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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4)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4)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04.09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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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부드럽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말을 세게 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 어휘에서는 주로 한자어인 강약(强弱)으로 표현한다. 우리나라 인문학 업종에서는 흔히 패널이라고 불리는 ‘논평’ 제도가 우리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강약의 문제는 학자들의 고민이 된다. 

패널은 서넛 발표문 전체에 대한 평가를 말하지만, 우리식 논평이란 한 발표문을 어떤 사람에게 온전히 맡기는 경우라서, 논평자가 발표자에게 좋던 싫던 집중포화를 할 수밖에 없다. 대강하면 성의 없이 보일 뿐만 아니라 논지를 나름대로 해석해주지 않아 좌중이 ‘뭔 소리인가’하고 불만을 갖게 되고, 그렇다고 너무 심하게 하면 ‘덕이 없다’는 둥 오히려 논평자가 공연히 공격을 받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 학계가 논평제도를 없애지 않는 것은 그래야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나만 하더라도 긴 글보다 짧은 논평문을 통해 발표의 요지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학회 늦게 도착한 경우는 일단 논평문부터 훑어보면 분위기 파악이 금세 되는 것이다. 

논평문과 관련해서는 재밌는 예를 들어보자. 

흔히 발표문을 빨리 달라고 하지만, 이건 그다지 실효성이 없다. 대체로 임박해서 작성하다보니 발표문은 진행지(프로시딩)에 실리지만 논평문이 별쇄로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미완성본이라도 좋으니 일단 쓴 데까지 달라는 것이 좋다. 그럼 그걸 기반으로 작성해놓고, 마지막 부분을 채워 넣으면 되기 때문이다. 

어떤 분이 인쇄마감시간 직전에 발표문을 줬는데 나도 거의 동시에 넘겨 별쇄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건 미리 받아놓은 글을 통해 대강의 방향을 잡아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 양반은 되미쳐 들어온 논평문에 놀라면서, 고마워서 그 동네의 족발을 산다고 했는데 아직 안 사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능력이 아니라 미리 준비한 것이었을 뿐이다. 

내 논평문은 대체로 1, 2, 3장으로 나뉜다. 첫째 장은 그 학문에 관한 개략이나 문제점들을 쓰고, 둘째 장은 발표문의 요약과 질의, 셋째 장은 나의 생각 등 마무리다. 따라서 첫째와 셋째는 일단 나의 몫이니 뼈대와 살을 채울 수 있는 것이고, 둘째는 발표문의 반쪽이라도 볼 수 있으면 발표자가 말하고자하는 요체와 그 문제점을 찾을 수 있으니, 논평문 작성의 시간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요약하면, 발표문이 오지 않으면 그 전에 논평문을 써놓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이다. 학계의 경향성이나 미해결점이 발표문이 오던 안 오던 쉽게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 탓 말고 내 탓부터 할 노릇이다. 

얼마 전 국제학회의 저녁자리에서 어떤 논평이 가십이 되어 어떤 노교수가 ‘친한 사람의 논평은 세게 해도 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러다가는 서로 안 보게 된다’고 조심스러움을 표했다. 나는 말했다. (논평할 때) ‘젊어서는 남이 못 알아들을까 봐 세게 말했는데, 이제는 남이 알아들을까 봐 살살 말한다’고. 좌중의 폭소가 터졌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말하는 것을 남이 알아챌까봐 겁난다. 일찍부터 그래왔지만 사소한 잘못은 다른 쪽지에 적어 건네주지, 결코 공식석상에서 말하지 않았다. 나는 이어 말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세게 말하던 살살 말하던,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듣고 알아듣지 못할 사람은 알아 듣지 못한다’고. 그렇게 한 번 더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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