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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독서는 세상의 절망과 대결하는 방법이었다
그의 독서는 세상의 절망과 대결하는 방법이었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9.10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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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길 위의 독서』(전성원 지음, 뜨란, 2018.01)

세상에는 수많은 책이 존재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는 책을 읽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고 또 다양할 것이다. 그런 책을 쓴다는 것은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망망대해의 저 너머에서 온 유리병 편지를 집어드는 것과 같다고 전성원 작가는 말했다. 그가 이번에 쓴 『길 위의 독서』에서 말이다.

산다는 것을 일종의 정언명령으로 여기며 20년 넘는 세월 동안 잡지를 만들어 온 전 작가가 그간 읽어 온 책들의 서평을 묶은 이 책은, 그의 독서 편력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그의 전작들과는 조금 다른 위치를 점유한다. 책을 통틀어 전 작가의 아픈 개인사가 시대의 力作들과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거칠게 공명하기 때문이다. 조금 길지만 잡지 편집주간과 편집장의 관계로 18년 동안 전 작가를 봐온 김명인 편집주간(인하대·국문학)의 말을 옮겨 보자.

“1970년에 태어나 세 살 때 어머니가 집을 떠나고 몇 년 뒤 아버지도 병사하여 유년 고아로 살았다.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보낸 가난한 청소년기의 끝 무렵인 고등학교 상급반 시절, 6월항쟁의 가장 젊은 주체로 참여했으나 곧 닥쳐온 환멸의 시대에 낙백하여 지독한 냉소와 허무 속에서 몇 년 동안을 건축현장의 막노동자로 떠돌았다. 뒤늦게 전문대학의 문을 두드려 글쓰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아 희망도 기대도 없는 삶을 견뎌가기로 마음먹는다. 졸업 후 광고회사에 잠깐 다니기도 했지만 이후 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인천의 한 민간문화재단에서 계간잡지의 편집장 노릇을 하며 이런저런 문화사업을 수행하는 문화노동자로 살아왔다. 지금은 어느덧 마흔여덟의 나이, 그 사이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고, 역시 뒤늦게 들어간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병으로 고통 받던 그의 아버지에게 드릴 약수를 뜨러 간 어느 겨울 새벽. 약수터 산길에서 눈밭에 빠져버린 삼촌의 오토바이. 열 살짜리 소년은 운동화도 양말도 모두 젖었지만 혼자서 제 몸통만 한 물통에 약수를 가득 채웠다. 물통을 질질 끌며 절망했던 소년.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삶의 무게를 막연하게 느꼈던 시간. 그가 떠온 시원한 약수를 드시고 며칠 후 돌아가신 아버지가 유언처럼 그에게 남긴 말씀. “너는 개밥에 도토리다.” 아버지가 남긴 저주의 신탁을 벗어나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고통의 세월을 살아내야 했을까.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감당하기에 너무도 무겁고 저주스러웠던 그 말을 치열하게 버티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독서였다. 김명인 편집주간은 지금껏 그만큼 많은 책을 읽는 이를 본 적이 없노라고 증언한다. 김 편집주간은 “나 같은 제도권형 지식인들은 강의를 듣거나, 세미나라는 이름의 집단적 탐구를 통해서도 지식을 형성하지만,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그로서는 오로지 책을 통해서 세상의 절망과 대결하는 자기 존재의 힘을 키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책을 구하고 읽는 그의 절박할 정도의 집착이 곧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존재의 알리바이라는 것.

그렇다. 이 책은 마흔여덟 해를 세상의 절망과 부딪혀 살아온 한 사람을 만든 책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 책에 얽힌 그 자신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서평임과 동시에 자서전인 셈. 전 작가는 그가 이 책을 쓴 이유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위해서라고 썼다. 언젠가 이 대책 없는 세상에 아비 없는 날이 올 때, 혹 아버지를 그리워할지 모를 딸에게 작은 버팀목이 되어줄 요량으로 말이다. 이 남자의 우직한 독서편력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걸어온 인생길을 돌아보며 딸에게 건네는 수줍지만 담담하고, 나지막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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