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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이야기: Don't vote for Pyeongchang
생각하는 이야기: Don't vote for Pyeongchang
  • 김상기
  • 승인 2003.07.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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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많은데 실속없는 국제대회 유치에 애태우다니...

최근 체코 프라하에서 있었던 국제올림픽위원회 제 115차 총회를 전후해 우리나라에선 요상한 영어문장 하나가 전국 신문 및 텔레비전 화면에 야단스럽게 오르내리고 있다. "돈 보트 포 평창"(평창에 찍지 마라)이란 어구가 바로 그것이다. 그간 정부관련기관, 강원도, 평창군은 물론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와 국회유치특위, 그리고 국내 각급 체육단체가 2010년 동계오륜대회를 유치키 위해 애써온 점은 나라사람 모두가 익히 알고 있던 터다.

그러나 지난 올림픽총회에서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캐나다의 벤쿠버로 결정되고 김운용위원이 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후 한국언론과 시정여론은 온갖 비난과 반발 그리고 시위로 얼룩지고 있다. 그간 맹활약을 펼쳐왔던 관련인사들이 실의와 좌절에 빠져든 나머지 평창유치 실패를 놓고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이 보여주었던 행보와 석연찮은 해명 등에 의문과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다. 지난 7월 2일 프라하의 회의장엔 국무총리, 문화관광부장관, 공로명 유치위원장 등 삼십여명이 넘는 각계인사가 마치 국운을 건 듯 상기된 얼굴로 회의장 안팎을 서성대는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뚜렷이 명멸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패와 혼란과 비난이 봇물 터지듯 튀어나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직접관련이 있는 강원도민과 평창군민이 장맛비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온갖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김운용위원의 모든 공직사퇴와 사과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분통을 터트리는 모습을 보는 일이다. 적어도 언론에 비친 국회유치특위의 진상조사결과는 김운용위원이 평창유치에 소극적이었거나 아니면 아예 훼방까지 놓았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즉, 국제올림픽위원들의 속내를 잘 아는 김운용위원이 시설의 불비를 들먹이며 "돈 보트 포 평창"이란 야누스적인 발언을 하고 다녔을 거라는 심정적 토로이다.

필자는 그 진위야 어떠하던 간에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을 맡은이래 국제올림픽위원 십팔년의 관록을 가진 김운용위원이 이번 유치활동과정에서 보여준 석연찮은 행태는 김위원의 권위와 명예는 물론 한국의 대외이미지조차 먹칠하는 사태가 되고 말았다고 생각한다. 국회유치특위는 정략적 차원이 아니라 한 나라의 대외이미지가 더 이상 더럽혀지지 않도록 공정한 조사결과에 따라 김운용위원의 법적,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필자는 이즈음해서 그간 우리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벌여온 수많은 국제경기대회 유치활동이 과연 우리 현실에 걸맞은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무릇 한 나라의 국위선양이나 위상제고는 스포츠뿐만 아니라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힘의 강화와 현시로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개발독재 초동단계이래 이 나라는 사회밑바닥의 튼튼한 시민적 토대와 밑으로부터의 열정적이고 참여적인 경제개발, 국제경기대회 유치 및 공연문화의 대중화가 아니라 국가지배층의 몇몇 사람이 주도하고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관행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는데 있다.
우리나라 국민 중 과연 몇 사람이나 무슨무슨 국제경기대회, 엑스포, 문화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관심을 표명하는가. 독재정권시절 정통성 없는 정부는 국민의 불만 불평을 잠재우고 사람들의 비판의식을 흩뜨려 놓기 위해 스포츠강국의 기치를 내걸고 국민들을 호도 해오지 않았던가. 과연 88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 등 굵직굵직한 세계적 스포츠행사 개최가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얼마나 제고시켰으며 온세계 인류의 뇌리에 깊은 감명을 주었을까.

이제 필자는 이번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실패에 대한 책임문제를 탓하기 전에 한번쯤 우리사회 지도층의 잘못된 사고와 허장성세를 깊이 생각하고 성찰할 단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대한민국의 현실적 국력이 모든 국제경기대회를 유치하고 개최할 여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사회는 당장 해결해야할 사회경제적 문제가 산적해 있다. 크게는 대외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사회간접자본(철도 항만 복합화물터미널 등 물류시설)의 확충 및 개선, 첨단제조업의 시설근대화, 고용창출 및 국민후생복지(교육 의료 주택 등) 향상을 위한 재정소요의 지속적 팽창과 국방예산 증대 등 사회경제적 투자압박에서부터 적게는 붕괴직전에 있는 농어업, 황폐화되어 가는 농어촌대책 및 연례행사처럼 되어 있는 홍수방제를 위한 예산 등 투자하고 써야할 곳이 태산처럼 가로놓여 있다. 이와 같이 당장 투입하고 집어넣어야 할 사회경제적 절박함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 나오는 현실에서 무슨 경기타령이나 하고 있을 계제가 아니지 않은가.

흔히 우리는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고 모든 국민이 비교적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북구주 삼국이나 화란, 덴마크, 스위스를 일컬어 참선진국이라고들 말한다. 그들 국가가 급박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뒤로한 채 온국가의 동력을 국제경기 유치에 쏟아 붓는 해괴한 모습을 본적이 없다.

우리는 아직도 해야할 일이 많고 가야할 길이 먼 나라이다. 진실로 2만달러 시대를 하루라도 빨리 달성할 의지가 있다면 어쩌면 허장성세에 가까울지도 모를 국제경기나 실속 없는 국제대회 유치는 당분간 유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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