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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의 권위적 해석 넘어서는 통찰력이란?
‘춘향전’의 권위적 해석 넘어서는 통찰력이란?
  • 김재호 과학전문기자
  • 승인 2018.10.2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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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 『김경집의 통찰력 강의: 질문하는 습관이 만드는 생각의 힘』(동아시아, 2018.09)

사유에 대한 독한 책이 나왔다. 바로 인문학자 김경집의 『통찰력 강의』다. 이 책은 기존의 이야기와 관념, 가치를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그 근간을 다시 살펴보고 점검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정보를 안(in)으로 집어넣는 게 아니라 밖으로 제거(ex)해야 제대로 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질문하는 힘은 인문학뿐만 아니라 과학과 예술, 정치와 사회 등 전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이다.   

흔히 알고 있는 ‘삼고초려’만 하더라도 정말 유비가 제갈량에게 두 번이나 퇴짜를 맞은 것인지 저자는 질문한다. 잘 생각해보면 오히려 유비가 제갈량을 떠보기 위해 두 번이나 발걸음을 한 것은 아닌가. 세력 싸움에서 위기에 몰린 유비는 뛰어난 인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추천 받은 제갈량에 대해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얘기하는지, 집안은 어떻게 해놓고 사는지, 말하는 품성이나 태도는 어떤지 알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저자 김경집은 리더란 인재를 등용할 때 유비처럼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 책에는 리더십에 대한 얘기가 자주 나온다. 질문하는 힘이란 것도 결국은 대중들의 행복과 올바른 정치를 위한 디딤돌이다. 그래서 통찰력을 지닌 통치자란 말에서 내려와 대중들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한나라의 육가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 있지만, 천하를 다스릴 순 없다고 했다. 한나라의 황제 유방은 그토록 글과 선비를 싫어했음에도 육가의 일침에 귀를 기울였다. 육가는 <신어(新語)>라는 책을 엮어 치세에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정치 사회, 직장 사회, 대학 사회에서 눈부신 리더십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최악의 상사는 코디네이트 해야 할 때 큐레이트 하고 큐레이트 해야 할 때 코디네이트 하면서, 정작 자신은 다양하고 적절하게 대처한다고 착각하는 사람이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 마디로 지도자는 지혜를 갈구해야 하며 비평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책에는 리더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람들과 사례가 나온다. 어린이와 여자를 먼저 구한 영국의 세튼 대령. 자식의 죽음을 알면서도 특권을 이용해 시신 송환 조치를 하지 않은 마오쩌둥.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통 큰 기부. 소득 수준에 따라 벌금이 차등 부과되는 핀란드 등.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는 리더들은 그들의 의무를 다할 수밖에 없다. 

이몽룡은 왜 춘향에게 편지 한 통 보내지 않았을까?
 
『김경집의 통찰력 강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춘향전에 대한 다른 해석이다. 저자는 “우리는 권위적 해석에 익숙하고 거기에 길들여지기 쉽다”고 밝혔다. 우리가 흔히 아는 춘향전은 기생 출신 춘향이가 이몽룡에게 정조를 끝까지 지켜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당시 시대 상황에서 남원목사 변학도는 곡물의 집산지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자였다. 변학도는 지방의 유지들과도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런데 이팔청춘(열여섯) 이몽룡과 춘향이는 낯 뜨겁게 사랑을 나눴다. 변학도는 이몽룡의 부친인 이한림에게 당신의 아들이 공부는 안 하고 기생의 딸과 사귄다는 사실을 일렀을지 모른다. 이몽룡의 부친과 변학도는 결국 이몽룡을 한양으로 유학 보내려는 밀담을 나눈 건 아니었을까. 변학도는 춘향이를 붙들어놓고 수청을 요구했는데, 당시 정황에 따르면 정당한 정치 행위였을 수 있다. 수청(守廳)이란 ‘관청에서 높은 벼슬아치 밑에서 심부름을 하던 일’이다. 물론 지금 보자면 말도 안 되는 요구이긴 하지만 말이다. 

저자 김경집은 여기서 질문을 던진다. 춘향이 옥에 갇혔는데 이몽룡은 왜 편지 하나 보내지 않았을까? 아마도 춘향이가 끝까지 절개를 지켰을지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천한 기생을 위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이몽룡은 장원급제를 했으면서도 그 소식을 춘향이에게 바로 알려주지 않았다. 여전히 춘향이를 떠보려는 의도가 있었다. 두 번째 질문은 더욱 심각하다. 막 국가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어떻게 남원목사에게 가서 판을 뒤집을 수 있었을까.     

이 외에도 책에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나 지음지교(知音之交)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를 지적한다. 엄밀히 따지만 맹모이천지교가 맞다. 이사를 두 번만 했으니까. 맹자의 어머니는 왜 처음부터 서당이 있는 곳으로 이사하지 않았을까. 또한 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을 나타내는 지음지교는 한 방에 소통을 원하는 급격함이 담겨 있다. 점진적인 관계의 성장을 외면하는 건 어리석다는 게 저자의 일침이다.  

오랜 기간 인문학에 천착해온 저자 김경집은 “역사의 유산은 그것이 어떤 분야건 반드시 시간과 공간의 맥락과 배경 속에서 읽어야 하고 그것을 현대의 그것들에 비춰 재해석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태도와 방식은 비단 오래된 과거의 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현대시에서도, 현대사에서도 그건 동일하다”고 강조했다. 갈수록 통찰력이 고갈되는 시대에 저자의 일침은 질문하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그게 습관이 되면 정말로 통찰력이 생길 것이다. 다만, 저자의 말이 정말 맞을지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김재호 과학전문기자 kjae_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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