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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비평: ‘홍순태 사진전’을 보고
사진비평: ‘홍순태 사진전’을 보고
  • 류소영
  • 승인 2003.07.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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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난만 혹은 무표정에 담긴 時代의 풍경

류소영 / 소설가

대학 4학년 가을이었던가, 무슨 글이든 굶주린 듯 읽어치우던 스무 살의 열정이 가라앉은 그 자리에 지독한 활자 멀미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어떤 책도 읽어낼 수가 없었고, 정말이지 집 앞에 붙은 소독 안내문 같은 것만 봐도 울렁거리고 어지러웠다. 그 때 마음을 붙인 것이 ‘열화당 사진문고’ 시리즈였다.

그리고 그 때 접한 국내 사진작가들로 정범태나 최민식 같은 분들이 있었다. 그 분들이 찍어낸 곤궁하고 비루한 삶의 현장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신기하게도 활자가 그리워졌고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오롯이 돋아나곤 했다.

다시 후덥지근하고 나른한 장마철의 한 가운데에 나는 그 ‘활기’와 다시 만났다. 7월 1일부터 김영섭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홍순태 사진전’은 한국 사진의 흐름을 선도해왔던 그의 작업 가운데 60~70년대 한국의 여러 모습을 담은 작품들을 선별하여 전시하고 있다.

배를 타고 등교하기 위해 논둑길 사이에 줄을 지어 서 있는 갈래머리 여고생들, 뻥튀기 장수와 귀를 막고 선 아이들, 옛 청계천에서 발가벗고 물놀이하는 아이들, 번화해지기 시작한 명동 거리를 유유히 지나가는 수염 기른 노인, 짚신 장수, 초가 지붕에 논밭만 황량했던 서울 외곽 지역들…….

그 작업들은 우리 사회가 걸어온 모습의 어느 한 단면을 선명히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한 것이고, 그 자체로 훌륭한 기록이었다. 게다가 그는 ‘구도’에 대한 확고한 자기 감각 같은 게 있는 듯 했다. 어떤 사물을 내려다 볼 것인지, 구석에서 슬쩍 관찰하듯 포착할 것인지, 정 중앙에 전면 배치할 것인지를 명확히 의식하고 작업에 들어간 것임을 그 사진들은 증거하고 있다.

무엇보다 나를 그 작품들 앞에 오래 머물게 한 것은 ‘표정’이다. 옛 사진들 속의 얼굴 표정은 ‘천진한 웃음’이거나 약간의 경계심이 섞인 ‘무표정’이다. 노는 아이들이나 담소하는 노인들의 세상 다 잊은 웃음이 한 축이라면 경계심과 불안이 섞인 표정 없는 얼굴들이 또 한 축이다.

삶의 곤궁함에 찌든 듯 하기도 하고, 내일은 또 어떻게 배나 안 곯고 잘 넘기나 하는 걱정이 서린 듯도 하고, 낯선 사람과 낯선 사물(카메라 자체를 본 일도 드물었을 그들에게 작업용으로 어렵게 구했을 덩치 큰 일제 카메라는 얼마나 낯설었을 것인가)에 대한 경계심이 어려있는 듯도 한, 그러나 그 모두를 합쳤을 때는 세상 풍파를 다 통과한 이의 서글픈 무표정으로 종합되는 그 얼굴들…….

노인이나 어린아이가 아닌 대부분의 인물들에게는 그 표정이 드리워져 있다. 하나같이 아기를 업고 있는 아이들, 그래봐야 열 두세 살 남짓할 소녀들에게도 그 표정의 싹은 보인다. 나는 그 아픈 무표정들 앞에 오래도록 서성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우리는 옛 소설이나 음반을 접하거나 역사를 공부할 때 대체로 두 가지 축을 찾게된다. ‘그 시대만의 축’과 ‘보편의 축’이다. 그리고 나는 그 두 가지 축을 잘 찾을 수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읽으면서도 ‘아하, 예전엔 무슨무슨 백화점이 있었군’ 하는 식의 흥미로운 시대적 이질성을 발견하는 동시에,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방황했던 청춘들, 꿈은 많지만 세상은 철저히 자신에게 적대적인 것만 같은 고립감, 정체 모를 절망감 등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는 그때 못지 않은 도저한 청년 실업, 그리고 거대한 ‘넷(net)세상’ 속에 단자화되어가는 지금 이 땅의 청춘들을 중첩시키며 불변의 축, 보편의 축을 찾게 되는 것이다.

홍순태의 사진들 속에서도 나는 그것을 찾고 싶었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경쾌하게 지나가는 아가씨들을 포착한 명동 거리보다는 지금처럼 의미 없이 바빠 보이는 빠른 걸음의 직장인들, 그 속도와 화난 듯한 표정을 찾고 싶었고, 손님을 기다리다 옆 상인과 호쾌하게 웃어젖히는 밀짚모자 상인의 웃음보다는 기다림에 지친 권태로운 표정, 지금 서울의 거리를 모두 채우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은 그 깊이 모를 권태의 표정을 찾고 싶었다.

그것은, 지나간 것들은 모두 아름답고 애련하다는 식의 위험한 노스탤지어를 막는 길이고 또한 과거와 현재의 공통 분모를 통해 앞으로도 충분히 유의미할 한국인들만의 삶의 표정을 짐작하게 해 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해 저무는 인사동 거리에서 나는 ‘천진한 웃음과 무표정’, 그 너머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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