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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2001년 ‘지역문화의 해’- 지역문화 정책의 비판적 인식
[특집기획] 2001년 ‘지역문화의 해’- 지역문화 정책의 비판적 인식
  • 교수신문
  • 승인 2001.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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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13 10:34:47
임재해 / 안동대·국학부

오랫동안 영남정권이 독주하다가 최근에 호남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나 우리는 영남공화국 또는 호남공화국이라 하지 않고 서울공화국이라 일컫는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문화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을 뿐 아니라, 교육과 산업은 물론, 지역주의 정치조차 알고 보면 서울 중심이기 때문이다. 영호남의 지역정치는 껍데기일 뿐 실제 알맹이는 동교동이나 상도동으로 상징되는 서울의 골목정치가 장악해왔다. 따라서 영호남의 정치현장은 모두 중앙정치에 종속되어 꼭두각시 노릇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지역주의 정치란 지역민들을 조작하기 위한 중앙정치인들의 한갓 가면일 따름이다.

졸속, 급조, 지역문화인 줄세우기
그 동안의 문화정책은 가면으로서조차 지역을 핵심에 두지 않았다. 문화정책 자체가 부재했던 까닭이다. 문화정책 부재는 ‘문화예술의 해’ 설정에서 잘 드러난다. 연극의 해에 이어서 무용·책·국악·미술·문학·문화유산·사진영상·새로운 예술 등을 거쳐 ‘지역문화의 해’에 이르렀는데, 한 마디로 종잡을 수 없다. 일관성이나 개연성이 없는 탓에 정책이라 하기 어렵다. 문화정책이란 우리 문화가 앞으로 나아갈 지표를 이념적으로 설정하고, 그 지표를 달성할 수 있는 중장기적 문화방침이어야 한다. 이러한 정책 기조가 없기 때문에 연말에 ‘지역문화의 해’를 발표하기 전까지 아무도 올해가 무슨 해인지 알 수 없으며, 내년에는 또 어떤 해로 튈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날을 내다보며 연속성을 지닌 문화행정을 체계적으로 펼칠 수 있겠는가. ‘지역문화의 해’에 내놓은 10가지 사업도 같은 수준이다.
지역문화의 해 추진위원이 모두 서울사람들로 꾸려졌다는 비판이 일자, 느닷없이 지역문화 ‘백가쟁명’이라는 모임을 급조하여 며칠만에 원고를 받고 온천호텔에다 모아서 몇 분씩 이야기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를 ‘대토론회’로 이름 붙이고 10대 사업 제1호로 삼았다.
나머지 사업으로 기획된 것이 컨설팅 사업, 현장 탐방과 대화, 특성화 발굴 지원, 웹사이트 운영, 문화강좌, 청소년 영상물 공모 등이다. 지역문화 주체들의 의견수렴도 거치지 않은 채 정한 사업들이라 한결같이 주민들을 종속화 시키는 것들이다. 문화강좌처럼 계몽적인 가르침으로 주민들을 대상화시키는 것은 물론, 대부분 일정한 당근을 제시하고 지역문화인들을 줄 세우기 하는 공모 사업이 아니면, 현장 탐방처럼 서울 문화전문가들의 지역나들이 기회를 주는 일이다. 양식에 맞추어 신청하면 선정하여 2, 3백 만원의 지원금을 주거나 컨설팅을 해주겠다는 것은 지역문화인들을 사실상 구걸꾼으로 만드는 일이다. 결국 지역문화의 정신과 줏대 세우는 일은 보이지 않고 행사 지원금 받기 사업만 주류를 이룬 셈이다.
이렇게 돈맛을 들이게 되면 지역문화판이 어느새 돈판이 되어, 돈이 되지 않는 문화나 돈을 받아내지 못하는 문화행사는 밀려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를 심사하는 이들은 문화권력을 더 강화하는 기회가 된다. 결국 사업계획이라는 것이 지역문화의 ‘혼’을 팔아 ‘돈’을 사는 문화상업주의를 조장하는 한편, 주민들과 함께 하는 지역문화 봉사활동보다 지역문화를 끊임없이 차등화하는 문화권력이 ‘지역문화의 해’를 장악하고 있음을 드러낼 뿐이다.
지역주민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지역문화의 본질이라는 사실만이라도 제대로 주목하고, 이 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지속 가능성이라는 생태학적 인식을 염두에 둔다면, 이런 졸속적인 사업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업처럼 돈 몇 푼 지원한다고 표가 나게 달라지는 문화는 이미 문화가 아니다. 지역 정신이 살아 있는 지역문화판을 지원금 따먹기 다툼의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지역문화의 본디 개성을 죽이는 일이다. 지역문화 정책은 중앙과 지역의 문화역조 현상을 바로잡고, 경제와 문화의 종속관계를 뒤집어서 문화자치와 문화민주화를 실현하는 가운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정책수립·사업주체도 서울문화인?
그러자면 지역문화의 해 주제가 ‘사람·삶터·어울림’인 것처럼, 지역주민(사람)들이 지역사회(삶터)에 뿌리를 내리고 더불어 살 수 있는(어울림) 공동체문화를 활성화시키는 장기 지속적인 대책이 긴요하다. 사람들이 지역에서 살 맛 느끼며 더불어 살게 되면 지역문화의 개성은 저절로 살아난다. 젊은이들은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지역사회, 그래서 미래의 희망은커녕 끊임없이 쪼그라들기만 하는 마을에다가 특성화 프로그램을 요구하고 지원금을 내세워 줄 세우기를 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이자, 사실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허망한 짓이다.
지역문화 현장의 절실성과 상관없는 서울공화국의 문화권력자들이 지역문화의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공간에서 건강한 지역문화 정책 수립을 기대하는 것은 산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지역문화의 해 추진과 기획사업조차 서울사람들이 틀어쥐고 있는 한 지역문화는 더욱 주눅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지역문화끼리 연대하여 서울의 제왕적 문화권력을 혁파하고 문화자치를 획득하는 가운데 문화민주화 실현을 위한 지역문화 봉사활동에 더욱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limjh@and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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