사회적 관계에서 더 형성된다. 학생들은 또래들과 어울리고 협력하고 약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배려하고 연대하면서 좀더 인간적인 사람들로 변모한다. 앞으로 모든 강의를 온라인으로 듣는다 하더라도 오프라인 대학이 남아 있어야 하는 근본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면에서 공감과 협력에 바탕을 둔 학문공동체로서 대학을 시급히 복원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경쟁교육은 야만”이라는 아도르노의 말을 상기하고 경쟁과 효율성 위주의 모든 교육 행위와 교육과정부터 개혁해야 한다. 경쟁은 학생을 악마화하고 사회를 지옥으로 이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욱 더 독점과 불평등이 심화할 것이다. 인지과학 · 로봇공학 · 생명공학에 뛰어나거나 사물인터넷과 소프트웨어를 잘 구사하거나 로봇을 잘 다루고 소유하는 이들 0.01%가 나머지 99.99%를 지배할 것이다. 이에 맞서서 대학마저 민주주의, 정의, 평등, 나눔을 학습하는 장이 되지 못한다면 미래는 디스토피아가 확실하다. 지금 전체 예산중 4%의 재단 전입금을 납부하는 사학 재단이 90%가 넘는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몇몇 교수와 학생이 재단의 전횡에 맞서지만 십중팔구는 재단이 이기고 좌절과 상처만 남긴다. 교수, 강사, 직원, 학생, 재단이 동등한 권력을 가지고 서로 견제하는 동시에 논의하고 협력하며 상호 발전을 도모하는 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전환을 하려면, 정부부터 대학을 이데올로기 국가기구나 자본 공리계로 존속시키는 관습에서 탈피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대학서열화와 입시는 철폐해야 한다. 대학평준화 없이는 어떤 교육개혁도 미봉책으로 그친다. 필자가 오래 전부터 주장했듯, 부자감세 20조원을 이명박 정권 이전으로 되돌려 확보한 후, 지역의 산업과 문화를 연계하여 대학을 특성화하고 대폭적인 재정지원을 하면서 대학네트워크를 구성하면 이것이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아울러, 교육부를 해체하고 교육위원회로 개편하고 국가학문위원회를 설치하고 고등교육재정을 최소한 OECD 평균 수준만큼 대폭 확충하여 대학을 지원하고 사학을 공영화하되, 자율권은 보장해야 한다. 정치권은 대학이 진리탐구의 실천도량과 민주주의 학습의 장이 되도록 사학법을 개정해야 한다. 물론, 교수와 학생들도 내면화한 신자유주의의 탐욕을 일소하고 진리를 탐구하고 비판지성을 실천하며 약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성찰하지 못하는 과거는 미래가 된다. 실천하지 않는 지성은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앞으로 대학은 교수와 강사, 학생, 재단, 정부 사이의 권력의 크기와 지향점에 따라 요동칠 것이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돈 버는 데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진리탐구의 실천도량이나 비판지성의 보루로서 대학을 포기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대학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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