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9:05 (일)
르 코르뷔지에와 건축적 특징
르 코르뷔지에와 건축적 특징
  • 정진국 한양대
  • 승인 2003.07.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빛과 자연, 그리고 이야기가 살아있는 조형문법

르 코르뷔지에는 근대건축의 원형을 결정하고 그 철학적 방향을 제시한 사상가다. 오늘날 우리 주변 건물들의 이모저모에는 거의 다 코르뷔지에의 손길이 미쳤다고 할만큼 그의 영향은 한국건축사에 폭넓게 자리잡아 왔다.

요즘은 친환경적, 인간중심적 건축을 표방하는 뉴 어바니즘의 조류와 함께 코르뷔지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고 있다. 그의 주저라고 할 만한 책들이 번역되고, 연구도 활발하다.

하지만 우리의 근대를 돌이켜보면 건축물을 외형적으로만 이해하고, 재료의 고급 여부로만 건물의 수준을 따지는 어이없는 실태가 연출돼 왔다. 이제 코르뷔지에의 겉모습보다는 그가 던지는 철학적이고 인간적인 메시지에 귀를 귀울여야 할 때다.

정진국 / 한양대·건축학

"안녕, 나의 스승, 나의 친구여. 편히 잠드소서." 1965년 9월 1일 저녁, 루브르 궁의 안뜰(Cour Carr e de Louvre)에서는 당시 문화성 장관인 앙드레 말로(Andr  Malraux)가 한 건축가를 기리는 장례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여기는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가로서 인류사에 길이 기억돼야 할 가치를 실현시켰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창조자로서 인간의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해 치열했던 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존경을 표했으며,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브라질, 인도 등 세계 곳곳의 관계자들로부터 전해진 헌정사는 그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부정하든지 긍정하든지, 건축을 말하고 다루는 전문가들에게 있어서 르 코르뷔지에는 모든 논쟁의 중심에 위치한다. 이것은 그가 그만큼 풍부한 사고의 영역을 개척해 놓았으며,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수많은 작품과 도면을 제작한 실천적 건축가이자, 동시에 화가이고 조각가였으며, 시인이기도 했다.

또한 '건축을 향하여'(Vers une architecture), '빛나는 도시'(La ville radieuse), '모뒬로르'(Le modulor) 등 평생 40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기기도 한 사상가였다. 건축사에 있어서 그를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은 근대 사회에 누적된 문제들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적절하게 해답을 제시하고 실제로 실현시켰다는 데에 있다.

롱샹 교회
이 자그마한 교회는 1953년에 완공됐으며, 르 코르뷔지에 후기 건축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시각에 의존하는 조형 세계에 촉각과 청각과 같은 인간의 또 다른 감각을 더불어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만큼 세상에 대한 그의 이해의 너비와 깊이가 심화된 것이다. 극도로 섬세하게 조절된 빛, 끊어진 것 같으면서도 이어지는 곡면 등을 가진 롱샹 교회는 인공물이지만 자연과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융화돼 있다. 이것은 또한 인간의 근원적 속성 중의 하나인 구축에의 의지가 표출돼 있음을 상징화한다. 르 코르뷔지에는 롱샹 교회를 통해서 건축물은 그것이 놓여진 장소와 통합돼 인간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감동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근대적 미의식 대표

1887년 스위스의 작은 마을 '라쇼드퐁'(La Chaux-de-Fond)에서 태어난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의 미래를 건축가로 정하고 1917년 프랑스로 영구 귀화한다. 주로 파리를 거점으로 활동했던 그는 산업화의 여파로 20세기에 들면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진통을 겪는 유럽 사람들의 삶을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고민한다.

그는 근대적 인간의 탄생과 함께 건축의 근대성은 피할 수 없는 당면한 과제로 인식했던 것이다. 문제의 해결은 건축 자체만을 탐구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동료 건축가 및 예술가, 과학자 등과 역동적 교류를 통해서 인간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을 포괄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다. 따라서 근대 건축과 동일시되는 그의 건축은 한 개인의 독창성의 산물로서가 아니라 시대의 인식적 공감대에 근거한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을 '거주 기계'(machine   habiter)라고 불렀다. 혼돈의 상황에서 정확하고 명쾌한 형태와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그가 근대 사회의 최대의 발명품들인 자동차, 비행기, 선박과 같이 인간에게 편리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기계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계는 사회 제도 및 생활 양태의 근본적 변화를 야기했고, 이러한 현상의 바탕에는 기술의 발전이 있었다. 그는 결코 미학적 미사여구를 늘어놓지 않았다. 기술이 지향하는 바가 그렇듯 근대 사회에 있어서의 건축은 무엇보다도 효율적이며 기능적이어야 했다.

건축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건축은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사회적 장치로서 '감동 기계'(machine    mouvoir)여야 했다. "빛 아래에서의 현명하고 명확하고 경이로운 부피들의 놀이"라고 말한 것은 구축이라는 역사적 불변의 가치를 토대로 한 시대의 사회적 감수성을 표상함으로써 감각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하고자 한 건축가의 의도를 잘 반영한다. 이는 건축이 이성과 감성의 조화와 균형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한다. 건축에서 예술적 창조의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부아 저택
1931년에 완공된 사부아 저택은 르 코르뷔지에 자신에게 있어서 뿐만 아니라 건축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작품이다. 이것의 실현은 과거의 인습주의에서 벗어나 근대 건축이 완성됐음을 선언한 것이다. 여기에는 그때까지 부분적으로 실험됐던 근대 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 즉 수평창, 필로티, 자유입면, 자유평면, 옥상정원이 하나의 완벽한 형태로 통합돼 있다. 사부아 저택의 구조는 철근 콘크리트로 이뤄져 있는데, 이는 전통적 구조 형식인 벽돌 건물이 가져다준 공간적 폐쇄성을 뒤로하고 그 대신 역동적이며 개방적인 공간을 제공한다. 이러한 개방성은 서구의 근대 사회가 지향한 이상성과 합리성에 일치하고 있다.

평화와 관용의 정신

근대 건축의 원형이며, 현대 건축가들의 교과서인 '사부아(Savoye)' 저택은 건축이 갖가지 굴레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러 도시계획 과제들은 근대적 사회 공동체의 의미를 표출한다. 뿐만 아니라 '롱샹(Ronchamp)' 교회와 '라 투레트(La Tourette)' 수도원과 같은 종교 건축,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  d'habitation)이라는 집합 주거는 각각 인간의 영혼과 실존에 관한 질문이자 해답으로서 현대 건축의 본보기가 된다.

마지막 대규모 과업이었던 인도의 샹디가르(Chandigarh) 신도시 건설에 나타난 "열린 손"(la main ouverte)은,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을 통해서 실현하고자 한 평화와 관용의 정신을 깨닫게 해준다. 모든 대립 상황을 갈등에서 화해로 유도하고자 한 그의 교훈을 되새기기 위해 세계의 수많은 연구자들 및 건축가들은 오늘도 파리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 재단과 그가 남긴 건축물의 문턱을 부지런히 넘나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