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6-19 13:55 (수)
한국 대학의 몰락 … 위대한 대학 없이 위대한 사회 없다
한국 대학의 몰락 … 위대한 대학 없이 위대한 사회 없다
  • 김종영 경희대 · 사회학
  • 승인 2019.01.03 11:49
  • 댓글 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년시론_ 새해 아침, 한국대학체제를 바꿀 수 있는 변혁적 리더십과 정치세력을 기대하며

위대한 대학 없이 위대한 사회는 없다. 경제학자들은 생산성의 50% 내외가 지식의 발전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나라와 개인의 부를 결정하는 것이 지식이며 대학은 지식의 보고이자 창조자이다. 일찍이 선진국의 지도자들은 대학을 전면적으로 개혁함으로써 국력을 증진하고 문명을 개척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그랑제꼴을 세워 부국강병을 이루어 유럽을 호령했고 독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연구중심대학의 모델이 된 베를린 대학의 창설을 훔볼트에게 맡겼으며 미국 연방정부는 신무기 개발과 생산력 증진을 대학들에 맡김으로써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창조의 엔진으로서의 대학을 모르는 국가는 세상을 모르는 집단이며 안타깝게도 이것은 한국의 슬픈 현실이다. 

교육 분야에서 활약하는 많은 전문가, 정치인, 지도자를 만나봤다. 대학교육정책과 관련된 다양한 보고서, 전문 서적, 논문들도 읽어봤다.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대학을 위한 비전이나 야망을 품은 지도자는 없다. 거의 대다수가 원하는 것은 ‘현상유지’다. 구체적인 비전과 아이디어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암 덩어리로서의 한국대학체제를 개혁하려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한국대학체제가 적폐이자 암 덩어리인 이유는 이것이 반교육적, 반민주적, 비효율적, 반경쟁적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대학(university)은 멀티버시티(multiversity)를 넘어 글로내컬버스티(glonacalversity)로 진화했다.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대학은 산업 경쟁력의 중추가 되었고 이제는 글로벌 사회의 창조를 위해 활약하고 있다. 불행히 한국대학은 글로벌 경쟁력, 내셔널 탁월성, 로컬 효율성 중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암 덩어리가 되었다. 보수의 이념인 탁월성과 경쟁력을 담보하지 못하며 좌파의 이념인 공정성과 민주성도 담보하지 못하는 최악의 시스템이 한국대학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야기하는 것이 한국대학이며 이 괴물은 교육을 받는 구성원들을 괴물로 만든다. ‘SKY 캐슬’이란 드라마가 보여주는 한국교육의 악마성은 많은 부분 지위 권력을 독점한 한국대학체제의 모순 때문에 발생한다.

수십 년 동안 비판자들과 개혁가들은 입시위주의 교육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많은 기대를 했다.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을 향해 대학개혁을 하라고 결단을 촉구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악마의 맷돌’인 대학입시 개혁 속으로 뛰어 들었고 결론은 불 보듯 뻔했다. 교육부 장관의 평균 임기는 1.25년이고 김상곤의 임기도 정확하게 1.25년이었다. 한국의 교육부 장관은 잠깐 쓰다 버리는 ‘크리넥스 티슈’로서 백년대계를 진두지휘할 수 없다. 이는 모든 정권의 문제이기도 했으나 문재인 정권에서만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허망하게 사라졌다. 교육분야에서 진보세력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대학은 야누스와 같은 기관이다. 변화가 엄청나게 느린 가장 보수적인 기관이기도 하고 사회변혁을 추동하는 가장 진보적인 기관이기도 하다. 한국대학은 민주화를 이끈 대학생 세력과 산업화를 이끈 인재 양성이란 시대적 과업을 달성했으나 이제 그 수명은 다했다. 글로벌 시대는 유연성, 다원성, 창조성을 요구하는데 한국대학체제의 경직성, 보수성, 획일성은 이와 정반대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대학체제는 시대정신과 맞지 않은 구시대적 퇴물이다. 따라서 대학의 변혁은 대학 내부로부터 나올 수 없다. 역사적으로 어떤 나라에서도 그렇게 된 적이 없으며 결과적으로 대학개혁은 대학 밖으로부터 왔다. 대학을 둘러싼 이해관계들이 첨예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개혁의 동력이 되어야 할 교수들이 보수적인 집단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대학의 개혁과 질적 성장은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정치적 결단과 압박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 대학의 몰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정부가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다. 이는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와 직결된다. 대학의 탁월성과 경쟁력은 정부의 재정 지원에서 나온다. 한 대학에 수조 원의 예산이 있어야만 세계적 명성을 가진 대학을 만들 수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대학의 예산은 정체되었지만, 우리의 경쟁자들인 아시아의 대학들은 정부의 막대한 지원으로 급성장했다. 가장 객관적이라고 평가받는 Academic Ranking of World Universities(ARWU)의 2018년 세계대학랭킹을 보면 칭화대학(중국) 45위, 베이징대학(중국) 57위, 저장대학(중국) 67위, 싱가포르 국립대학(싱가포르) 85위, 난양 공대(싱가포르) 96위다. 일본 대학들은 이미 오래전에 100위 권 안에 들었으며 우리의 경쟁상대는 아니다. 세계 100위 랭킹은 ‘넘사벽’으로서 ARWU 지표 역사상 한국대학 중 어느 대학도 이에 포함된 적은 없다. 중국대학과 싱가포르대학의 세계 100위권 진입은 최근 몇 년 안에 이루어진 일로서 몰락하는 한국대학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서울대학교는 9년째 101-150위권에 정체되어 있고 성균관대학교는 최근 급성장하여 150-200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200위권 안의 한국대학은 단 두 군데이며 한국과학의 자랑으로 여겨지는 카이스트는 201-300위권, 포스텍은 401-500위권이었다. 처참한 성적이다. 우리의 엘리트 대학들조차 글로벌 경쟁력이 형편없다는 말이다. 중국과 싱가폴 정부가 대학에 대대적으로 투자할 때 한국 정부는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 대학이 공정성과 민주성을 가진 것도 아니다. 한국의 교육 담론은 입시문제가 지배적이며 이는 당연히 ‘악마의 맷돌’인 대학서열체제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의 불행은 이 ‘악마의 맷돌’이, ‘SKY 캐슬’이 보여주듯, 우리의 공동체, 학문, 영혼을 철저히 박살내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을 만들어 훌륭한 인재를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국내서열은 높으나 글로벌 수준은 형편없는 대학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데 모두 목숨을 건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을 수십 년 동안 반복해 왔고 앞으로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학종 대 정시를 둘러싼 격렬한 사회적 논쟁이 작년 한 해 내내 이어졌고 입시를 둘러싼 형식적 공정성에 대한 비극적 소모전에 문재인 대통령까지 끼어들었다. 교육에 대한 최고 정치지도자의 이해 수준이 이 정도일진대 어떻게 나라가 잘 돌아가겠는가. 그랑제꼴을 세운 나폴레옹을 기억하라. 미국대학에 국가의 운명을 건 루즈벨트를 본받아라. 그대, 새로운 국가를 창조하고 싶은가? 학종/정시라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창조의 엔진인 대학이라는 바다에 뛰어들어라.   

한국 대학의 몰락은 예산뿐만 아니라 학문적 리더십과 윤리적 리더십의 실종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이 두 가지 리더십은 애초부터 없었다. 한국대학은 미국대학의 식민지로서 한국대학 내에서의 학문적, 윤리적 리더십은 미국대학에 있다. 이제 성숙할 때도 되었지만 대학 인프라의 절대적인 열악함으로 말미암아 한국대학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미국대학의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우파들이여, 한국대학이 하버드, 스탠퍼드, 버클리, MIT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정부에 엘리트 대학들에 해마다 수조 원을 투자하라고 설득하라. 좌파들이여, 한국대학체제가 민주적이고 공정해지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대학서열체제를 타파하고 지방의 중점 대학들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라고 정부를 설득하라. 하지만 이 둘 중 어느 것도 실현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한국정부와 정치권에 대학에 관심 있는 지도자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무관심과 10년 동안의 등록금 동결에 따른 재정 악화로 한국대학의 질은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대학에 미래는 없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북한 문제를 빼고 사회의 모든 부분이 후퇴하고 있다. 우리는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개의 한국이 아니라 소수의 상한(上韓, 잘 사는 한국)과 다수의 하한(下韓, 못 사는 한국)이라는 두 개의 한국을 목도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사회불평등 해소를 국정의 슬로건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는 결과적으로 상한(上韓)만을 위한 정부가 되고 있다. 지방의 몰락, 서민과 중산층의 몰락, 교육의 몰락, 경제의 몰락, 자영업의 몰락, 청년의 몰락, 희망의 몰락 등 하한(下韓)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암 덩어리로서의 한국대학체제는 하한의 몰락에 기여해 왔고 이제 자신의 몰락을 목도하고 있다. 하지만 암 덩어리 덕분에 잘 사는 사람들도 있는 법. ‘SKY 캐슬’보다 더 높디높은 ‘신의 캐슬’에 안주하며 우주 최강의 직업을 가진 우리네 교수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는 풍자나 비꼼이 아니라 ‘대학의 인류학’이 나에게 가르쳐 준 뻔뻔한 현실이다. 그들은 대학이 몰락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이는 대학개혁이 외부로부터 와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대학의 몰락을 앉아서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는 암 덩어리를 제거하지 않고 살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위대한 대학 없이 위대한 사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단순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인식하고 한국대학체제를 바꿀 수 있는 리더십과 정치세력이다. 새해 아침, 그 변혁의 주체가 암울한 어둠을 뚫고 강렬한 태양처럼 솟구쳐 오르기를 희망한다.


 

김종영 경희대·사회학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연구 분야는 지식사회학, 교육사회학, 과학기술사회학, 사회운동론 등이다. 지식과 권력 3부작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지민(知民)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 『근대와 권력지형: 한의학의 창조적 생산』(2019년 봄 출간 예정)을 집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6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교수 2019-02-08 14:19:08
다 후퇴했다니 박근혜 이명박 다시 집권하면 되겠군요. 이런 철없는 소리하는 교수들 있는 대학은 없애버리는데 더 나을텐데요. 대학의 몰락이 아니라 대학을 꾸려갈 능력있는 사람들이 없는것 아닌가요.
자기들이 무능해서 안좋아지는것을 다 후퇴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그런 교수들이 있는 곳의 학문은 도대체 뭔가요. 대학 없어도 별 상관없을것 같은데....

TDA 2019-02-05 23:06:12
한국의 대학서열체제가 한국 대학의 경쟁력을 저해고 있다면 1) 한국 못지 않게 심각한 타국의 대학서열체제는 문제가 없다는 (적다는) 건지 2) 만약 그렇다면 왜 그런건지 궁금하군요.

더불어, 한국대학서열체제가 악마의 맷돌이라면, ARWU는 어째서 객관적이고 정직한 맷돌(??)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싱가폴 대학들은 세계랭킹 올리겠다고 서로를 채찍질해대는 통해 연구주제 선정과 발표 등에 있어서 심각한 비판을 받고 있고, 북경대 칭화대의 수재들은 어떻게든 미국유학 좀 가보려고 오늘도 열심히 GRE 수험서를 넘기고 있지요. 버클리는 '객관적인' 글로벌 수준으로 비교했을 때 예일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대학이지만 다른 조건이 비슷하다면 미국 국내 학부모는 버클리보단 예일에 보내고 더 행복해하지 않겠어요.

김규태 2019-01-16 12:12:09
댓글을 달려다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
음...
....

山亭 2019-01-11 01:53:23
공영형 사립대 주장도 이제 그치고, 이 주장을 처절하게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모두가 대학을 가게 했지만, 고등학교의 연장선으로 대학을 바꾼 저질의 교육을 만들어냈다.

지나가다 2019-01-10 00:20:44
다 후퇴했다니 박근혜 이명박 다시 집권하면 되겠군요. 이런 철없는 소리하는 교수들 있는 대학은 없애버리는데 더 나을텐데요. 대학의 몰락이 아니라 대학을 꾸려갈 능력있는 사람들이 없는것 아닌가요.
자기들이 무능해서 안좋아지는것을 다 후퇴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그런 교수들이 있는 곳의 학문은 도대체 뭔가요. 대학 없어도 별 상관없을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