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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이야기: 대학 총장선거의 심리수학
생각하는 이야기: 대학 총장선거의 심리수학
  • 최병두 대구대
  • 승인 2003.07.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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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략적 애매함' 넘실대는 또 다른 선거판

누군가가 나에게 영어단어 외우기와 숫자 셈하기 가운데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별로 망설임 없이 후자를 좋아한다고 할 것이다. 사실 둘 다 참 따분한 일이지만, 그래도 숫자 셈하기에는 어떤 논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수학의 묘미는 기계적 정확성에 있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사물들을 보고 그 수를 추정하여 맞추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한번은 외국의 어느 야구장 관중석에서 6만여 개의 좌석수를 어림잡은 것이 실제 확인한 결과와 거의 정확히 일치하여 같이 간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6만여 개의 좌석을 다 센 것이 아니라 부분별로 계산하여 곱한 수였다.

그러나 숫자 셈하기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기계적 정확성이 통하지 않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선거는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선거전에서 숫자 계산은 매우 단순하다. 투표자의 계산은 유한 자연수만을 포함하고, 투표 행위는 하나의 선택만으로 이루어지며, 결과는 덧셈만 하면 되고, 한 표라도 더 많은 사람이 당선된다. 극히 초보적인 산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선거전의 숫자 계산은 미적분을 훨씬 능가하거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고등수학이라고 할 수 있다. 또는 선거전의 심리수학은 이러한 논리가 통하지 않는 무한한 심리적 분열 속에서 이루어지는 숫자 셈하기인가 보다.

"이제 동그라미로 해도 되지요"

대학의 총장선거는 특히 그러하다. 총장 선거에 참여하는 교수들의 수는 대체로 몇 백명에서 아주 많으면 천명을 조금 넘는 정도이다. 선거전에서 이 숫자는 매우 어중간한 수이다. 후보들이 개별 교수들과 긴밀한 대면적 접촉을 통해 개인적 친분을 가지기에는 다소 많은 수이고, 그냥 인사만 하고 선거공약이나 후보토론회 등의 기능적 관계로 득표운동을 하기에는 다소 적은 수이다. 이런 이유로 선거전 양상은 매우 복잡한 사람들 간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심리수학으로 빠져들고, 그 식을 풀어 가는 과정과 답은 예상하기 무척 어렵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후보들뿐만 아니라 교수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로, 교수들의 숫자가 매우 어중간하다 보니, 교수들은 선거운동 기간동안 연구실을 찾아온 후보들에게 문전박대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일부 교수들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교수들은 때로 방문한 후보들에게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 이로 인해, 후보는 그 교수가 마치 자신을 찍어줄 것처럼 계산한다. 후보들은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하여 식사나 술자리를 마련하기도 해서, 때로 말썽을 일으키기도 한다.

어찌하였던, 각 후보들은 교수들의 불확실한 심리상태 속에서 득표 예상치를 계산하게 된다. 한 후보가 연구실을 두 번째 찾아와서, 한참 동안 출마변을 늘어놓고서는 묻는다. "선생님은 이제 동그라미로 해도 되지요?" 교수들은 후보들의 분류작업을 통해 확실하면 동그라미, 불확실하면 세모, 그리고 가능성이 없으면 곱표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각 후보들이 교수들을 만나면서 점차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이면, 세모에서 네모, 심지어 동그라미에 좀더 가깝다고 하여 다섯모로 분류된다. 교수들은 각 후보들과 그 선거참모들에 의해 선거일까지 이런 표점검을 수 차례 당하게 된다.

그러나 선거전에서 셈하기에는 기계적 정확성이 전혀 통하질 않는다. 흔히 하는 이야기처럼, 각 후보들이 계산한 표의 숫자를 단순하게 합하면 전체 교수 수의 두 배가 될 정도이다. 물론 선거결과 각 후보들의 득표수는 투표자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교수들은 이중으로 동그라미를 당한 것이다. 또는 교수들 스스로가 한 후보 이상에게 마치 표를 줄 것처럼 했다고 하겠다. 이러한 상황은 한 대학 안에서 서로 알만한 관계와 체면 때문에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때로는 상당히 의도적일 경우도 있다.

교수들이 솔직할 수 없는 이유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지 간에, 후보에게 자신의 입장을 보다 분명히 할 수는 없을까. 이는 선거전에서 후보들의 계산을 분명히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거에 임하는 각자의 소신과 이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그리고 선거 이후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교활하게 마음속에 정한 것과는 다른 말을 하면서, 후보들에게 거짓 말이나 행동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입장을 확실하게 알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자기 분열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 나의 동료는 하늘 나라에서나 가능한 고매한 요구이거나 또는 바보들이나 하는 매우 우둔한 질문이라고 한다. 사람의 심리란 무척이나 미묘하고 까다롭고, 선거전의 심리수학이란 드러난 것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계적 정확성에 바탕을 둔 산술 논리가 통할 리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은 산술 논리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후보들은 피를 말리겠지만, 그럴수록 선거전이 재미있어 지고, 인간 세상은 살만 하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고 나는 고개를 꺼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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