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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마음으로 ‘한 사람’을 苦待한다
빚진 마음으로 ‘한 사람’을 苦待한다
  • 허진우 기자
  • 승인 2019.03.25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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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과 첫 만남 _ 조용래 광주대 기초교양학부 교수
▲ 조용래 교수가 새학기를 시작한 학생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 조용래 교수가 새학기를 시작한 학생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3월이다. 시샘하는 늦추위가 기웃거리지만 여기저기서 번져오는 봄꽃들의 기운을 막을 수는 없다. 새 봄, 새 학기, 새 학년 등으로 펼쳐지는 3월은 마치 종교 의식(儀式)처럼 초월적이다. 누구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올 봄 나는 21년 만에 대학 강단으로 돌아왔다. 1992년 유학에서 돌아와 6년 남짓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언론사의 전문기자로 전업했었다. 지난달 말 퇴직과 더불어 친정인 대학으로 바로 돌아오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도 놀라운 감사거리다. 그 과정에서 광주대학교와 한국연구재단에 빚진 바 크다.

빚진 마음은 그뿐이 아니다. 우선 고향에 대한 빚이다. 광주에서 나서 자라 고교 때까지 살았지만 지금까지 딱히 고향을 위해 뭔가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43년 만에 돌아와 고향의 대학에 속하게 된 것은 어쩌면 늦게나마 빚 갚음을 하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젊은이들이다. 개발연대를 거쳐 온 기성세대들은 취업 걱정 없이 부지런하게 달려가기만 하면 되는 세월을 살았다. 하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온갖 풍상에 노출돼 있다.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n포 세대’란 말로 상징되는 그들의 아픔은 기성세대가 만든 부적절한 사회질서도 한 원인일 것이다.

실제로 3주째 강의를 이어가면서 직접 접해 본 학생들의 모습은 많이 낯설었다. 분명 그들은 젊고 멋졌다. 얌전하기까지 했다. 다만 조금 꼬집어 말하자면 위축감이 엿보였다. 활기가 많이 없어진 느낌이다. 캠퍼스 한 가운데엔 ‘재미있는 캠퍼스’라고 쓴 플래카드가 크게 나붙어 있었지만 즐거운 표정의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그저 선입견 때문일까.

판단을 내리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 섣부르게 평가하기보다 차라리 어떤 것을 가르칠 것인가, 무엇으로 격려할 수 있을까를 골몰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그것이 고향의 젊은 후배들에게 마음의 빚을 갚는 길일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희망을 전하고 싶다. 사실 만사가 하나로만 귀결되는 법은 없다. 일에는 명암이 있고 긍정과 부정, 낙관과 비관이 뒤섞여 있기 마련이다. 이를 온전히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가르치는 이의 몫이다.

자본주의사회가 이해타산만으로 작동된다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애덤 스미스의 지적대로 인간에게는 ‘이기심’ 말고도 ‘공감(sympathy)'이 있다. 이기심과 더불어 공감이라는 배려심이 작동되는 사회에 대해 더 많이 거론해야 맞다. 비록 오늘날 돈이 신처럼 군림하는 물신화(物神化) 경향이 만연해 있어도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는 얘기도 풀어내야 할 터다.

기원전 6세기 말 남유대 왕국이 망해갈 때 얘기다. 왕국의 존망과 관련해 예언(預言)이 선포된다.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아, 예루살렘의 모든 거리를 두루 돌아다니며, 둘러보고 찾아보아라. 예루살렘의 모든 광장을 샅샅이 뒤져 보아라. 너희가 그 곳에서 바르게 일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라도 찾는다면 내가 이 도성을 용서하겠다.”(예레미야 5:1)

요약하자면 바르게 살려는 ‘한 사람’, 바로 그 ‘한 사람’이 없어서 왕국이 백척간두에 섰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그렇듯 중요하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을 키우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이제 빚 갚기를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한 사람’을 배출하는 것으로 빚 갚음을 가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의 비극은 ‘좋은 학교-좋은 직장’으로 이어지는 유일 커리어패스에 모두가 목을 매고 있다는 데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그 ‘한 사람’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먼저 유일 커리어패스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올 봄을 그 해방의 물꼬를 터가는 출발점으로 맞이하자고 다짐해본다. 갈 길은 멀고 몸은 굼뜨고 더디지만 어떻든 빚진 마음으로 ‘한 사람’을 고대해 봐야겠다. 봄볕이 참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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