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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다원화 조류와 발맞추는 스코틀랜드인 이민사 연구
다문화, 다원화 조류와 발맞추는 스코틀랜드인 이민사 연구
  • 교수신문
  • 승인 2019.07.0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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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영국사 연구의 발자취_백파이프와 킬트 문화의 이민? : 스코틀랜드인 이민의 역사와 연구

I. 스코틀랜드인 이민의 역사  


20세기 초반까지 전 세계 지표의 1/5이 영제국의 영토였을 만큼 영국인들은 이민과 이주의 역사에서 큰 비중을 갖는다. 세계 도처에 정착해 영국의 영향력 확대에 기여한 ‘영국인’은 그러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종족의 혼합물이다. 흔히 ‘영국인’하면, 킬트(Kilt)를 입고 백파이프(Bagpipes)를 부는 영국인을 상상한다. 물론 이 특징과 부합되는 영국인은 스코틀랜드인이다. 스코틀랜드인은 17세기부터 노동자, 무역상 등으로 식민지 진출을 하였고 18세기에는 이미 다수의 식민지에 정착했을 정도로 영제국 이민사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인이나 잉글랜드인보다 스코틀랜드인 이민의 역사는 ‘영국인’을 상상시키는 대표성에 부합할 정도로 영국인 이민사에서 중심을 차지한다고 보기 어렵다. 최근에 스코틀랜드인 이민자들에 관한 더 많은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이유이다.


일반적으로 19세기 초까지 영국을 떠난 스코틀랜드인 이민자들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집단은 하일랜드인이다. 이들은 빈민이나 노동자 계급이 아니라 주로 임차인이나 농장 소유자와 같은 유산계급이었고 그에 딸린 부속 식솔들이 함께 이민에 동반되었다. 이들과 더불어 주로 임차업에 종사했던 ‘소 엘리트’ 로우랜드 지주들 또한 초기 이민의 확장을 이끌어간 주요 집단에 속한다. 특히 로우랜드인들은 서인도 상인 및 대지주 집단인 플랜테이션 소유자 또는 무역과 제조업, 통상 비즈니스 영역 등의 종사자로 영향력을 가졌다. 이후 대외적 식민지 확장과 산업혁명의 진행으로 인한 상업과 산업,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가 스코틀랜드인 이민자들의 특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로우랜드와 하일랜드 (Lowland-Highland Divide)
로우랜드와 하일랜드 (Lowland-Highland Divide)

산업혁명기 이후 영제국의 확장과 영국사회의 대내외적 변화는 목축경영뿐만 아니라 무역통상, 기술이 필요한 중공업 산업분야 등에 스코틀랜드인 이민자들이 집중되는 현상을 가져온다. 특히 중공업 산업분야에 종사했던 스코틀랜드인들은 선착장 노동자들, 수송체계와 선박, 철도엔진, 도로건설 등과 관련된 엔지니어처럼, 산업의 인프라 구조를 공급하는 영역이나 제국통상과 같이 영제국의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군사영역과 의약, 식물학, 항해 관련업과 같은 주요 전문영역에서도 스코틀랜드인들의 식민지 이민은 두드러진다. 실제로 19세기에 이르면 스코틀랜드인들은 군인과 정착민, 무역상인과 선원, 식물학자, 산림업자, 엔지니어, 선교사 및 교사, 대학설립자, 은행가, 법률가, 기업 창업자들로서 식민지에서 긍정적인 명성을 쌓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 같은 산업패턴 및 전문직종의 다변화는 스코틀랜드인 이민뿐만 아니라 식민지 이민자 유형의 다양성으로도 연결된다. 최근에 영제국 식민지 정착민들에 대한 연구들은 이러한 다양한 이민자들의 네트워크와 다문화적 관점에서 이민자들의 정체성을 고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동향은 영국인들의 이민사 연구에서 스코틀랜드인 이민자들의 문화 및 정체성 유지와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들에 주목하게 한다.


Ⅱ. 스코틀랜드인 이민의 성격과 네트워크 연구


다양한 이민자들이 형성하는 이민자 사회는 초기 단계일수록 이민자 사회의 네트워크 보호와 초국가적 친족관계 등의 네트워크가 중요해진다. 특히 식민지 정착 초기의 협소한 이민자 사회는 정착지에 대한 확고한 사회개념이 미흡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이민자들이 공유한 시공간의 네트워크 특성이 더욱 중요해 진다. 여기서 맥켄지(J. Mackenzie)와 디바인(T.M. Devine)의 『스코틀랜드와 영제국(Scotland and the British Empire)』(2011)이 주목하는 ‘위험’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두 학자는 스코틀랜드인들의 네트워크가 ‘상호적 가치’를 표시해 주는 일종의 장치로 정착 및 사업보조, 교육, 종교, 문화 유지와 육성을 위한 연결망이었음을 주목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초기 정착 시기의 네트워크 체제를 스코틀랜드인 이민의 독특한 성격으로 고착시키는 위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강조에 강조를 더하고 싶다. 스코틀랜드인 이민의 특수성이 영국인 나아가 백인으로 일반화되는 위험에 대해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네트워크 개별성의 특성에 대한 고려도 간과해서는 안 될 듯하다. 맥카시(A. McCarthy)외 8명의 학자가 출간한 『전지구적 씨족(A Global Clan: Scottish Migrant Networks and Identities Since the Eighteenth Century)』(2006)은 이 문제에 대해 기여도 있는 연구들을 수록하고 있다. 주로 개인 편지, 증언, 인터뷰, 회고록 등을 통해 이민자 ‘개인’의 입장과 일반 경험을 분석하는 연구들인데, 이민자들의 네트워크가 공동체의 기능과 영향력, 네트워크의 작동 방식, 그리고 규모 및 구성원의 성격 등에 따라 다르게 전개된다는 것을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정착민이 하나의 장소에만 정주’하는 것을 기초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개별 스코틀랜드 이민 네트워크가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의 다른 스코틀랜드인 네트워크와 연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스코틀랜드인들의 아시아와 미국정착 이민을 주 대상으로 한 거버(D. Gerber)의 「두 사람의 네트워크(A Network of Two: Personal Friendship and Scottish Identification in the Correspondence of Mary Ann Archibald and Margaret Woodrow, 1807-1840)」(2006)는 초기 식민지 정착 시기의 네트워크 체제가 지역적 특수성이나 개인 또는 집단적 특수성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여기서 거버는 상업이나 목초지 활동에 기반을 둔 남성적 네트워크와 식민지 전원에서의 삶과 주거 공간 유지를 담당하며 가정을 이끌어간 여성들의 네트워크 유대가 같을 수 없다는 주장을 한다. 그의 주장은 젠더에 따른 ‘수동성’과 ‘능동성’이란 기존 사회의 시각으로 정착 시기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비교의 블랙홀’을 주지시킨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씨족의 마지막』 (Thomas Faed) - 19세기에 떠난 2백만의 스코틀랜드인 이민자들을 묘사
『씨족의 마지막』 (Thomas Faed) - 19세기에 떠난 2백만의 스코틀랜드인 이민자들을 묘사

맥킬롭(A. Mackillop)은 「유럽인들, 브리튼인들, 스코틀랜드인들(Europeans, Britons, and Scots: Scottish Sojourning Networks and Identities in Asia, c.1700-1815)」(2006)에서 개인의 편지를 기초로 한 스코틀랜드인 이민자 네트워크를 분석하면서 기존 연구가 스코틀랜드인 이민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씨족적’이었다는 ‘잘못된 인상’을 제공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스코틀랜드인 이민자 네트워크는 잉글랜드나 웨일즈보다 강하고, 지역성과 친족적 동류의식이 국가나 민족의식보다 강한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하일랜드인이 로우랜드인보다 씨족성 및 파벌적 성향을 더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일부 식민지에서는 ‘스코틀랜드’라는 동질성에 의한 동류의식이 친족적 연대감과 거의 동등한 특성을 갖기도 한다. 혈연이나 가계, 출신, 인척과 같은 감각이 이민 초기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이민자 네트워크를 건축하는 데 있어 더 많은 중요성을 획득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식민지 정착에서 네트워크의 기능이나 경험이 정착 사회 및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주지시킨다.    

『뉴질랜드에 植民된 스코틀랜드인들』 (Elizabeth Walker C.) - 가족과 씨족단위로 이민을 간 스코틀랜드인들을 묘사
『뉴질랜드에 植民된 스코틀랜드인들』 (Elizabeth Walker C.) - 가족과 씨족단위로 이민을 간 스코틀랜드인들을 묘사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이민의 다양성이 더욱 확장된다. 그러므로 스코틀랜드의 ‘뿌리 깊은 사회적 힘’과 ‘사회경제적 변화’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인 이민의 다양성과 개별 네트워크의 경험 분석이 네트워크 연구에서 더욱 중요해 진다. 이로부터 스코틀랜드인의 공동체적 집단 경험의 일반화 문제와 네트워크들의 특수성을 사고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서신이나 회고록 등과 같은 기록이 작성자의 의도와 목적성뿐만 아니라 네트워크의 특성을 말하기도 한다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가족적 목적성, 사업적 목적성, 정부보고와 같은 공적 목적성 등이 바로 네트워크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레이(M. Gray)가 『스코틀랜드인들의 이민(Scottish Emigration: The Social Impact of Agrarian Change in the Rural Lowlands, 1775-1875)』(1973)에서 지적한 것처럼, 인구·사회구조적 변화뿐만 아니라 심리적 변화에 의한 추동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감을 자극하는 스코틀랜드인 이민자 네트워크의 피드백이 이민의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기에 그러하다. 다른 관점이지만, 역사에 나타나는 가시적 집단들의 네트워크만을 대상으로 설정하는 관행 또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프렌티스(M.D. Prentis)는 「스코틀랜드인 죄수들에 관해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What Do We Know about the Scottish Convicts?)」(2004)에서 이러한 관행이 가져올 수 있는 편협성을 지적한 바 있다. 죄수수송은 식민지에서 필요로 했던 일종의 노동자 이주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 속에서 비가시적이었던 스코틀랜드인 집단도 연구대상으로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이민사 연구가 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방향성은 바로 다양한 가능성의 고려에서 그 걸음을 옮겨가야 한다.


Ⅲ. 스코틀랜드인 이민자의 정체성과 문화 연구


스코틀랜드인 이민자 네트워크는 식민지의 많은 문화적 연합체와 연관성을 갖는다. 식민지에서 문화적 연합체는 타자에 대한 일종의 특정한 사회 방어를 창출하는 정체성 유지와 그것을 통한 스코틀랜드인의 존립 및 번성에 있어 중요한 장치였다. 브라이튼바흐(E. Breitenbach)의 「스코틀랜드인들의 교회와 미션(Scots Churches and Missions)」(2011)과 크레이그(C. Craig)의 「지성인들의 제국(Empire of the Intellect: The Scottish Enlightenment and Scotland’s Intellectual Migrants)」(2011)은 이 문제를 사고하게 하는 중요한 연구들이다.


브라이튼바흐는 선교와 제국주의 및 자본주의가 결부된 제국주의 확장이란 점에서 스코틀랜드인들의 장로교 교회활동을 주목한다. 특히 “근면, 진지한 삶, 상업적이면서 전문적인 성공” 등, 식민지에서 장로교회 네트워크가 추구한 바와 제국 식민지 교육기관 발전에의 기여도를 관찰하고 있다. 의학용품의 제공, 훈련기관을 통한 기술 및 과학적 방법의 전수, 식민지의 물리적 기반시설 발전과 다양한 경제활동, 양육 증진 등에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화제국주의의 일환일 수 있다는 논쟁을 피할 수는 없으나, 식민지에서 장로교회 활동이 남긴 저명한 교육기관들, 선교활동을 통한 국제 네트워크가 남긴 유산은 무시할 수 없다. 교회활동을 통해 스코틀랜드인들이 부가한 “교육”의 가치는 새로운 땅에서 본국의 정체성 및 자신들의 존재성을 형성하고 구체화하기 위해 수행한 역할로 대변된다. 특히 스코틀랜드인 장로교도들의 교육중심 선교활동은 종교 및 교육문화의 확장을 통한 문화정체성 형성의 도모, 결과적으로 스코틀랜드 문화정체성으로서의 ‘교육문화’를 확인하도록 한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인물들』 (Brainy Blether) - 사교계 인물 Alison Rutherford, 시인 Robert Burns, 경제학자 Adam Smith, 지질학자 James Hutton, 철학자 David Hume, 건축가 Robert Adam, 화학자 Joseph Black, 식물학자 John Hope, 역사가 Lord Hailes, 건축가 James Craig, 의사 William Cullen 등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인물들』 (Brainy Blether) - 사교계 인물 Alison Rutherford, 시인 Robert Burns, 경제학자 Adam Smith, 지질학자 James Hutton, 철학자 David Hume, 건축가 Robert Adam, 화학자 Joseph Black, 식물학자 John Hope, 역사가 Lord Hailes, 건축가 James Craig, 의사 William Cullen 등

크레이그의 『지성인들의 제국』은 스코틀랜드 문화의 확산이 이민자들에 의한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스코틀랜드인 이민자들의 교육수준과 지적 특성, 영제국 식민지 건설에서의 역할에 대한 일반 역사서술의 증거를 제시한다. 해외에 설립된 병원, 의과대학, 박물관 등, 다양한 교육기관의 설립과 과학, 심리, 정치경제, 사회학, 문학과 비평, 인류학, 식물학 등의 분야에서 이룬 스코틀랜드 계몽 사상가들의 업적들이 스코틀랜드인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스코틀랜드 지성인들의 활동과 차후의 세대에 미친 영향력이 식민지에서 스코틀랜드의 뿌리와 특징을 보여주는 예로서 궁극적으로는 스코틀랜드를 문화적 ‘고국’으로서 생각하게 하는 특징적인 문화형성에 대한 식견을 제공해 준다.


이 같은 연구들에서 새로운 사회 리더를 양성하는 스코틀랜드의 교육중심 철학과 발달된 대학교육이 스코틀랜드인 이민자들로 하여금 좋은 직장을 확보하고 식민지 기층문화 프로젝트 건설에서 기여도를 갖도록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해외로 진출해 다수의 전문직을 지배했던 스코틀랜드 출신 거대 인물들의 목록은 그들이 스코틀랜드의 문화업적을 대표함과 동시에 스코틀랜드 문화의 파급력이 그들을 통해 더욱 극대화되었다는 사실을 관찰하게 한다.    

스코틀랜드의 노동자들이 착용했던 모자 (The Scots Blue Bonnet) - 도처에 있는 스코틀랜드인을 상징
스코틀랜드의 노동자들이 착용했던 모자 (The Scots Blue Bonnet) - 도처에 있는 스코틀랜드인을 상징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들은 ‘동화’ 또는 ‘다문화주의의 뿌리’라는 시각에서 식민지에서 스코틀랜드인들이 만들어간 문화형성 및 유지를 조명하고 있다. 타탄 민속의상이나 백파이프를 비롯한 음악과 춤처럼, 스코틀랜드의 전통적 낭만성과 관련된 통합문화의 존속 여부만을 확인하는 시각에서 탈피해야 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동향은 식민지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형성해간 스코틀랜드인들의 이민자 문화, 타자들과의 식민지 삶에서의 동화문제 및 정체성 방어문제 등과 더불어 정착기 스코틀랜드인의 삶의 패턴도 연구되어야 함을 제시한다. 이는 현재의 영제국 이민사 연구가 재고해야할 분야들이기도 하다.


Ⅳ. 스코틀랜드인 이민사 연구 앞에 놓인 과제


기존의 스코틀랜드인들의 이민에 관한 대부분의 역사연구는 스코틀랜드인들의 이민이 다른 영국 내 종족들보다 독특한 재능을 가진 이민자들의 디아스포라라는 현상을 지지해 왔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볼 때 그들의 기여도가 제국 건설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의 ’지적 전문성‘이라는 차별성의 강조는 오히려 ’어떻게 그것이 만들어지고 파생될 수 있었는지’, ‘어떻게 식민지에서 스코틀랜드인의 정체성을 구성했는지’ 질문하는 연구 또한 필요함을 제시해 준다. 특히 식민지에서 스코틀랜드인 이민자들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는 타자와 자신을 구별하는 특정한 소속감이란 측면 또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인 정착민들을 둘러쌌던 타자들에 대한 연구도 병행되어야 한다. 정착 시기의 환경과 원주민, 아시아이민자, 타유럽이민자, 잉글랜드인, 아일랜드인과 웨일즈인 등이 식민지 정복사 역사서술의 전환과 함께 연구대상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인물들』 (Brainy Blether)- 사교계 인물 Alison Rutherford, 시인 Robert Burns, 경제학자 Adam Smith, 지질학자 James Hutton, 철학자 David Hume, 건축가 Robert Adam, 화학자 Joseph Black, 식물학자 John Hope, 역사가 Lord Hailes, 건축가 James Craig, 의사 William Cullen 등
에든버러에 있는 미국 남북전쟁에 참가했던 스코틀랜드인들의 기념비 (R. Tait McKenzie)

네트워크 연구에서도 스코틀랜드인들이 형성한 조직들과 단체, 협회 운영과 구성 및 활동의 정량적 연구와 함께 식민지 독립 후 형성된 국가에 이 같은 단체들이 어떠한 영향력을 갖는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스코틀랜드인들의 네트워크와 국가형성의 연결고리에 대한 연구는 ‘포스트식민’ 조류에 부응하는 영제국과 영국성으로부터의 ‘탈식민’ 연구가 가야할 방향성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다시금 다원주의 및 다문화 조류에서 스코틀랜드인 이민 나아가 이민-이주사가 재조명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따라서 스코틀랜드인의 이민에 대한 역사연구는 이제 스코틀랜드인과 경제, 교육, 학문, 종교 등의 하위체들을 주목하거나 영제국에 결속된 거대 제국사에 기대는 것에서 나아가 국가 관계 속에서 스코틀랜드인 이민자를 의미평가 대상으로 하는 연구로 발돋움해야 한다고 본다. 국가의 총체적 정체성 사고와 현재의 통합문화에서 스코틀랜드성을 재정립하는 것이 자기 주체성과 존재성으로 긍정적인 재발견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들면서 탈식민의 관점에서 민족주의가 다시 조명되며 다문화주의와 다원적 사회의 이상으로 공동체 개념이 강조되고 각각의 특성을 유지하며 공동체를 이루는 ‘통합’의 관점이 부상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각도의 탐구로 연구 패러다임의 변화를 만드는 스코틀랜드 이민사 연구의 미래는 이주와 교류로 글로벌한 세계를 만들고 있는 현대인들의 이주 역사가 가질 무지갯빛 미래이기도 할 것이다.

 


이민경 가톨릭 관동대학교 Verum 교양학부 교수

인디애나 대학 ·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석사, 서강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영제국사, 이주문화사, 젠더사에 관심이 많다. 대표 연구로 「빅토리아 시대 이민을 통한 ‘아동구원 증후군’의 기원」, 「19세기 영국에 온 '1848' 프랑스혁명: 낭만주의적 Drama giocoso?」,  「오스트레일리아 여성참정권 운동과 여성운동의 정치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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