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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야스퍼스 ‘철학’ 1~3권 전권 우리말로 완역 출간
칼 야스퍼스 ‘철학’ 1~3권 전권 우리말로 완역 출간
  • 교수신문
  • 승인 2019.06.2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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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퍼스 ‘철학’ 전권완역에 부쳐
박병준교수 /서강대학교 국제인문학부

 

철학의 본질적이며 근본 물음이라 할 수 있는 세계와 인간, 초월자를 그의 실존철학의 관점에서 고유하게 규명

인간의 이성의 ‘초월적’ 성격에 초점을 맞춰 우리에게 ‘파편’처럼, ‘암호’처럼 다가오는 초월자의 세계를 조명

완역을 학수고대했던 만큼,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신적 목마름을 해소해 주는 영적 단비가 되었으면


현대의 글로벌 사회 안에서 한 나라의 인문학적 역량을 가름하는 기준은 훌륭한 고전 서적의 번역 수준에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싶다. 어려운 외국어 서적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일은 전공 분야의 철학자뿐만 아니라 학문후속세대의 육성과 인문학의 대중화에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권의 좋은 번역서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에 비견할 수 있다. 그동안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뜻있는 학자들은 개인의 연구 업적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꾸준히 동서 고전을 번역해 오고 있다.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이 있다. 번역은 단순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기계적인 작업이 결코 아니다. 전체 문맥을 파악하고, 가능한 한 편견과 곡해 없이 원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여 모국어로 옮겨 전달하는 해석의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언어 자체가 가진 제한과 특수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오역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정확히 1대1의 객관적인 번역은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번역의 작업을 새로운 시작이요 출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번역은 어렵고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므로 번역하는 연구자들에게 비난보다는 우선 격려를 보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사설(辭說)이 길어진 이유는 오늘 지면을 통해 소개할 야스퍼스의 '철학'이 번역하기에 결코 쉬운 책이 아니며, 그래서 그동안 번역하느라 고생했을 번역자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다. 당대의 철학자인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1927)과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다고 평가되는 대작인 야스퍼스의 '철학'(1931)은 그 사상의 깊이와 글의 난삽함으로 인해 사실 전공자에게도 쉽게 읽히지 않는 까다로운 책이다.

이런 이유로 야스퍼스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이 책은 어렵게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독일어 원본 독해의 이런 어려움을 우리말 번역서가 조금이나마 경감시켜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야스퍼스의 '철학'이 그가 정신의학자로서 삶을 중단하고, 철학자로서 새로운 삶의 길을 선택한 후, 수년의 연구 작업을 통해 자기 사상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그의 철학 사상이 집약된 대표적 저술인 만큼 우리말 번역은 학술적으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하겠다.

평소 야스퍼스 철학에 관심을 두고,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그의 철학을 가르치면서 하루빨리 번역서가 나오길 학수고대했던 만큼 이렇게 '철학'이 한글로 완역 출간되어 너무도 기쁘다.

이 책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진오, 최양석 선생님이 '철학 1권: 철학적 세계정위', 신옥희, 홍경자, 박은미 선생님이 '철학 2권: 실존조명', 정영도 선생님이 '철학 3권: 형이상학?'을 심혈을 기울여 번역하였다. 이 분들은 한국야스퍼스학회를 이끌어가고 계시는 분들로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그런 만큼 야스퍼스 사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 속에서 전체 텍스트의 문맥을 살피고 파악하면서 야스퍼스의 난해한 개념들을 우리말로 잘 번역했으리라 본다.

야스퍼스의 '철학' 1, 2, 3권은 각각의 부제가 암시하듯이 철학의 본질적이며 근본 물음이요 가히 전체 물음이라 할 수 있는 세계와 인간, 그리고 초월자를 그의 실존철학의 관점에서 고유하게 규명하고 있다.

 ‘철학적 세계정위’가 부제로 붙여진 『철학』 1권에서 야스퍼스는 기존의 과학주의적이며 자연주의적인 세계인식의 태도를 비판하고, 철학의 본질 물음과 함께 세계정위 속에 있는 인간의 인식 한계를 규정짓는다. 사실 유한한 인간의 인식 활동은 절대적일 수 없으며, 끊임없는 초월의 행위 속에서 밝혀진다고 할 수 있다.

 ‘실존조명’이 부제로 붙여진 ??철학?? 2권은 야스퍼스의 실존철학의 핵심을 엿볼 수 있는 주요 부분이다. 2권에서 야스퍼스는 앞서 1919년에 출간된 『세계관의 심리학』에서 보여줬던 심리주의적 경향을 벗어던지고 심연과도 같은 인간 실존의 문제를 ‘조명’의 차원에서 해명하고 있다.

야스퍼스에 의하면 인간 실존은 세계 속에 현전하는 사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서 결코 과학주의가 표방하는 설명이나 분석의 방법으로 파악되거나 이해될 수 없으며, 오로지 전체로부터 밝혀져 오는 ‘실존조명’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실존철학에서 자주 접하는 핵심적인 개념들, 즉 실존, 자유, 근본상황, 한계상황, 양심, 죽음, 자살, 실존적 소통, 죄책, 고통, 의지, 사랑, 투쟁 등 삶과 밀접한 개념들을 접하게 된다.

 ‘형이상학’이라는 부제가 붙여진 '철학' 3권은 거기로부터 세계와 인간이 이해되는 초월자의 개념을 다룸으로써 이 방대한 저서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근대 이후 철학적 사유의 가장 큰 특성을 제시해 보라고 한다면 ‘탈형이상학’ 혹은 ‘반형이상학’의 경향일 것이다.

그러나 야스퍼스는 이런 경향에 맞서 새로운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물론 이는 전통형이상학의 재건과는 무관하다. 다만 인간의 이성의 ‘초월적’ 성격에 - 칸트의 ‘초월론적’ 의미가 결코 아니다. - 초점을 맞춰 우리에게 ‘파편’처럼, ‘암호’처럼 다가오는 초월자의 세계를 조명한다. 세계와 인간 그리고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실마리는 바로 이 초월자의 암호해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스퍼스의 주 저서인 '철학'이 가진 고유한 의미를 짚어보고, 그 맛을 느끼고 음미하는 일은 오로지 독자 개개인의 고유한 몫인 만큼 여기서 더 자세한 설명과 소개는 필요 없을 듯싶다. 다만 오랜 시간 번역되기를 학수고대했던 만큼, 이 번역서가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신적 목마름을 해소해 주는 영적 단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야스퍼스의 주옥같은 또 다른 저서들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후학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이다.

글쓴이 박병준

서강대학교 국제인문학부 철학전공 교수 / 한국철학상담치료학회장/한국해석학회장 / 한국가톨릭철학회장 / 서강대 교목처장 및 철학연구소장 역임. 'Anthropologie und Ontologie', '철학과 상담 2: 죽음 그리고 자살'(공저), '고령화 사회를 위한 행복의 인문: 노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등의 책을 썼으며 '철학적인간학', '해석학', '존재론', '철학상담' 등 관련 논문 다수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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