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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 수집가의 고군분투 이야기
억만장자 수집가의 고군분투 이야기
  • 전세화
  • 승인 2019.01.28 2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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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에 만나는 간송특별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문화 독립운동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식민지에서 지켜낸 조국의 문화재와 그의 생애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왼쪽 상단부터 국보 68호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간송 전형필의 생전 모습, 참기름병 신세로 전락했다가 간송이 사들여 훗날 국보 제29호로 지정된 '백자청화철재동채초충난국문병'(위)와 개스비 컬력션 중 가장 유명한 국보 270호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아래).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문화 독립운동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식민지에서 지켜낸 조국의 문화재와 그의 생애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왼쪽 상단부터 국보 68호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간송 전형필의 생전 모습, 참기름병 신세로 전락했다가 간송이 사들여 훗날 국보 제29호로 지정된 '백자청화철재동채초충난국문병'(위)와 개스비 컬력션 중 가장 유명한 국보 270호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아래).

국보 68호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사진1). 간송은 고려청자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 문화유산을 일제강점기 말인 1935년 일본 골동품상 마에다 사이이치로에게 2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당시 2만원이면 경성 시내에 있는 여덟 칸짜리 기와집 20채를 살 수 있었다. 조선총독부박물관도 탐을 냈지만 워낙 고가라 손에 넣지 못했던 물건을 간송은 한 푼도 깎지 않고 즉석에서 현금으로 값을 치르고 매병을 가져왔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 나타났을 때, 숙고熟考 하되, 장고長考는 하지 않는다는 그의 원칙 덕분이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월31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이 열린다. 문화 독립운동가 간송 전형필(사진2·1906~1962)이 식민지에서 지켜낸 조국의 문화재와 그의 생애를 조명하는 자리다.

조선 40대 거부에 들었던 갑부 집안에서 태어나 남다른 미감과 각별한 심미안을 겸비했던 그는 20대 때부터 일본으로 유출되던 우리문화재를 사들이는데 전 재산을 쏟아 부어가며 고군분투했다. 선조들의 독자성과 뛰어난 위상을 드러낸 우리 문화예술을 지키는 것은 일제가 왜곡시키고 지우려 했던 조선의 얼과 역사를 지킬 수 있는 기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간송이 보물과 국보를 구하기 위해 보낸 긴박했던 사건과 비화가 수장품들과 함께 펼쳐지는 ‘히스토리 텔링’ 방식으로 구성해 수집가가 살았던 시대와 정신을 전달한다.

1936년, 당시 합법적 유물 반출구였던 경성미술구락부(현 명동 프린스호텔 위치) 경매장에서 간송이 일본 대수장가와 불꽃 튀는 경합을 당시 경매 최고가였던 1만4580원을 지불하고 승리로 이끌어내 지켜낸 조선백자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사진3). 한때 여염집 참기름 병으로 쓰이다 그 가치를 알아본 일본인 수집가들을 거쳐 경매에 나온 이 백자는 훗날 국보 제294호로 지정된다.

간송이 뛰어난 안목으로 수집한 고려청자 컬렉션으로 유명했던 일본 주재 영국 변호사 존 개스비의 수집품을 일본 동경까지 건너가 인수하게 된 이야기와 개스비 컬렉션 20점 중 12점도 볼 수 있다. 간송은 1937년 일본의 정세 불안을 예감한 개스비가 일본을 떠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곧장 도쿄로 향했다. 결렬의 연속이었던 흥정은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다. 간송의 초대로 건립 중이던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 ‘보화각’(1938년 완공. 간송미술관 전신)을 본 개스비가 젊은 수집가의 열망에 감동한 것이다. 간송은 집안 대대로 내려온 충남 공주 일대 땅 1만 마지기를 팔아 개스비의 수장품을 손에 넣었다. 이번 전시에서 개스비 컬렉션 중 가장 유명한 국보 270호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사진4)을 비롯해 국보, 보물 아홉 점(국보 4점, 보물 5점) 등 12점의 고려청자를 감상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친일파 송병준의 집에서 불쏘시개로 한 줌의 재로 사라질 뻔 했던 겸재정선의 ‘해악전신첩’(사진 위)과 추사 김정희 대표작 ‘예서대련’ 등 간송이 수집한 수많은 국보와 보물들이 관람객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우리민족의 보물과 국보를 구한 문화재 수호자뿐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간송의 모습도 함께 조명된다. 그는 삼일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민족사학 보성학교가 폐쇄위기에 놓이자 학교를 인수해 후학을 양성했다. 1946년 광복 직후 간송이 삼일절 졸업식 날 학생들에게 읽어주려고 직접 쓴 '독립선언서' 필사본(사진 아래)도 전시됐다.

이번 전시는 DDP에서 열리는 마지막 간송전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서울디자인재단과 공동으로 지난해까지 5년간 11차례의 기획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12번째 기획전이다. 간송전시가 DDP로 나온 이유는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1938년에 지어진 건물이라 많은 관람객을 수용하기엔 불편한 시설이었기 때문이다.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이르면 올가을부터 다시 관람객을 맞이한다. 신축 중인 간송미술관 앞 수장고가 내년쯤 준공되면 미술관 기능 대부분을 그쪽으로 옮긴 뒤 미술관 내부는 원래 모습으로 복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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