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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실유(實有)가 아니라 가유(假有)
이 세계는 실유(實有)가 아니라 가유(假有)
  • 한자경 이화여대 · 철학과
  • 승인 2019.02.1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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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 『성유식론 강해: 아뢰야식』 (한자경 지음, 서광사, 2019.01)

이 책 『성유식론 강해: 아뢰야식』은 당나라의 현장이 659년에 펴낸 『성유식론』 중에서 아뢰야식에 관한 부분을 철학적으로 풀이한 책이다. 『성유식론』은 인도의 세친(世親, 바수반두)이 지은 『유식30송』에 대한 주석서로서, 세친의 10대 제자들의 다양한 주석을 현장이 그의 제자 규기(窺基)와 함께 호법의 주석을 중심으로 번역하여 편찬한 책이다. 인도의 대승불교 유식사상이 중국으로 전파된 후 현장과 규기에 의해 ‘법상종(法相宗)’이 세워졌는데, 법상종이 의거한 주요 논전이 바로 이 『성유식론』이다. 신라의 원측, 도증, 태현, 원효 등도 이 책을 연구하였으며, 오늘날도 유식사상을 공부하고자 하면 읽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나는 현장
▲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나는 현장

『성유식론』은 제목이 말해주듯 ‘유식이 성립함을 논증’하는 책이다. ‘오직 유(唯)’와 ‘알 식(識)’의 ‘유식(唯識)’은 ‘오로지 식(識)만 있다’는 것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우리의 식(識)을 떠나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유(實有)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기관 및 인지체계를 따라 만들어진 가유(假有)라고 논한다. 그렇게 세계를 만드는 식을 유식에서는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부른다. 아뢰야식은 우리의 일상적인 감각(전5식)과 개념적 대상의식(제6의식) 그리고 자신을 개별적 실체로 여기며 집착하는 자아식(제7말나식)보다 더 깊은 층위에서 작동하는 가장 심층의 식, 제8식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내지 삼계유심(三界唯心)의 ‘심(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아뢰야식은 중생이 무시이래의 생을 통해 경험해온 일체의 정보를 종자(種子)로 간직하고 있는 식이기에 의역하여 ‘장식(藏識)’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바로 이 아뢰야식 내에 함장되어 있던 종자(정보/업력/에너지/기)가 인연을 따라 구체적 현실로 변현하여 나타난 것, 곧 식의 전변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본 강해는 『성유식론』 중에서 아뢰야식을 설명하는 부분만을 풀이한 것이다. 아뢰야식이 유식을 성립시키는 근본 식이기에 유식을 논할 때에는 가장 먼저 다룰 수밖에 없으며, 이는 『유식30송』 중 제1게송에서 제4게송까지이고, 『성유식론』 전체 10권 중 제1권에서 제4권 초반까지에 해당한다. 강해에서는 『성유식론』의 순서를 따라 유식의 기본 원리를 논한 후 아뢰야식과 종자의 관계, 아뢰야식의 활동 방식 및 그 활동의 산물, 아뢰야식과 함께하는 마음작용(심소) 나아가 수행을 통한 아뢰야식 차원의 변화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뢰야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경전에 따라 증명하는 다섯 가지 ‘교증(敎證)’과 이치에 따라 증명하는 열 가지 ‘리증(理證)’을 논하였다. 아뢰야식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성유식론』에서는 말나식과 6식의 설명, 유식의 논증, 유식3성과 3무성, 유식의 5단계의 수행 등의 논의가 이어진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이것들도 마저 풀이해서 전체 4권으로 『성유식론 강해』를 완성하고자 한다.

▲ 현장의 제자, 규기
▲ 현장의 제자, 규기

유식은 어떤 존재론, 어떤 인식론보다도 더 깊이 있게 현상세계의 존재 및 인식에 대해 해명하고, 어떤 정신분석보다도 더 치밀하게 인간 마음의 심층을 분석하며, 어떤 심리학보다도 더 진지하게 인간 삶의 고통과 그로부터의 벗어남을 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유식사상의 핵심을 담고 있는 『성유식론』이 너무 난해하고 복잡하여 단순 번역만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여겨져서 필자는 한 문장씩 풀이하는 강해를 시도해본 것이다. 바라건대 불교를 알고자 하는 사람뿐 아니라 철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유식사상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싶다. 유식불교에 대한 이해가 인간의 자기 이해 및 우주 삼라만상의 존재에 대한 이해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긴 정신사를 바르게 정립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강해가 이러한 의미가 있는 유식사상에 대한 이해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바가 있기를 희망한다.  

 


한자경 이화여대·철학과
이화여대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서양철학(칸트)을,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불교철학(유식)을 공부했다. 저서로는 『마음은 이미 마음을 알고 있다: 공적영지』, 『심층마음의 연구』, 『칸트철학에의 초대』, 『헤겔 정신현상학의 이해』 등이 있고, 역서로는 피히테의 『인간의 사명』, 셸링의 『인간 자유의 본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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