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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공화정으로 가는 길, 그 길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진정한 공화정으로 가는 길, 그 길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 양도웅
  • 승인 2018.10.1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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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가 ‘르상티망의 사회’라는 윤평중 한신대 교수…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기 위해선 현재 모습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따라서 ‘한국은 어떤 사회일까’라는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한국을 다른 사회로 변화시키는 과정의 한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자연히 그다음 단계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지난달 14일, 인터콘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행동과학연구소(소장 이종승) 창립 5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변 하나가 제시됐다. 세미나의 주제는 ‘한국 사회의 변화와 행동과학 연구’였다. 

이날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는 「한국의 시민정신과 공화의 사람」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한국 사회를 “르상티망의 사회”로 정의했다. “사회적 강자에 대한 약자의 질투심, 승자에 대한 패자의 시기심”이 대다수 한국인이 한국 사회에 갖는 감정이라는 것. 윤 교수는 이런 감정의 원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억울함과 불공점함에 대한 분노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르상티망이 개인을 넘어선 “사회문화적 질병”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은 한국 사회가 변화해야 할 방향을 내포하고 있다. 이상적 기준이 있기 때문에 현재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그럼 윤 교수는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진단을 내린 걸까? 그리고 르상티망의 사회인 현재 한국 사회가 윤 교수가 생각하는 한국 사회로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그의 발표문을 발췌 소개한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윤평중 한신대 교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즉 사람은 사회문화적 관계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한국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우리의 삶을 보다 잘 영위하기 위해 우리의 삶의 근간인 한국 사회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한 번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는 한 마디로 ‘르상티망(Ressentiment)의 사회’라고 정의해볼 수 있다. 르상티망이란 철학자 니체가 사용한 용어로, 사회적 강자에 대한 약자의 질투심과 승자에 대한 패자의 시기심을 가리킨다. 우리가 입버릇처럼 빈번히 말하곤 하는 ‘화병’은 르상티망에 기인한 한국인과 한국 사회·문화의 상호규정을 극적으로 입증하는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화병’이란, 말로 쉽게 상상 가능한 개인 차원의 시기심이 사회 차원으로 확장돼 결국, 한국 사회에 사는 대부분의 국민이 항상 불만족인 상태에 놓이게 됐다. 한국 사회는 언젠가부터 르상티망, 즉 ‘앵그리 사회, 울혈(鬱血) 사회’의 상태가 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왜 르상티망의 사회가 됐는지, 그 원인을 생각해보면 인정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억울함과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공정성에서 벗어나려는 개인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윤리와 신뢰, 공공성에 기반한 시민정신과 성숙한 법치주의를 이룩하려는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즉 한국 사회가 성숙한 민주공화정이 돼야만 비로소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치유가 가능하며, 결국 르상티망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르상티망은 개인의 건강도 위협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건강한 시민정신을 파괴하고 성숙한 주체 형성을 가로막는 사회문화적 질병이므로 반드시 치유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한국 사회가 시민정신과 법치주의가 부족한 이유를 살펴보자. 이는 유교적 전통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상업을 중시하고 통치자보다 법이 우위에 있던 유럽 문명에 비해 중국과 한국 등의 유교 국가에서는 법보다 통치자가 우위에 있었고 상업을 천시하는 전통이 뿌리 깊었다. 유럽 문명은 천년 이상 법치주의와 시민의식을 쌓아 왔지만, 한국의 경우 유교 사회를 오랜 시간 거쳤고 자본주의와 시민의식을 경험한 시간은 50~100년 정도로 유럽에 비해 너무나 짧다. 그렇기에 한국 사회에서는 시민정신, 시민윤리, 신뢰, 공공성이 매우 빈약하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은 한국의 근대까지는 유교 국가였고 신분제가 존재했으므로, 시민정신과 시민윤리 등이 부재하며 차별과 불공정성이 만연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현대 사회가 법보다 권력자가 우위에 있던 과거 조선시대와 달라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1세기인 현재도 한국 사회에서는 국가권력의 힘이 민중의 권리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한 게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가 사회의 다른 영역과 인적 자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모든 길은 정치로 통하며 출세의 종착점은 정치로의 입신인 것이다. 

이렇게 현대의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상업과 공업 분야의 직업들이 ‘펜대 잡는 일’보다 현저히 열등한 처우를 받는 현실에서 진정으로 평등하고 다원적인 집단 심성(心性)이 창출되기란 쉽지 않다. 사실상 돈, 권력, 명예를 모두 갖는 직업은 한국에서는 정치권력과 고위 관직에 집중돼 있는데, 이는 결국 권력의 부패로 이어진다. 이처럼 소수의 직업군이 사회적 인정을 독차지한 채 돈, 권력, 명예 등의 희소자원을 독점한다면 건강하고 성숙한 직업윤리와 시민정신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난 2014년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왜곡된 직업윤리와 시민정신의 심각한 부재를 일깨워주었고 한국인들에게 ‘진정한 성공’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묻는 기회를 줬다. 

한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한국 사회는 ‘보통 사람이 자신의 정치공동체에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공화정’이 돼야 한다. 다시 말해 정의나 공정성, 공평성이 진정으로 실현되는 사회가 돼야 비로소 불공정한 정치공동체에서 안개처럼 피어나는 르상티망이 점차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공화정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하지만 성숙한 시민들이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진정 바란다면, 그 길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지금은 한국 시민의 주체적 역량이 한껏 고조되는 시기다. 르상티망과 울혈을 넘어서려는 고통스러운 자기 형성의 노력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이 탄생하고, 그 토대 위에서 공화의 사람들이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인은 한국적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을 넘어 제3의 시대정신인 공화혁명으로 가는 새로운 100년 앞에 서서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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