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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 : 『일본이란 무엇인가』(아미노 요시히꼬 지음/박훈 옮김, 창작과비평사 刊)
논쟁서평 : 『일본이란 무엇인가』(아미노 요시히꼬 지음/박훈 옮김, 창작과비평사 刊)
  • 남기학 한림대
  • 승인 2003.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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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설 뒤집는 발상...'두개의 일본' 주장

 

남기학 / 한림대·일본사

"일본열도는 고립된 섬나라가 아니라 아시아대륙의 가교였다." "일본은 단일민족, 단일국가가 아니었다." "일본은 농업사회가 아니었다."
최근 번역, 소개된 아미노 요시히코의 '일본이란 무엇인가'가 우리 학계와 일반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그가 그린 일본의 자화상이 우리가 일본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던 이미지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사 통설을 뒤집는 위의 주장들은 1980년대이래 정열적으로 추구해온 그의 연구의 집약이라 할 만하다.

천황과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
저자의 주된 문제의식의 하나는 천황과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저자는 '일본'이란 용어가 7세기 말 야마토를 중심으로 성립한 국가의 국호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천황'을 왕의 칭호로 정한 왕조명인 사실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히노마루·기미가요를 일본의 국기·국가로 법제화한 최근의 사태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주의의 부활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일본'에 대한 인식의 불철저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역사학계의 주류를 점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도 '일본'이라는 국가, '일본인'이라는 민족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단의 책임을 묻는다. 그렇다면 저자 자신은 일본열도의 역사 속에서 천황과 국가·민족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그것은 과연 유효한가.
그는 천황의 존재에 대해 종교적·관념적 신성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신성왕'으로서의 천황의 권위는 비농업민에 의해 지탱돼 중세이래 근세에도 유지됐다고 본다. 이는 천황에 대한 초역사적·신비주의적인 이해로, 여기서 천황은 그 권위를 수용하는 민중들에 대한 보호자의 모습마저 띠고 있다. 저자는 '일본국'과 천황을 기껏해야 1300년의 역사를 가진 존재로 상대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1300년간 일본의 민중이 천황의 권위를 수용해온 것이라면 천황제의 폐지는 현실적으로 지난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천황제를 극복하는 논리로서는 이러한 접근방법보다 1990년대 이후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탈국민국가론이 훨씬 유효하다. 네이션으로서의 국민(민족)은 근대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이며, 내셔널리즘이나 천황 숭배는 메이지 이후에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 학설은 천황의 초역사성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아미노의 맹점을 찌르고 있다.
근년 일본에서는 국가 즉 중앙정부나 국가권력을 절대시하지 않고 그것을 상대화해서 파악하려는 지역론이 역사학 연구방법론으로 정착됐으며, 중세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아미노의 분석도 그 일환이다. 그는 동일본과 서일본의 인종·언어·사회조직·민속 습관 등 두 지역의 뿌리깊은 사회 체질의 차이를 바탕으로 별개의 민족, 별개의 국가가 성립했다고 역설한다. 교토를 중심으로 한 서국의 국가에 대하여 가마쿠라 막부라는 동국의 국가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령 별개의 민족 혹은 국가를 형성할 만한 객관적인 조건이 지역에 존재했다고 해도, 그것과 당시 지역사회가 '우리의식'을 자각했는가와는 별개의 문제다. 그의 지적대로 13, 4세기이래 일본어 문자의 보급, 교통의 발달, 정보의 전달 등에 의해 '일본인 의식'이 형성됐다면, 당시 열도 내의 두 개의 민족이나 국가가 성립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실제로 가마쿠라 막부 당국자들도 '일본국'의 천황을 자신들의 국왕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지역의 차이를 상대적인 것으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자칫 지역사회 자체를 국가로 환원하는 일종의 지리적 결정론에 빠질 우려가 있다.

취약한 타자인식 드러낸 '일본인' 정의
천황과 국가에 대한 비판의식의 한편으로, 저자의 언설에는 '일본열도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커다란 자부심이 감지된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에 대한 경탄, 에도시대 사람들의 식자율이나 여성의 경제적 능력에 대한 높은 평가, 에도시대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적극적인 해외진출 사례의 열거 등은 일본인 혹은 일본민족의 자부심과 연결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열도 주민들의 역량에 대한 자부는 저자 자신이 비판하는 보수우익의 자유주의 사관에 의해 이용될 소지가 있으며, 일본 근대화의 성공 요인이 열도에 내재되어 있었다는 단순한 이해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비판이 그다지 이루어지지 않은 점도 지적해야 한다. 일본은 단일민족이 아니다, 일본은 섬나라가 아니다, 일본의 서쪽은 오히려 한반도에 가깝다, 일본인은 농민이라기보다 바다를 생활무대로 한 해민이다. 이러한 역사관은 제국주의 일본이 해외로 팽창할 때 주창되곤 했다. 학설사적으로 보면, 아미노의 주장은 근년 일본의 국제적 지위 향상을 배경으로 한 패전 전 일본론의 재판이라는 자리매김도 가능하다. 또한 그는 '일본인'을 일본국의 국가제도 아래에 있는 인간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의 한국인은 '일본인'이 되고 만다. 이런 점에서도 그의 역사인식에는 타자 인식의 취약성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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