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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 : 일본 국립대 법인화, 어떻게 달라지나
해외동향 : 일본 국립대 법인화, 어떻게 달라지나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3.07.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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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장 중심 '책임' 경영…공공성 상실 우려

지난 9일 일본은 학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다는 내용의 '국립대학법인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일본의 국립대는 내년 4월 1일부터, 국가 행정조직의 성격에서 벗어나 독립법인형태로 운영되게 됐다.

등록금 책정, 예산 편성 및 조직 구성에 있어 정부의 규제가 최소화되고, 대학 운영에 대한 독립 법인의 자율과 책임이 강화된다는 점에서 크게 달라진다. 정부가 대학운영의 기본 예산을 출자하는 것은 변함 없지만, 그 예산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평가에 따라 지원을 하되, 운용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대학의 의사결정 구조와 지배구조의 측면이다. 기존의 국립대가 학부의 교수회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이뤄졌다면, 법인화된 국립대는 학장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게 된다. 국립대법인화가 일본 대학의 특징으로 불리던 '대학 자치'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라고 얘기되는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 연유한다.

그동안 일본 국립대의 학부 교수회는 교원인사를 비롯해 학부 예산 운용, 교육연구 등 모든 부분을 결정해왔고, 대학은 학부들의 연합체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학부교수회의 학부관리운영에 대해 정부 등의 외부 개입은 철저히 배제됐다. 심지어 학장과 평의회의 간섭도 받지 않았다. 우리나라 대학의 교수회가 교원의 인사, 예산운용, 학칙 개정 등에 대해 의결권 없이 심의만 할 수 있고, 그 결정권이 학장에게 주어져 있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개정된 법률에 따르면, 일본 대학은 학장, 학장을 좌장으로 하는 보직자 중심의 간부회의 '役員會', 외부인사가 참여하여 학내 예산과 경영을 심의하는 '경영협의회', 교육·연구 분야를 심의하는 '연구교육평의회'로 구성될 예정이다. 평교수들의 경우, 교육·연구 분야 등에 대해서만 심의할 수 있는 등 대학 운영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대폭 축소됐다. 반면 대학의 집행권이 학장과 학장이 지명하는 부학장 등이 중심이 된 '役員會'에 의해 주도되도록 돼 있어 종래보다 학장의 권한이 대폭 강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의 국립대 독립법인화가 향후 일본대학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지는 아직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대학에 자율성을 주되 경영에 대한 책임을 대학이 지도록 하는 것이 대학 발전의 자극이 될 수는 있지만, 교육의 공공성의 측면에서 정부가 책임회피하는 방편이 되는 것은 아니냐는 비판도 뒤따르고 있다. 국립대에 대한 예산지원이 점차 축소돼 대학이 시장논리와 기업중심주의에 매몰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교직원들이 공무원의 지위를 상실하는 것에서부터 파생되는 신분 불안과 교육·연구부문에 대한 문부과학성의 간섭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교수 등으로 구성돼 활동하고 있는 '국립대학법인화저지전국네크워크'는 지난 2001년부터 "국립대학법인의 중기계획에 대해 문부과학대신이 인가해야된다는 '국립대학법인법안 제 30조'가 교육·연구 전체를 중앙정부가 관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반발해왔다. 평가에 따른 지원책으로 대학들이 문부과학성의 간접적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최악의 경우 악명높은 교과서 검정이 대학 교과서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문부과학성은 교육·연구의 부분에 있어서는 대학 학부의 자율성을 존중해왔다.

이번에 통과된 일본의 '국립대법인법안'이 '잃어버린 십년'을 되찾고자 하는 일본대학에 활력을 주게 될지, 자유로운 사고와 학문의 자유를 통제하는 일본 우경화의 법적 토대가 될지 등 예의 주의할 필요가 있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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