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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 창녀 일동의 진정서…착취 구조의 원형과 만나다
도동 창녀 일동의 진정서…착취 구조의 원형과 만나다
  • 장병욱 〈한국일보〉 편집위원
  • 승인 2019.01.29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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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광장 _ (17) 사창가에 붙은 진들기들

그렇다. 사태의 핵심은 사창가나 창녀가 아니라 “사창가에 붙은 진드기들”이었다. 곧 이어 “포주에게 5할, 경찰에 4천환. 옷은 2할 빚 얻어 해 입고”라는 제목을 단 것은 그녀들에 대한 연민 혹은 동정의 시선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폭력 조직과 연계돼 기업화한 성 산업이 있기 오래 전, 어떤 착취 구조의 원형(archetype)과 만난다. 
 

  私娼에 붙은 진드기들 (1960년 9월 4일)
 
“수도의 관문인 도동(挑洞) 양동(陽洞) 일대엔 4·19 혁명 전이나 후에도  다름없이 독버섯처럼 돋아난 천여명의 창녀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빈농 출신의 소녀들이 돈벌이를 하겠다고 시골서 서울로 올라온 후 십중팔구 전락하는 곳이 이 곳이다. 그 가운데서는 온화한 생활을 다시 찾아보려고 몸부림을 쳐보기도 하지만 거미줄에 엉킨 날파리처럼 몸부림칠수록 더욱 딸려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신세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8월 27일 “악질 포주단과 창녀에게 갱생의 갈을 택해 달라”는 진정서 한 통이 ‘도동 창녀 일동’이라는 명의로 서울 남대문서에 우송돼 왔다. 동 진정서에 의하면 포주가 매일 상부 관청인 취체 기관의 교제비 명목으로 창녀 1인당 4천환씩 징수해 가는데 (2기로 나누어 2천환씩) 그 돈은 도동 소재 세기 여관서 두 몫으로 나눠 한몫은 도동파출소, 또 한몫은 본서 여경반에 매음 행위를 묵인해 달라는 조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이다.

현재 남대문서 관내에는 약 1천4백 여명의 창녀가 도동, 양동, 봉래동 일대에 흩어져 있는데 10인 1조에 4만환씩 징수된다면 5백여 만환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 된다. 대부분의 포주는 통반장을 겸하고 있어 이 곳 조망이란 공산당식 이상으로 째어있으므로 경찰이 창녀 단속을 실시하게 돼도 사전에 그 정보를 입수한 포주와 창녀들은 모두 숨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지난 달 13일부터 27일 사이에 실시된 시경 산하 전 경찰서의 일재 단속에도 창녀가 가장 많은 남대문서 관내서는 62명밖에 붙잡히지 않아 시내 각서에서 제일 말미를 차지하는 기현상을 나타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결국 창녀는 포주에게 번 돈의 5할을 착취당하는 외에도 포주를 뒤에서 조종하는 고리 대금업자에게 2할 이잣돈(일수)을 꾸어 옷을 사 입고 ‘팸프’와 깡패들에게 뜯기는가 하면 이를 단속한다는 경찰관들에게까지 돈을 받쳐야 하는 형편에 있다 한다.

창녀 생활을 시작한지 2년이 넘는데 반반한 옷 한 가지 없이 빚만 잔뜩 지고 포주의 손에 팔려 다녔노라고 한숨짓는 김성자(21·가명)양은 저 같은 진정 사실에 대해서 처음엔 대답하기를 주저하면서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정서 사건에 대해 남대문 서장과 여경 주임은 “금시초문이니 조사해서 악질 포주를 엄단하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보안 계장은 “그러한 진정서가 몇 백통 들어와도 믿을 수 없다”고 일소에 붙이고 있다. 

▲ 토막에서 어미를 기다리는 아이  (사진출처=한국일보 DB)
▲ 토막에서 어미를 기다리는 아이 (사진출처=한국일보 DB)

서울 시경은 보건사회부와 교통부의 협조를 얻어 불원(不遠) 다시 사창굴의 청소를 실시할 것이라고 한다. 이번 단속 기간에는 포주를 무조건 입건, ‘공창제도 폐지령 위반’으로 가차 없이 구속할 방침아라 하며 창녀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29일간의 일률적인 구류 처분을 내려 모두 형무소에 수감하리라 한다. 현재 서울시에 퍼져 있는 창녀수는 약 7천여명(시경보안과 예측) 가량이라 하며 이들 중 성병이 있는 자는 형무소 내에서 매일 같이 보사부의 협조를 얻어 치료를 받게 된다고 한다.

구류 만료 후에는 교통부의 허가를 얻어 될 수 있는 한 귀향 조치가 취해진다. 이는 보건사회부와 교통부 등 관계기관에 완전한 합의가 되는 즉시 대규모적인 단속 개시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그녀들의 진실은 무엇일까? 약 한 달 전인 8월 12일자의,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어서”라는 제하 아래 기사를 보자. 여타 음성적 형태의 매춘이 더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15세 난 어린 딸의 몸을 미군에 팔아 모진 목숨을 이어 왔다는 눈물겨운 모녀의 비정애화(非情 哀話)가 있다. 11일 하오 서울 용산서에 ‘공창 제도 폐지령’ 위반 혐의로 연행되었던 오화자(50)씨는 지난 3월 말일 경 충남 당진에서 큰아들 안(26) 군을 군에 보내고 어린 딸 경자(15·가명)양과 함께 상경했다.

그러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에서 살길을 찾을 수 없어 헤매던 끝에 정자 양은 인천에 있는 대한제분소 공장에 직공으로 들어가고 오 씨는 서울서 식모살이를 하여 근근이 살아왔다. 군에 간 아들을 유일한 희망 삼아 고생을 무릅쓰고 살아온 그들이건만 지난 7월말 경 정자양은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공장에서 해고를 당했다. 다시 늙은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으나 두 식구의 살길은 막막했다.

오씨는 생각다 못해 지난 6일밤 9시경엔 집앞을 지나던 미군인 한 사람을 불러 어린 딸 정자양 방으로 들여보냈다. 말하자면 어머니는 ‘팸프’가 되고 딸은 매음부가 된 셈이다. 이러기를 3일 동안. 7달러를 벌었다는 것이다.

이 애절한 두 모녀의 사연에 담당 취조관도 눈물을 적시며 동정해 마지않았는데  취조실에서 서로의 신세를 저주하며 부여잡고 몸부림치는 어린 딸과 어머니의 두 눈에선 눈물마저 메말라 있었다.”


장병욱 <한국일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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